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신문과 잡지로 만나는 '식민지 조선'의 모던 분투기 『라이더, 경성을 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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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신문과 잡지로 만나는 '식민지 조선'의 모던 분투기 『라이더, 경성을 누비다』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3.10.05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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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의 민족' 원조 라이더, 경성 거리를 누비다
- 1930년대 조선 문단을 뒤흔든 스캔들, 발가락이 닮았다
- 조선의 첫 여성 스웨덴 경제학사는 귀국 후 왜 요절했을까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출판사 시공사가 <라이더, 경성을 누비다: 식민지 조선이 만난 모던의 풍경>>을 출간했다.
<라이더, 경성을 누비다>는 식민지 상황에서 ‘근대’라는 시기를 맞닥뜨린 100년 전 조선의 삶, 욕망과 관심, 사회와 문화 등을 당시 신문과 잡지의 기사로 살펴보는 책이다.


100년 전 신문과 잡지는 ‘전차가 분주히 거리를 지나고, 도쿄와 경성을 잇는 비행기 노선이 생기고,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카페와 서점을 순례하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의 환호와 한숨이 교차하는’ 조선을 묘사하고 있다.

또 ‘이정표 없는 황량한 들판에서 문학과 예술을 일으켜 세우고, 스포츠로 식민지 조선의 자존심을 달래며,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상해와 중경, 만주와 미국, 유럽을 돌아다닌’ 조선인을 이야기한다.

독자는 식민지 조선의 신문과 잡지를 통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삶과 욕망의 본질이 비슷함을 만날 수 있으며, 갑작스럽게 근대를 맞닥뜨린 조선인의 일상과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의 분투를 확인할 수 있다.

‘아파트, 문화주택, 주식, 금광, …’
조선의 동경과 욕망, 환호와 한숨


1938년 7월 3일, 한 청년의 음독자살 기사가 실렸다. 검시한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주식에 손을 댄 28세 청년이 2000여 원의 손해를 본 것을 비관해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 사건이었다.

1936년 6월 7일, 신문에 실린 채만식의 수필에는 금을 얻고자 집 벽까지 헐은 사람 이야기가 소개됐다. 1930년대 내내 세계를 지배한 대공황의 여파는 조선에까지 미쳤다.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반면 금값은 폭등했고, 이는 전 조선의 황금광 열풍으로 이어졌다.

신문과 잡지가 쏟아낸 사람들의 동경과 욕망은 주식과 황금만이 아니었다. ‘탕남음녀의 마굴’로 손가락질받은 아파트, 은행 빚 얻어 장만한 그래서 곧 무너질 모래 위의 성과 같은 것으로 비난받은 문화주택이지만 한편에서는 그곳에 살기를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피아노, 유성기, 라디오, 35전짜리 화신 백화점 런치 세트 등은 모던의 시기에 만난 선망의 대상이었다. 100년 전 ‘모던’을 처음 경험했던 조선인이 가졌을 기호, 동경과 욕망, 환호와 한숨은 요즘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라이더 경성을 누비다' 평면표지


‘단발, 산아제한, 모르핀, 특혜 분양, …’
조선을 들썩인 스캔들과 모던의 그림자


100년 전, 조선이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근대를 이해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1922년, 청년 문사와 사귀다 결별을 한 강향란이 단발을 하자 그는 유명 인사가 됐다. 1920년대 신문과 잡지는 앞다퉈 ‘단발 찬반 논쟁’을 다뤘다.

단발은 “무분별한 서양 문화 수입”이었고 “허영심의 발로”였으며 사회적 스캔들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 ‘어느새 여학교의 교복과 같이 취급’될 정도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식민지 조선의 인구가 약 2000만명이던 시절, 경성에서는 ‘산아제한’을 둘러싼 토론회가 수시로 열렸고 신문은 이를 소개했다.

1920~30년대 세계적인 이슈였던 맬서스주의와 우생학, 여성 권익 향상에 대한 관심 등은 조선을 비켜 가지 않았다. 여성 단발과 산아 제한 논쟁은 불과 그때보다 10여 년 전인 191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인의 관념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1927년 봄, 경성 한복판 서소문의 ‘자신귀굴’을 르포한 기사가 실렸다. 아편도 문제였지만 아편을 정제한 ‘모루히네(모르핀)’ 중독자를 일컫는 자신귀가 골칫거리였다. 아편보다 싸고 사용이 쉬우며 당국의 규제까지 느슨한 모루히네의 당연한 확산이었다.

1929년, 일본인 시마 도쿠조에게 경성 신당리 토지를 특혜 분양한 사건은 경성부윤이 나서서 사과했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식민지라는 엄혹한 시절이었음에도 권력형 특혜 분양 의혹을 쏟아낸 신문은 경성부를 조롱하는 기사까지 실었다. 조선인 빈민들은 토막에서 굶주리는데, 조선의 공적 자금을 마음대로 쓰는 일본인과 그를 비호한 권력에 대한 반감이 폭발한 것이다. 100년 전 조선이 만난 모던의 그림자들이다.

‘백신애, 나혜석, 최승희, 최영숙, …’
조선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그들


100년 전은 ‘닫힌 제국’에서 ‘열린 세계’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간 ‘출국열’의 시대이기도 했다. 1928년,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학생이 드문 스웨덴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최영숙을 소개한 신문은 “그가 고국에 돌아오는 날은 반드시 한 줄기 희망의 불이 비칠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1909년, 여권도 없이 미국으로 건너간 김동성은 “구두닦이에게도 상류층 사람이나 백만장자만큼의 자유가 있다”는 미국 관찰기를 출간했고, 1937년부터 1940년까지 미국과 유럽은 물론 남미까지 공연을 다닌 무용가 최승희의 동정은 수시로 신문과 잡지에 소개됐다.

남편과 함께 1년 반이라는 긴 시간 세계 일주 여행에 나선 나혜석, 중국으로 건너가 비행술을 배워 독립운동에 뛰어든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서른을 눈앞에 둔 나이로 제국대학의 조선 첫 여성 유학생이 된 신의경 등 기존의 관념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여성의 모습이 등장한 것도 모두 이맘때였다.

조선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그들의 이야기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여러 미덕 가운데 하나다.

저자 김기철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입사한 조선일보에서 사료연구실장 겸 문화부 학술전문기자로 있다. 100년 전 신문, 잡지를 밑천 삼아 조선닷컴에 ‘모던 경성’을 연재하고 있다. 소파 방정환처럼 빙수를 즐기는 ‘빙수당(黨)’이고, 가산 이효석처럼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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