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법안 유예하되 업종‧규모별 로드맵 마련해야"
매일일보 = 권영현 기자 | 이번 주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유예 여부가 결정되는 가운데 제조업과 건설업 등 산업계 중소기업에서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21일 국회와 산업계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이 오는 27일부터 50인 미만(건설현장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소규모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된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에 대한 2년 유예안이 담긴 법안을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50인 미만 사업주들은 경기가 불황인 데다, 안전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이유로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 유예에 찬성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2023년 11월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1053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4%는 아직 법 적용을 준비 중이라고 답변했다. 특히 안전보건 담당자가 없다고 답한 기업도 45%에 달했다.
만에 하나 야당 반대로 본회의에서 유예가 불발될 경우 소규모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돼 산업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게 되면 경영책임자‧사업주 등에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수도권 소재 한 배관 제조기업 A대표는 “25일 본회의에서 2년 유예가 무산되면 당장 이번주부터 중대재해법이 소규모 사업장에 적용되는데 사고라도 발생할 경우 대표부터 법정에 끌려다녀야 한다”며 “중소기업의 경우 사장이 영업부터 생산 등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회사가 마비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A대표는 “경기가 침체됨에 따라 주변에서 자금난이 심각한 사업주들이 많은데 여기에 안전보건관리자를 한명 더 채용하면 자금난이 더욱 심화돼 파산할 사업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전기공사 전문건설업체 소속 B임원은 “건설업은 기준이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현장으로 확대되면 모든 현장이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간다”며 “건설공사의 경우 한 번의 방심이나 소통 오류만으로도 사고가 발생하는 현장이다 보니 안전보건관리자가 있다 하더라도 사고 발생을 막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이어 “공사기간 등의 압박이 있어 소규모 현장에서 안전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면 공기 맞추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무엇보다 가장 문제는 지방이나 수도권에서도 접근성이 좋지 않은 곳에 있는 현장에 안전보건 자격증을 보유한 관리자를 채용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지 2년이 지난 50인 이상 중견기업들은 중대재해법 자체에 대한 실효성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IT업계 중견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은 사고 책임 여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있어 제대로 대응하기 위한 작업이 이뤄지는 중”이라며 “업계 특성상 사망사고보다는 업무상 질병이 많아 관련된 조항 개선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2022년 1월 27일) 전인 2021년 산업재해자수는 12만2713명이었으나, 2022년 13만348명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사망자수도 2080명에서 2223명으로 143명 늘었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 유예 여부를 떠나 적합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재욱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기업의 규모와 업종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사항을 준수하는 역량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규모와 업종에 맞는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며 “시행 전에 준비를 했어야 했지만 시행을 먼저 하고 대응 조치를 마련하는 등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철저한 계획과 로드맵을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50인 미만 확대 적용은 유예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중소기업들의은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할 인력이 없는 상황을 감안해 정부가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관련 인력 채용 시 인건비를 지원하거나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 등 세금혜택을 주는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전제돼야 한다”며 “그후 정부 주도의 컨설팅을 통해 체계를 구축하고 운영하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