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설아 기자 | 미중 수교, 미소 군비 축소 등 냉전시기 미국의 '핑퐁외교'를 주도했던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별세했다.
29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은 미국 코네티컷 자택에서 키신저 전 장관이 향년 10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베트남 전쟁 종전 등을 주도한 미국의 외교 거목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리처드 닉슨과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내며 동서 데탕트(긴장완화)를 이끌어냈다. 특히 1972년 닉슨 당시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을 성사시키며 미중 수교의 기반을 닦았다.
이러한 공로로 197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키신저 전 장관은 과도한 '현실주의' 외교 노선을 펼치며 전쟁을 촉발시켰다는 주범이라는 비판 역시 받는다. 또 중국을 100여 번 방문하는 등 친중 인사로 분류되는 그는 중국을 지나치게 옹호하며 독재 등에 눈 감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천안문 사건에 대해 '딜레마'라는 식으로 발언했으며, 쿠데타로 집권한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과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폭력 진압 등을 옹호하기도 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5년 독자 핵 개발 추진에 나서자 적극적 제동을 건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3년 도쿄로 납치되자 김 전 대통령 구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권 당시인 2017년에는 언론 기고를 통해 중국에 주한 미군 철수를 약속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23년 독일에서 태어난 키신저 전 장관은 유대인 출신으로, 1938년 나치의 유대인 이주 정책에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다.
1969년 닉슨 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에 발탁되면서 정치에 입문한 이후 1973년 9월 보좌관과 국무장관을 겸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동시에 지낸 사람은 지금까지 키신저가 유일하다.
그는 최근까지도 활동을 멈추지 않으며 평생을 외교에 헌신했다. 97살이던 2021년에는 인공지능(AI)과 관련된 저서를 펴냈고, 지난해에는 '리더십: 현대사를 만든 6인의 세계 전략 연구'라는 책을 펴내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지적했다. 올해 7월에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과 만나 미중 관계의 발전을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