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법·IRA, EU CRMA 등 역내 공급망 지원책 쏟아져
‘정부 보조금’으로 큰 中 CATL·BYD, 해외 배터리 시장 장악
LG엔솔·삼성SDI·SK온, 북미 투자 확대…IRA FEOC도 예의주시
현대차그룹, 美공장 조기 완공…삼성·SK, 美반도체법 리스크 직면
매일일보 = 이상래 기자 | “지난해 기준 2차전지 수출국 순위는 중국(50.3%), 폴란드(8.6%), 한국(7.3%), 헝가리(7.0%).”
현대경제연구원이 15일 ‘세계 2차전지 공급망 구조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2차전지 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은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38.4%)보다 약 12%p 급등했다. 올 5월 기준 전 세계 2차전지 생산 규모는 2.81TWh(테라와트시)로 중국이 약 73%인 2052GWh를 차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와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경쟁에서도 중국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8월 전기차용 배터리 판매를 보면 CATL(36.8%), BYD(15.9%) 등을 포함한 중국 기업의 비중이 63%를 차지했다.
이러한 중국 배터리 기업의 폭발적 성장에는 자국 정부의 지원책이 있다. 중국 정부는 배터리 기업에 직접적인 보조금뿐 아니라 자국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에 구매비용을 보전해 적극 지원했다. 글로벌 전기차 둔화 속에도 BYD는 태국·브라질·헝가리 등 해외에 5개 신규 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BYD는 전기차 선도업체 미국 테슬라를 제치고 올 3분기 누적 전기차 판매대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에서도 BYD는 자국의 CATL에 이어 2위를 차지해 LG엔솔을 앞서고 있다.
중국만이 배터리 산업 지원에 적극 나서는 것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13일(현지시간) 27개국으로 구성된 이사회와 유럽의회,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 간 ‘핵심원자재법(CRMA)’ 3자 협상이 잠정 타결됐다고 발표했다. 마지막 입법관문을 통과하면서 CRMA는 형식적 절차인 이사회, 유럽의회 각각의 최종 승인을 거치면 시행이 확정된다.
CRMA는 EU 역내의 핵심 산업의 공급망 강화가 목적이다. 2030년까지 제3국산 전략적 원자재 의존도를 역내 전체 소비량의 65% 미만으로 낮추기 위한 역내 제조역량 강화, 공급선 다변화를 위한 규정을 담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도 CRMA의 규정에 맞춰 EU 역내의 공급망 강화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이 CRMA보다 강력하고 까다로운 것은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이다. IRA는 미국 및 미국 경제권에 공급망 구축을 요구한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앞다퉈 미국에 현지 공장을 증설하는 것도 IRA 영향이 적지 않다. 문제는 IRA의 광물 및 부품 요구조건이 매년 까다로워진다는 점이다. IRA 세부지침에 따르면 미국 또는 미국과 FTA을 맺은 국가에서 핵심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추출·가공해야 보조금 수령이 가능하다. 이 비율은 올해 40%에서 매년 10%씩 올라가 2027년부터는 80%를 유지하게 된다.
여기에 IRA의 해외우려집단(FEOC) 지침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다. FEOC는 거래금지 국가 및 기업에 대한 세부적 내용을 담는다. 중국 및 중국기업과의 거래를 어떻게 규제할지가 관건이다. 리튬, 흑연 등 중국과 여러 방식으로 공급망이 연결된 국내 배터리 업계로서는 FEOC 리스크가 적지 않은 부담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도 IRA 등 불확실성 대응에 분주하다. IRA의 보조금 조건이 미국 역내 생산된 전기차로 한정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내 전기차 생산을 서두르고 있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 들어설 전기차 전용 공장(HMGMA) 준공 시점을 기존 2025년 상반기에서 1년가량 단축하는 중이다. 또한 IRA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대차·기아는 HMGMA 준공 전 IRA 적용을 받지 않는 렌탈·리스 등 상업용 차량 위주로 친환경차 수출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기민한 대응 덕에 현대차·기아는 올 1~3분기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 2위를 기록했다. 시장조사업체 익스페리언 통계를 활용한 미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뉴스 보도에 따르면 현대차(4위)와 기아(9위)의 합산 등록 대수와 점유율은 6만4000대, 7.5%로 테슬라(57.4%)에 이어 2위에 오르게 된다. 특히 1~3분기 테슬라의 등록 비중은 지난해 같은 기간 65.4%에서 57.4%로 8%p 떨어진 반면 현대차는 4%에서 4.8%로 0.8%p 올랐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도 경영 불확실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중 갈등에 낀 삼성, SK와 달리 인텔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법’ 최대 수혜자로 거론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정부 지원금을 받아 미 애리조나 공장에 보안 구역을 지정하고 미 군사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반도체법에 따라 최종 지원 규모는 30억~40억달러(3조9200억~5조2000억원)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텔은 군사용 반도체 제조 보조금뿐 아니라 다른 미국 내 공장 건설로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 수혜를 받고 있다. 반면 삼성, SK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공장이 미국 반도체법의 제재 불확실성을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삼성, SK의 미래 먹거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이 미국의 수출규제 영향 아래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중국의 우회로를 차단하기 위해 실질 성능을 기준으로 반도체 수출 통제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고성능 인공지능(AI) 연산에 필요한 HBM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에도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