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MA상, 안데르센상 노미네이트,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그림으로 탄생한 가장 사랑받는 고전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시공사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일러스트로 새롭게 탄생한 <어린 왕자>를 출간했다.
어린 왕자는 몇 군데의 별을 돌아다닌 후 지구로 와 뱀, 여우와 친구가 된다. 어린 왕자는 함께 시간을 보낸 여우와의 관계를 통해 존재를 길들여 관계 맺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함의 의미를 알게 된다. 자신만의 특별한 존재인 장미에 대한 책임감을 깨달은 어린 왕자는 지구를 떠나 자신의 별로 돌아간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와 메시지
260여 개 언어로 번역, 전 세계 1억 부 이상 판매된 ‘어린 왕자’는 읽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유명한 고전이다. 세대를 넘어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어린 왕자는 비행사였던 저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비행 도중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다. 방랑자였던 생텍쥐페리는 낯선 곳을 비행하며 알게 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과 삶의 진정한 가치와 같은 메시지를 작품 안에 담아낸다.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을 떠나 여행 중에 만난 많은 존재는 모두 자신의 일에 매몰돼 삶의 가치와 관계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진심을 나누기보다는 자신에게만 몰두해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이들의 모습은 현재 어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쓰인 이 작품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소통과 관계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상상력의 중요성과 관계의 본질, 자연에 대한 존중의 메시지는 더 많은 시간이 지나도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으로 남을 것이다.
작품을 펼칠 때마다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새로운 발견을 가져다주는 이 작품은 의미와 가치가 변하지 않은 채 다시 우리 앞에 놓인다. 점점 폐쇄적으로 변해 가는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타인과 관계를 맺고, 공존하며 살아간다. 이 작품은 단조롭고 외로운 일상을 보내는 현재의 우리에게 잊고 지냈던 관계와 가치에 대해 떠올려 보게 한다. 작품에 담긴 어린 왕자의 긴 여정을 통해 관계의 가치, 삶의 가치, 그것을 넘어 가장 중요한 자기 존재의 가치까지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이는 것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다시 한번 찾으러 갈 순간이다.
고전의 새로운 해석,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일러스트
출간 80주년을 맞은 ‘어린 왕자’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번역된 작품인 만큼, 이미 많은 독자에게 깊이 각인돼 있는 고전 명작이다. 저명한 그림책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는 이번 일러스트판에 자신만의 용기 있는 시도와 해석을 담아냈다. 알레마냐의 일러스트로 새롭게 탄생한 어린 왕자는 익숙함에 빠져 있던 현재 우리에게 새로운 감상과 감각을 전한다.
알레마냐의 삽화의 눈에 띄는 부분은 화자인 조종사 ‘나’의 등장이다. 알레마냐는 원작에 등장하지 않았던 조종사 ‘나’를 크고 선명하게 그려 넣으며 ‘나’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어린 왕자뿐만 아니라, 어린 왕자와의 관계를 통해 느끼는 조종사 ‘나’의 감정과 변화에 주목하게 만든다. 알레마냐는 화자인 ‘나’를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체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발화함으로써 독자들이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만들며, 화자의 마음에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의도한다.
또 알레마냐는 주인공 어린 왕자 캐릭터를 원작과 다르게 자신만의 해석으로 보여준다. 알레마냐는 어린 왕자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비해 작고 단순하며, 평범하게 그려낸다. 낯선 미지의 별에서 온 듯했던 어린 왕자가 조금 더 가까운 감각으로 선명하게 다가온다. 알레마냐가 해석한 어린 왕자를 통해 어린 왕자가 전하는 작품의 메시지를 더 넓고 깊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일러스트판 표지는 알레마냐만의 재해석이 잘 드러나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알레마냐는 ‘어린 왕자’를 작업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영감을 줬던 건 ‘장미를 사랑하는 어린 왕자의 사랑’이라고 밝혔다. 표지 속 어린 왕자 인물만큼이나 크게 등장하는 장미의 형태와 장미를 소중히 끌어안고 있는 어린 왕자의 모습은 두 존재를 동등한 존재처럼 보여준다. 생텍쥐페리가 담아내고자 했던 공존과 자연의 존중에 대한 메시지까지 놓치지 않고 녹여 낸다. 알레마냐는 표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두 존재의 관계와 가치를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다.
알레마냐는 생텍쥐페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에 눈길을 주며 독자들을 새로운 감상의 자리로 데려온다. 독자들은 알레마냐의 새로운 일러스트판을 통해 원작과는 다른 커다란 판형과 색감, 배경 묘사와 그림체를 비교해 가며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세대를 넘어 늘 새로운 감상을 가져다주는 생텍쥐페리의 고전과 알레마냐의 독창적인 일러스트 만남은 현재 우리에게 또 다른 해석을 불러올 것이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해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실패한 뒤 생크루아 미술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1921년에 공군에 입대해 비행사가 됐는데, 이는 그의 삶과 문학 활동에 큰 시발점이 됐다. 제대 후에도 15년 동안 비행사의 길을 걸었다. 1926년에는 민간 항공 회사 라테코에르에 입사해 항공 우편 업무를 맡았다. 1929년 장편 소설 ‘남방 우편기’로 작가 데뷔를 했다. 두 번째 소설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상을 수상, 이후 ‘인간의 대지’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거머쥐었다. 인간의 대지는 같은 해 미국에서 ‘바람,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영문판이 번역·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1940년에 나치 독일에 프랑스 북부가 점령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동화가 삶의 유일한 진실임을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다”고 말했던 생텍쥐페리는 이 시기 ‘어린 왕자’를 집필했고, 1943년 미국 레이날 앤드 히치콕 출판사에서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이 함께 출간됐다. 이후 어린 왕자는 1946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됐다. 대표작인 ‘어린 왕자’는 260여 개 언어로 번역되고 전 세계 1억 부 이상 판매되며 현재까지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생텍쥐페리는 1943년에 프랑스로 돌아가 공군 조종사로 활동했으며,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 군용기 조종사로 지냈다. 1944년 대전 말기에 정찰 비행 중 행방불명됐다. 1944년 7월 31일 독일 전투기에 의해 격추당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짐작된다. 유작 ‘성채’는 이후 생텍쥐페리의 친구들이 그의 녹음본과 초벌 원고를 정리해 1948년 발표됐다.
그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는 1973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6년 프랑스 몽트뢰유 아동도서전 미래의 인물상, 2001년 프랑스 국립현대예술협회 주목할 만한 아동 문학 작가상, 2007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라가치상을 받았다. 깊은 인간애와 시적인 상상력을 담은 이야기, 독특한 기법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그림으로 주목을 받으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 및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후보로 수차례 지명됐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으로 ‘유리 아이’, ‘사라지는 것들’, ‘숲에서 보낸 마법 같은 하루’, ‘절대 절대로’, ‘뒤죽박죽 생일 파티 대소동’ 등이 있다.
옮긴이 정연복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몰리에르의 발레-희극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덕여대 강의 전임 교수를 역임하고 서울대학교, 아주대학교, 덕성여자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쓴 책으로 ‘축제의 무대’, ‘예술속의 삶 삶속의 예술’이 있고, 옮긴 책으로 ‘미지의 시간 속으로’, ‘루브르의 하늘’, ‘매혹의 박물관’, ‘루브르 가로지르기’, ‘루브르의 유령’, ‘사팔뜨기 개’, ‘상상병 환자’, ‘레오나르도2빈치’, ‘웃음-희극성의 의미에 관하여’ 등이 있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