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최동훈 기자 | 조선업계가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대학의 관련 전공자들까지 조선업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조선사들은 산업 이미지 개선과 비전 제시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인력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5일 고용노동부 산하 조선·해양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졸업한 국내 대학 조선해양공학과 학부생의 관련 업계 취업률은 30% 수준에 불과했다.
익명의 4개 대학 각각의 비(非)조선 취업률로 도출한 기하평균값이다. 조선해양공학과 졸업생 10명 중 3명만 전공을 살려 취직한 셈이다. 4개 대학 중 가장 낮은 조선업 취업률은 12%를 기록했고, 가장 높은 곳도 절반(50%)에 불과했다. 조선업 취업 기피 추세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해양공학과는 선박·해양구조물 설계·생산·건조, 하중평가, 상선 품질 강화, 첨단 선박 개발 등 조선업에 관한 지식을 배우는 학과다. 서울대, 인하대, 부산대 등 전국 각지 대학이 조선해양공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주요 조선사들은 대학과 협력해 장학 프로그램을 설립한 후 취업 시 우대하거나 취업을 보장하는 계약학과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인재 확보에 주력 중이다. 자율운항·친환경 선박 등 신기술 관련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다만 조선해양공학을 배운 학생들은 학위 취득 후 조선업 아닌 반도체, 전기·전자, 자동차 등 선호도가 비교적 높은 산업에 진출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평판 좋은 대학에서 입학 경쟁률이 비교적 낮은 조선해양공학과에 입학한 후, 다전공 제도를 활용해 복수전공 학위를 취득하는 방식으로 타 산업에 취직하고 있다.
누리꾼 A씨는 입시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모 대학 조선해양공학과는 2학년까지 다른 공대 학과생과 같은 교육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복수전공을 배우지 않더라도 조선 외 산업에 취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해양공학도들이 조선업에 취직하지 않는 주 사유로 ‘산업 이미지’가 꼽힌다. 지난 2014년 이후 중국의 선박 수주 공세에 밀려 한국 조선업에 불황이 찾아온 이후 한동안 업황이 개선되지 못했고 인력이 대거 이탈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2014년 이후 조선업 종사자 절반이 빠져나갔다’고 자조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많은 인력이 조선업계를 이탈했다. 실제 조선업 종사자 수는 2014년 말 기준 20만3441명에서 지난해 말 9만5166명으로 8년 만에 53.2% 감소했다. 불황 속 종사자에 대한 기업 처우도 나빠졌다. 구직 전문 사이트 사람인에 따르면 지난 2021년 HD현대중공업(4590만원),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 4481만원), 삼성중공업(3478만원) 등 주요 업체의 평균임금은 4151만원으로 삼성전자(6950만원)나 현대자동차(5332만원) 같은 타 산업 인기 업체보다 현저히 낮다. 각종 이유로 조선업의 매력도가 떨어지며 취업준비생들이 등을 돌렸다는 관측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취업준비생이 조선업을 진로로 선택하도록 만들려면 산업 전망이 좋아야 한다”며 “조선업이 그동안 어려웠기 때문에 구직자 입장에서는 매력도 낮은 업종으로 비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서울 근무를 선호하는 수도권 소재 대학 졸업생의 취업 경향도 지방에 연구개발(R&D) 거점을 둔 주요 조선업체의 매력도를 낮춘 요인이다. HD현대중공업(울산), 한화오션(거제·시흥), 삼성중공업(거제·대전·판교) 3개사는 주로 지방에 R&D 거점을 두고 있다.
조선·해양 인적자원개발위원회는 “조선업이 최근 호황기 진입으로 이미지를 크게 개선했지만 아직 부정적 인식이 적지 않다”며 “직업의 안전성과 산업에 대한 이미지 제고는 우수 인력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선해양 산업체 뿐 아니라 민관학연 모두 노력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주요 조선업체들은 산업 이미지를 개선하고 직장으로서 기업 매력도를 높이기 위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HD현대는 최근 그룹사들과 함께 사명과 로고(CI)를 교체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고 있다. 이와 함께 판교에 설립한 본사 사옥을 ‘글로벌 R&D 센터’로 명명하고 연구개발 역량에 적극 투자하며 인력 확보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한화오션도 대우조선해양에서 새롭게 거듭나 산업 평균 임금을 신규 입사자에게 약속하는 등 인력확보에 힘쓰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부산시와 협력해 시내에 ‘부산 R&D 센터’(가칭)를 신설하고 설계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등 역량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각 사는 이밖에 유튜브 등 SNS로 젊은 세대와 적극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 기업 이미지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HD현대 관계자는 “시설 확충, 근무환경 개선, R&D 투자, SNS 소통 등을 실시해 지원자들이 보기에 매력있는 회사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며 “그동안 산업 자체가 어려워 (기업 이미지 쇄신)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던게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기업에 대한 반응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