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어도비·MS오피스 '매달 구독료', 사무업계에 고정비 부담 압박
대기업 디지털 기술 확보해 '공룡화' 진행… 中企 종속 우려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디지털 기술 독과점’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의 일부 온라인 플랫폼 기업과 IT기업들이 시장내 독점적 지위를 무기로 담합행위를 저질러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지난 7월 공정위는 '알바천국'을 운영하는 미디어윌과 '알바몬'을 운영 중인 잡코리아가 2018년 5월부터 2019년 3월까지 가격 및 거래조건을 담합한 행위를 적발했다. 해당 업체에는 과징금 26억원이 부과됐다.
공정위는 또 국내 대표 IT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의 알고리즘 악용 사례를 OECD 회원국에 소개한 바 있다. △카카오 모빌리티가 자사 가맹기사에게 유리한 배차 알고리즘을 은밀하게 운영한 행위 △네이버가 자사 비교쇼핑 서비스 검색결과에서 자사 판매 상품이 타사 판매 상품보다 상단에 노출되도록 검색 알고리즘을 왜곡한 행위 등이다.
전 세계적으로 IT 기술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산업계는 물론 일상생활에도 디지털 기술의 영향력이 커졌다. 문제는 시장 선점 업체가 권력을 남용할 경우, ‘을(乙)’ 위치에 놓인 업체와 사용자는 속수무책이란 점이다.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특정 분야 기술을 선점한 뒤 이를 영리화하고 있다. 일례로 디자인 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디자인툴 ‘어도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는 일정 기간마다 이용료를 내야 하는 방식으로 바뀐지 오래다. 과거에는 몇 만 원에 불과한 CD를 구매하면 모든 기능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현재 어도비의 경우 월 6만1600원(Creative Cloud 모든 앱 사용)을 달마다 지불해야 한다. 대체제가 마땅치 않은 만큼, 해당 프로그램을 이용해왔던 이용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매달 구독료를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또한, 전 세계에 ‘대화형 AI’ 붐을 일으켰던 챗GPT의 개발사 오픈AI사도 자사 프로그램을 일부 유료로 전환했다. 이에 현재 무료로 이용 가능한 AI 업체도 같은 방향으로 나갈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오픈AI는 언어모델 GPT-3를 개발 당시 소스코드와 API를 공개했지만, GPT-4부터는 공개하지 않으며 유료 계약을 통해야만 API를 부여받을 수 있다. 챗GPT에는 구글이 2017년 ‘공개’한 언어모델이 활용됐는데, 정작 본인들은 타사에 자사의 소스를 공개하지 않아 더욱 논란을 낳고 있다.
게임사 N사 개발자는 “‘오픈소스’라 하여, 통상적으로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이라도 소스코드를 무료로 공개하는 게 보통이다. 복잡한 프로그램일수록 다수의 노하우가 축적되는데, 저작권 개념이 모호해져 오픈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개발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아예 비공개하거나 대놓고 영리적인 목적으로 전환해 업계에서도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현재 오픈AI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는데, 향후 챗GPT를 오피스 시리즈처럼 구독상품에 포함시킬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이 경우 사무업계는 현재도 사무용 프로그램 분야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 MS의 지배하에 놓일 수 밖에 없게 된다.
사무보조 프로그램의 유료화는 자체적인 프로그램망을 구축할 수 없는 중소기업계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업체는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통번역이나 문서정리를 AI로 해결하고 있었는데, 해당 프로그램이 유료화됨에 따라 고정비를 내야 한다. 실제 챗GPT가 일부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하자, 해당 기술로 업무를 진행하던 중소업체들은 직간접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일례로 PDF 형태의 자료를 파싱해 요약하는 등의 작업은 6월부로 유료로 전환됐다.
또 어디까지나 외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정보유출의 위험성도 크다. 삼성전자는 정보유출 우려로 자사 직원의 챗GPT 이용을 금지하고, 자체 AI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중이다. 반면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악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외부 AI 프로그램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스타트업계가 투자 한파로 몰락하는 가운데, 대기업만이 디지털 관련 기술 연구개발을 가속화하고 대상 기업을 인수 합병해 업계가 좁아진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제약바이오 분야의 경우 이미 구글, 아마존, 엔비디아 등 IT 대기업들은 신약개발 AI 플랫폼을 개발해 제약기업에 제공하거나 협업을 통한 신약개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모두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여러 차례 비판을 받았던 만큼, 향후 신약 분야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J제약사 관계자는 “AI 기술은 신약 개발 시간과 비용을 혁신적으로 단축하는 주요 기술로 각광 받고 있지만 국내 제약사 역량상 자체적 AI 기술을 보유하기 힘들다. 때문에 관련 업체와 협력하는 것이 최선인데, 최근 대기업들이 관련 업체 인수합병에 적극적이다. 핵심 기술을 활용하려면 결국 대기업과 연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