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윤용선 기자 | 전 포천장애인학교 교장을 역임했던 송순석씨(70)가 ‘제2023년 대한민국 사회공헌 대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고 있다.
장애인들의 교육 환경 제공과 학습 지원에 헌신하고, 수많은 봉사활동과 더불어 지역사회 상생발전을 도모하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 구현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하게 된 것인데,정작 송교장은 “내가 좋아서 한 일이고 응당 해야 할 일이었다”며 인터뷰에 손사래를 쳤다.
그는 30여 년 넘게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누구보다 앞장서는가 하면, 매서운 한파도 녹일 만큼의 온정을 꾸준히 베풀었지만 정작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에서 나고 자란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왜정시대 징병으로 일본에 끌려간 아버지는 2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몸은 만신창이로 폐결핵과 각종 병마와 싸우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짐은 밑으로 4명의 어린 동생을 둔 장남 송교장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졌는데 당장 먹고사는 게 큰 문제였던 그는 셋방살이를 전전하며 소년가장으로서의 혹독함을 견뎌야 했는데, 마땅히 내 세울만한 기술은 없었지만 근면, 성실을 무기 삼아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한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집을 지을 수 있는 터를 마련할 수 있었는가 하면 30대에는 번듯한 주택까지 신축해 오늘날까지 약 40여 년간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그의 효심은 이웃에 정평이 나 있다.
살아생전 부모님을 위한 해외여행, 제주도여행, 속초여행 등 각종 여행은 물론이거니와 때마다 구실을 만들어 잔치를 벌이는 등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 이웃의 귀감이 되었다고 한다.
송 교장은 일찍이 행해온 여러 봉사활동 중 특별히 법무부 보호관찰소 사회봉사를 오랜 세월 해 오면서 요양원이나 양로원 등을 많이 방문했었는데 그곳에서 자식을 원망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보내고 있는 노인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며 “나는 절대로 부모님을 시설에 맡기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기에 돌아가실 때까지 1인 3역을 자청하며 부모님 곁에서 함께 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30대 후반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전달할 수 있는 단체를 설립해 실행했으며 또한 비행 청소년들이 올곧게 성장하도록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하며 대학까지 진학시킨 사례 등 그야말로 청소년들의 아버지로 거듭 났던 것이다.
법무부 범죄예방위원회 포천지구협의회의 사령탑을 지낸 그는 범죄예방과 청소년 선도에 각별한 정성을 쏟았으며 ‘연중 유해업소 지도방문, 우범지역 순찰, 거리캠페인 실시, 청소년축제 개최, 사회봉사명령자 감독, 장학금 지급’ 등 그야말로 봉사의 진수를 보였다.
이 같은 공로를 높이 평가받아 ‘법무부장관 표창(2004), 국무총리 표창(2007), 법무부(의정부지방검찰청·2008)공로패’ 등 수많은 봉사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법무부 범죄예방위원회 포천시지구협의회장 ▲바르게 살기위원 ▲송우초등학교운영위원장 ▲포천장애인학교 교장(2대) ▲농협대학교 최고농업경영자과정 총동문회장(3기) ▲포천그린농업대학 학생회장(14기) ▲한내울포럼 공동대표 ▲소흘읍 개발자문위원장 등 전·현직 프로필에서 그의 행보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2010년 설립돼 2015년 장애인 평생교육시설로 등록된 포천장애인학교는 운영 중 존폐의 기로에 섰던 적도 있었지만 송 교장이 제2대 교장을 맡으면서 정상화를 꾀해, 검정고시 과정, 직업능력 교육, 기초 문해 교육, 문화예술 교육, 인문 교양교육 등7개의 교육과정을 제공, 장애인들의 평생교육 확대와 그들의 자존감 회복에 한 획을 그었다.
이에 대해 송순석 교장은 “포천시의 권고로 학교장에 위촉된 당시 너무도 열악한 근로환경과 재정적 어려움, 인력부족에 다소 위축됐으나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과, 중증 2급부터 6급까지 매일 수업을 듣기 위해 오는 학생들의 열의에 감화돼 있는 동안 꼭 정상화를 다짐했다”고 한다.
또 “학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업 공간과 잦은 민원으로 어려움이 많은 만큼 장애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갖춘 학교를 만들어주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고 여건이 허락할 때까지 ‘어려운 이웃들과의 행복한 동행’도 계속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경기북부취재본부=윤용선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