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제일…이렇다 할 대비책 없어
"초반 선례 안돼…관리·감독 철저"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이상 50인 미만(건설업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된 지 3일차. 첫 평일 근무일인 29일 서울 시내 소규모 단독건물 공사 현장들에선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공정률이 절반에 가까워진 서울 영등포구의 한 현장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근로자들은 안전모와 보호 장구를 착용한 채 분주하게 작업 중이었다.
사전 연락 없이 급히 현장을 방문한 기자를 향해 현장 인력 관리자 A씨는 "그 문제(중대재해법 확대)로 제일 신경 쓰이는 시기에 찾아왔다"면서 "일단 머리에 맞는 안전모부터 찾아서 쓰라"고 다그쳤다.
그는 "회사에서 오늘부터 (안전문제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연락을 받았다"면서도 "일단 기존에 하던 대로 하되, 안전모나 안전벨트, 버클 착용과 고정 장치를 유심히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근 또 다른 건설 현장에서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다만 주요 공정이 끝난 뒤, 마무리 작업 중인 상황에서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고 이동하는 인부들도 다수 목격됐다. 소규모 현장인 이 곳에 상시 배치된 안전관리 전문인력은 없었다.
현장 한켠에는 '산업안전보건법령(산안법)' 주요내용이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시공 중인 외부 벽면에는 '안전대 미착용자 고소작업금지' 등을 알리는 안전 강조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회사 관계자는 안전보건법 숙지와 현장 인력관리 등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B씨는 "보다시피 아무래도 작은 현장에선 인력관리도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아침 조회나 CCTV 등을 통한 안전관리는 실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면서 "안전관리자를 채용하는 건 회사 몫이지만 이런 현장에선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사고는 관리자들이 바짝 신경을 쓰더라도 근로자가 방심하면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런 점을 파고들어 고용주만 처벌하는 못된 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날이 따뜻해지고 점차 더워지면 긴장이 풀리고 안전 장비 착용도 느슨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했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법이 적용된 굵직한 건설 현장과 대형 시공사들은 뚜렷한 비용 집행과 대내외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 사례들을 토대로 안전·보건 예방 및 관리에 노하우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회사가 영세하거나 현장 규모가 작은 대다수 공사 현장들은 중처법 대응을 하지 않았거나 비용과 인력 등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준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1월 전문건설사 781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위해 안전 관리체계 구축과 인력·예산 편성 등의 조치를 한 기업은 전체의 3.6%에 그쳤다. 나머지 96.8%는 별다른 조치 없이 종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문건설사 67.2%는 '방대한 안전보건 의무와 내용의 모호함'을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준비가 미흡한 이유로 들었다. 뒤이어 '비용 부담'(24.4%), '전문인력 부족'(8.4%) 등의 순이었다.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장을 비롯한 건설업계에선 줄기차게 △2~3년간 법정 적용 유예 △안전 역량을 갖출 지원책 모색 △중소업체 실정에 맞는 법령 개정을 요구했지만, 국회에서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업계와 현장에선 유예가 불발된 건 어쩔 수 없지만 초반 선례가 되지 말자는 분위기다. 충북 지역 전문건설사 대표는 본지와 통화에서 "일감이 떨어지는 와중에 중처법까지 겹쳐 힘들다"면서 "사고와 책임자 처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 당분간 현장을 수시로 둘러보고 신경 쓸 생각"이라고 전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 등 중대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법이다. 2021년 1월 공포 후 이듬해 1월 시행됐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27일부터 전면 확대됐다.
다만 5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업종·규모별로 안전관리자나 보건관리자 등을 일정 인원 이상 둬야 하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자 선임의 의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