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방향은 여야 모두 동의… 방법과 도입시기는 엇갈려
경영계 "단축보다는 조정" vs 노동계 "저출산 대응 위해 단축"
매일일보 = 김수현 기자 |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근로시간 단축이 제시되고 있으나, 각계 각층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형국이다.
2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국내 연간 근로시간은 187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55시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 중 국내보다 더 긴 근로시간을 가진 나라는 콜롬비아·멕시코·코스타리카·칠레 등 4개 국가 뿐으로 모두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다.
미국(1815시간)을 포함해 △일본(1607시간) △영국(1532시간) △프랑스(1511시간) △독일(1341시간) 등과 비교하면 아직도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한국도 매년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추세다. 다만 국내 결혼적령 인구들의 경우 경제사정이 열악한 만큼 맞벌이 가구가 많아 육아에 대한 여유가 없거나, 출산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주 4일제 도입 여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일하는시민연구소는 지난 1월 엠브레인에 의뢰해 19세 이상 임금 노동자 300명을 주 4일제 도입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7.3%(정규직 68.1%, 비정규직 66.7%)가 주 4일제 도입에 찬성했다. 지난해 9월 임금 근로자 500명으로 대상으로 했던 조사보다 찬성률 5.9%p 높아진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당위성이 형성되기는 했으나, 도입시기 및 방법론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달라 말만 무성할 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형국이다.
한 예로 여야의 경우 모두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민주당은 주 4(4.5)일을 도입하고 최소휴식시간(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해 1일 근로시간을 제해 2030년까지 근로시간을 OECD 평균 이하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또한 연차유급휴가 취득 조건을 1년에서 6개월로 줄이고, 연차 저축제도와 연차휴가 부여 의무화로 휴가 사용을 촉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기업들이 곤란해 할 것을 의식해 당장 주 4일제를 도입해 근로시간을 단축시키는 데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출산대책과 유연근무제 도입을 추진하는 대안을 마련 중이다.
실제로 권혁태 국민의힘 수석전문위원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근로시간 감축이 바람직하나, 당장 법정 주 40시간 단축 입법은 노사 모두에게 현실적이지 않다"고 했다.
경영계에서도 실적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만큼 당장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보다는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내용의 유연근무제를 확대해 생산성과 일·생활 균형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지난해 매출액 1000대 기업 인사·노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근로시간제도 운영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 중 82.5%는 유연근로시간제가 업무효율·생산성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또 불필요한 초과근로를 줄일 수 있는 제도로 유연근로시간제(73.8%)를 선택했다.
박용민 한경협 경제조사팀 팀장은 “일률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한다면 산업별·기업별로 여건이 다른 상황에서 산업현장의 혼란과 고용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팀장은 이어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의 여건과 근로자의 선호가 잘 부합돼야 가능한 부분으로, 법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강제한다고 이뤄질 수 없다”고 전했다.
반면 근로자들은 저출산 문제가 선진국들에 비해 심각해 결국 국내경제에도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조속한 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윤현식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은 "노동시간 단축은 지금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더 이상은 늦출 수 없다"며 "최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다양한 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전망이기에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나누는 등의 대책이 조속히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