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주사위는 던져졌다." 고대 로마의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너 이탈리아 북부로 진격하면서 했던 말이다. 중대한 결정으로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을 찍고, 전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일컫는다.
대한민국에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라는 새로운 주사위 하나가 던져졌다. 국민을 대표해 입법 권한을 행사하는 300명의 구성원들을 4년 만에 뽑는 중차대한 결정이었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윤석열 정권을 제대로 심판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여론과 다시 한번 합심하고 공조해야 한다는 여론이 격하게 맞섰던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앞으로 4년간 국회발(發) 거대 후폭풍이 나라를 뒤덮게 된다.
각설하고 선거는 끝났고, 결과는 나왔다. 각 당이 차지한 의석수와 당락의 희비보다 더 중요한 건 직접 선거를 통해 투표소에서 후보를 찍어준 유권자들의 믿음에 보답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여야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굵직한 공약을 경쟁적으로 꺼내 들었다. 새로 뽑인 300명의 국민 대표는 이를 어떻게 하면 잘 이행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낙점한 국민들은 공약 추진 상황을 수시로 감시하고 채찍질해야 한다.
특히 세간의 이목이 쏠린 건설·부동산 공약으로 더불어민주당은 △도심철도 지하화 △GTX 노선 신설·연장 △무주택자를 위한 기본주택 100만 가구 △임차인등록제 및 임대시장 투명화 △월세 세액공제 확대 및 소득기준 상향 등을 제시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도심철도 지하화 △지방권 광역 급행철도(x-TX) 구축 △청년·신혼·출산 가구 공공분양 확대 △인구감소지역 주택 구입 시 주택 수 제외 △인구감소지역 주택 양도세 비과세 등을 내놨다.
다만 거대 양당은 건설·부동산 정책의 경우, 그 효과나 부작용이 단기간에 확인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엄습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과거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제각각 쏟아낸 부동산 규제 완화 또는 강화 정책들과 건설시장 부흥 대책들을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일례로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부동산 규제를 대폭 풀었고 이는 노무현 정부에서 집값 폭등의 단초가 됐다. 이후 노무현 정부들어 규제 고삐를 바짝 조였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초반 발발한 미국발 금융 위기와 집값 급락, 거래 부진, 건설사 줄도산 등은 4대강 사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건설경기 부흥책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까지 지속된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는 정비사업 규제 철폐와 대출 완화로 연결됐고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엔 전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와 유동성 범람으로 5년 내내 집값이 폭등하는 부메랑이 됐다.
이런 사례로 미뤄볼 때 윤석열 정부의 집권 전반기 건설·부동산 정책의 성패를 판단하는 건 시기상조다. 또 당장은 건설·부동산 시장 침체의 골이 깊어 보여도 무분별한 규제 철폐, 정부 개입 일변도로 나가서도 안 된다.
최근 지방에선 초대형 미분양 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서울과 수도권에선 몇백 대 1이라는 청약 결과도 심심찮게 나온다. 기울어진 수요가 확인되고 있고 인허가·착공 등 선행지표 추락에 따른 최선호 지역 공급 부족과 집값 급등도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총성 없는 전쟁과도 같았던 총선을 끝낸 여야 의원들은 이제 지역구에 나가 현안을 살피고 진영을 떠나 전문가 집단의 견해를 가감 없이 수렴하고 소통해야 한다. 반대로 대통령실 또는 야당의 불통(无法接通)에서 중대한 정책의 시동이 걸린다면 그 여파와 후유증은 3년 뒤에 출범할 새 정부와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