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입김 커질 수도… 보완책 두고 '고심'
매일일보 = 이소현 기자 | 오는 7월부터 정비업계에 단비가 내린다.
서울시가 정비사업장 시공사 선정 시점을 앞당기는 것. 고금리·고물가로 인해 업황 악화를 겪는 업계 발주 환경에 숨통을 트여줄 전망이다.
다만 정책 안착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대책 없이 입찰 조건을 풀었다가는 시공사의 입김이 과해지고, 공사비 분쟁 또는 짬짬이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다. 그렇다고 문턱을 너무 높일 경우 시공사들은 적극적으로 수주에 나서지 않겠다는 식이다.
3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3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제77조를 개정하고, 최근 행정예고 준비에 착수했다. 이같은 절차가 오는 7월 완료되면 조합설립인가 이후 즉시 시공사를 뽑을 수 있게 된다. 현재는 각종 심의를 마치고 사업시행인가까지 득해야 시공사 입찰이 가능하다.
정비업계 기대감은 크다. 조합 입장에서는 불황기 빠른 사업비 조달이 가능해지고, 시공사 입장에서는 발주 시기가 수년 앞당겨진다.
실제 올해 상반기 서울에는 '대어급' 발주가 없었다. 연초 나왔던 대형 수주도 실제로는 작년부터 입찰을 진행한 곳이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 "각종 심의가 늦어진 측면도 물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손익분기점을 어디에서 볼 것인지를 두고 조합과 건설사 모두 골치"라고 설명했다.
사업 속도가 빨라지는 효과도 기대된다. 시공사 선정 이후 브랜드 특화설계에 맞춰 설계를 변경할 요인이 줄어들고, 각종 인허가 절차도 지원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점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시행인가 전에는 대부분 설계의 밑그림만 잡혀 있다. 이 시기 시공 계약을 맺을 경우, 나중에 실제로 집을 지을 때는 공사비가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이때 전문성이 떨어지는 조합은 시공사의 요구에 끌려다닐 위험이 크다.
분양이 시작되기 전까지 시공사는 조합의 자금줄 역할을 한다. 이때 발생하는 시공사와 조합 집행부 간의 유착·비리 문제도 해묵은 논란거리다.
시는 우선 이를 방지하고자 내역입찰을 제시했다. 즉, 공사에 철근이 몇 개 들어가는지, 시멘트는 얼마나 필요한지 등을 적어 시공사가 입찰 단계에서 제출하라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공사비를 변경할 때 왜 그런 것인지 따져보는 기준이 된다. 무분별한 공사비 인상을 막아주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다만 이 경우 시공사가 수주를 꺼릴 수 있다. 사실상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지도 잡히지 않았는데, 구속력이 있는 내역서를 제출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최근 공사비 검증 제도가 도입되며 시공사가 그간의 공사비 인상분을 제대로 인정받기 힘들어졌다는 토로가 나오는 가운데서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착공까지 변화되는 모든 리스크를 시공사가 다 떠안아야 하는 구조"라며 "시공사는 극히 보수적으로 수주하거나 공사비를 처음부터 높게 받고자 할 것인데, 발주 물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조합 입장에서도 좋은 입찰 조건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업시행인가를 취득한 경우 사업이 어그러질 일은 거의 없다"면서 "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 추진이 지지부진해지며 자칫 매몰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기업은 더욱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게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경쟁 구도가 형성되지 않으면 조합 입장에서도 손해다. 가뜩이나 분양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단독 입찰이 계속되면 조합 협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제77조 2항에 담긴 시공사 선정 관련 세부기준 마련을 두고 고심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제도개선특별팀(TF)을 꾸리고 세부 내용을 검토 중"이라며 "민감한 사안이 많아 면밀히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