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80% 절감' 등 기후 중간목표 발표
농업 부문 규제 삭제…농민 시위 의식한 듯
환경규제 불만↑에 6월 EU 선거 '극우 약진' 우려
매일일보 = 이설아 기자 | 유럽연합(EU)이 강경한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에 농업 부문 제재 방안을 철회했다.
6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2040년까지 EU 전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90% 감축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2040년 기후 중간목표 관련 통신문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통신문은 2040년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 전체 화석연료 사용을 80%까지 줄이고 이를 신재생 에너지, 원자력 등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다만 집행위의 통신문은 법적 구속력이 없이 권고에 그치는 문서다.
주목할 점은 통신문에 농업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권고안이 삭제된 상태라는 것이다. 애초 언론에 유출된 목표 초안에는 2040년까지 EU가 전체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 농업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5년 대비 30% 감축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대해 웝크 훅스트라 EU 기후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연설에서 "시민 대다수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지만, 자신들의 생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걱정하고 있다"며 "우리는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EU의 태도 변화는 유럽 각지에서 농민들이 EU의 환경규제 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이어감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8일 프랑스 농부들이 트랙터를 몰고 거리를 봉쇄하며 시작된 농민 시위는 현재까지 벨기에, 독일 등 서유럽부터 루마니아와 폴란드 등 동유럽, 이탈리아 등 남부까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특히 1일에는 EU 특별정상회의에 맞춰 상경한 벨기에 각지의 농민들이 EU 각 기관이 모인 'EU 지구'로 연결되는 벨기에 브뤼셀 시내에 1000여 대의 트랙터를 정차시켜 통행을 막으며 분노를 드러냈다.
이러한 시위의 원인으로는 최근 수년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작비 급상승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염가의 우크라이나 농산물이 시장에 대량 유입되며 농민들의 생계가 크게 위협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EU의 환경규제가 더해지며 농민들의 민심이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 EU는 환경 보호 등을 이유로 보조금을 신청할 시 농경지 일부를 휴경지로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유해성이 높은 살충제 사용을 금지하는 등의 규제를 펼치고 있다. 농민들은 이러한 규제 조항이 농산물 생산비용을 높인다는 입장이다.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EU와 각국 정부는 규제 완화 등을 발표하며 달래기에 나섰다. 경작지 휴경의무를 한시적으로 유예하고,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의 수입 제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러한 조치가 미흡하다며 시위를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해, 농민 시위가 진정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한편 EU는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농민들의 지지에 힘 입어 환경정책에 적대적인 극우 정치세력이 약진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