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최근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갓 입사했다는 타매체 기자에 민주주의의 반대개념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했더랬다.
처음에는 무미건조하게 공산주의라고 했다가 무언가 이상했는지 “어?” 하더니 엘리트주의 아니냐는 답변이 돌아온다. 남북이 분단된 한반도 특성상 공산주의 내지 전체주의라고 답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필자가 아는 한 정답이다.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전체주의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언뜻 보면 상반되는 개념이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 민주주의도 전체주의처럼 방종은 지양한다. 애초 필자가 개인주의의 반대개념을 물어봤었다면 정답은 전체주의였다.
엘리트주의의 정의는 문화와 시대적 상황에 따라 광범위하다만, 소수가 다수를 이끌어야 한다는 사상을 기본으로 한다. 사람들 사는 곳에 능력의 고하는 존재하고,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버리는 민주주의의 맹점을 커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를 전면부정 할 수는 없다.
요는 엘리트주의는 원시국가처럼 소수에 의한 지배나 독재에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굉장히 조심히 다뤄야 할 도구라는 것이다.
최근 국내 엘리트집단 중 하나라 일컬어지는 의사들의 행태를 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상이라고 판단되는 주체와 도구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전공의를 비롯한 의과대 교수와 학생들은 근 한 달째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드러누운 상태다.
물론 민주주의에 기초한다면 의사들도 국민으로 나라의 주인이다. 메스를 잡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다만 그들은 타인들도 이 나라의 주인이고, 똑같이 노력해 똑같은 직종을 선택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부정했다. 자유시장경쟁까지 부정한 것은 덤이다.
국민 열에 아홉이 물어본다는 의대정원 확대 반대 논리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의사 수가 갑자기 많아지면 의료서비스 수요가 증가하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된다 한다.
의사가 늘어나면 없던 병이 갑자기 찾아오고, 멀쩡한 상태에서도 진료를 받고 싶어진다는 건지. 코로나19 시절 의사 부족과 과로를 호소한 것은 벌써 잊어버렸는 지 묻고 싶다.
그들 주장대로 급진적인 의사 충원이 문제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성인들답게 선대화를 이끌었어야 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어기면서까지 국민생명을 담보로 진료를 거부해야 할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필자의 지인 3명이 제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곤란한 상황이다.
본인들만이 엘리트이고, 본인들만이 노력했고,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본인들만 누려야 한다는 일종의 방종이다. 2000년대 초 로스쿨 도입 때도 그랬다. 당시 현직 판검사와 변호사는 물론 사시 준비생들의 반발은 지금의 의사들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소위 엘리트라는 지성인들이 이제 갓 사회에 진입한 20대 청년도 1초 만에 아는 민주주의와 엘리트주의간 차이를 혼동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인성과 기본 인문소양은 경시된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을 짓눌러야 한다는 조기 경쟁논리가 반세기 이상 이 땅을 지배해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학창시절 전교 1, 2등에 대한 주변의 평은 볼 것도 없이 법조인·정치인·의사의 삼지선다였다.
엘리트 괴물들 양산을 부추기는 지금의 교육체계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이 땅에 건강한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