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에서 시작된 은행 위기 여파로 퍼스트리퍼블릭까지 무너지면서 "특화은행으로 은행 과점 체제"를 깨겠다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청사진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는(FDIC)는 지난 1일(현지 시간) JP모건이 퍼스트리퍼블릭의 모든 예금과 자산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잇따른 예금 인출로 주가가 급락하는 등 위기에 몰리자, 미국 캘리포니아 금융보호혁신부(DFPI)는 지난 1일 퍼스트리퍼블릭의 자산을 압류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퍼스트리퍼블릭의 파산관재인으로 지정했다.
이로써 퍼스트리퍼블릭은 실버게이트, SVB, 시그니처은행에 이어 올해 들어 네 번째로 문을 닫게 된 은행이 됐다. 퍼스트리퍼블릭은 자산 기준 미국내 14위 규모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워싱턴뮤추얼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파산이다.
퍼스트리퍼블릭이 파산하게 된 경로는 지난 3월 문을 닫은 SVB와 흡사하다. 퍼스트리퍼블릭 역시 SVB와 같은 특화 은행이다. 이 은행은 부유하거나 고소득층 고객으로부터 거액의 예금을 집중적으로 유치하는 한편, 이들을 대상으로 장기의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했다.
파산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SVB와 마찬가지로 '유동성 위기'였다. SVB 사태 이후,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퍼스트리퍼블릭의 부실이 확대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자, 제2의 SVB 사태를 우려한 예금주들이 자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JP모건 등 11개 대형은행의 퍼스트리퍼블릭의 파산을 막기 위해 300억달러를 지원했지만 뱅크런은 막을 수 없었고, 끝내 파산에 이르게 됐다.
퍼스트리퍼블릭의 1분기 실적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분기에만 전체 예금의 40% 수준인 1000억달러가 빠져나갔다. 이 은행의 예금 중 예금 보호 한도인 25만 달러를 웃도는 거액 예금이 전체의 68%에 달해, 뱅크런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유망했던 특화은행이 잇따라 쓰러지면서 국내 대형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깨겠다는 정부의 계획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금융권은 이번 퍼스트리퍼블릭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특화은행 추진 동력을 사실상 잃게 됐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특화은행 도입을 추진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은행권의 경쟁을 촉진할 방안으로 특화은행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금융당국은 다음달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마무리하면서 신규 플레이어 도입 방안에 대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