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놓고 전문가들 의견 엇갈려… 다수는 폐지 찬성
매일일보 = 나광국 기자 | 정부가 전매제한 완화와 함께 시행하기로 했던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이 연내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시장에 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실거주 의무 폐지가 불발되면 거래절벽 현상이 장기화되고 전·월세 시장 공급 감소로 시장에 충격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업계 일각에서는 투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폐지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3일 국회에 따르면 지난 2월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이 대표 발의한 실거주 의무 폐지 내용이 담긴 주택법 개정안이 오는 21일 논의할 예정이나, 오는 2024년 1월 초 본회의 상정 가능성은 적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갭투자 조장을 이유로 해당 법안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거주 의무는 문재인 정부 시절 투자 성행에 따른 집값 폭등으로 제정된 규제법안이다.
이제는 정권이 바뀌고 금리가 오르면서 시장이 위축되자 실거주 의무를 폐지해 시장에 조금이라도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게 대부분 부동산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침체된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서는 거래량 회복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 집 마련 수요자들의 시장 진입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실거주 의무가 유지되면서 집을 매도한 뒤 실거주 완성을 위해 재임차 하거나, 매수인의 경우 사고도 실거주 기간 동안 집에 들어가 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올해 초 시행된 전매제한 해제와 함께 실거주 의무 규제를 같이 풀어주지 않는다면 시장에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며 “경기가 하락하는 시점에선 어느 정도 수요를 양성화시켜 시장 정상화를 해야 하고 그래야 정책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빅데이터랩장은 “앞서 정부가 전매제한을 완화했는데 실거주 의무가 여전히 남아있으면 매도자가 그 의무를 완성하기 위해 집을 팔아도 실거주 의무를 완성해야 한다”며 “이러면 주택을 구입한 사람이 입주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 시장에 혼란만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주택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부동산 시장에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면서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지 않는다면 거래절벽 현상은 더욱 공고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택을 청약받은 사람 중 실거주를 의무적으로 하게 돼 잔금을 치르기 위해 기존에 전세로 사는 집의 전세금을 빼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실거주 의무는 이같이 주택시장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폐지가 맞다고 생각하고 만약 폐지되지 않는다면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막아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민주당 주장대로 전세사기 등 투기 조장으로 인한 폐해가 적지 않은 만큼 규제를 그대로 유지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정부 관련 대책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실거주 의무가 풀리면 투기 수요를 자극할 수 있어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현재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가구 중에서 입주를 전세 후에 하려고 하려는 사람과 바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구분해야 한다”며 “일부 피해 보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전면 폐지는 시장을 흔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실거주 의무 폐지가 어려워진 만큼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무주택자가 청약에 당첨돼도 아파트가 준공될 때 입주하지 않으면 투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부분”이라며 “향후 집행 유예조치 등을 통해 숨통을 틔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