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라톤 승부 조작…스포츠 정신, 이제 옛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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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마라톤 승부 조작…스포츠 정신, 이제 옛말인가
  • 김원식 마라톤 해설가·전남 함평중 교사
  • 승인 2024.04.2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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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식 마라톤 해설가·전남 함평중 교사
김원식 마라톤 해설가·전남 함평중 교사

매일일보  |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중국 마라톤 풀코스 신기록 보유자인 허제 선수가 선수들을 포섭해 승부 조작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이날 대회에서 선수들은 출발하기 전에도 무언가를 상의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허제 선수를 위해 속도를 조절하거나 마지막 결승선 앞에서는 노골적인 손짓으로 앞서가도록 독려하는 장면이 중계방송 화면에 노출되었다. 

승부 조작 논란이 일자 가담한 선수들은 허제의 중국 하프마라톤 기록 경신을 위해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한 선수의 양심선언으로 사실이 밝혀졌다. 고용된 선수 중 한 명인 케냐 윌리 음낭가트 선수는 중국 신기록을 세우도록 돈을 받고 의도적으로 레이스를 펼쳤다고 고백했다.

베이징 하프마라톤 조직위는 우승자 허제를 비롯해 승부 조작에 가담한 이들 모두의 기록과 대회 상금을 취소했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공정한 경쟁을 위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나라 마라톤에도 승부 조작의 흑역사가 있다. 1982년 제36회 조선일보 마라톤 대회에서 승부 조작으로 무더기 기록 박탈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당시 남자부 1위로 골인한 선수는 같은 소속의 정모 선수와 채모 선수로 두 선수는 골인 지점을 100여m 앞두고 박자를 맞추듯 나란히 레이스를 펼쳐 2시간 21분 8초의 기록으로 공동 1위를 했다. 20분대 돌파를 간절히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은 뒷전으로 한 채 1위를 담합한 치졸한 행위라며 지탄받았다. 

결국 조선일보사는 대한육상연맹과 합의해 부정을 저지른 모든 선수의 기록 박탈을 결정하며 한국 마라톤의 치부의 날로 기록되었다. 당시 손기정 옹은 빗속에서 처연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나라를 잃은 몸으로 세계를 제패했소. 한데 당신들은 조국을 찾고도 더 좋은 기록은 못내고 불미스러운 행동을 합니까. 기록을 경신해서 국민의 여망에 보답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마라톤은 대대적인 재정비를 했다.

돈이면 뭐든 산다는 세상이지만, 스포츠 정신은 과연 얼마의 가치를 지녔는가? 운동선수에게 스포츠 정신은 생명이다. 자신의 생명에 값어치를 매겨 파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승부 조작은 스포츠의 암이며, 이를 바로 잡지 않는다면 결국 스포츠를 사라지게 할 무서운 병이다. 

건강한 면역력을 가진 신체는 돌연변이 세포를 모두 죽이듯 스포츠계 또한 자생 능력을 키워 운동 선수들이 건강한 스포츠 정신을 지니고 경쟁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가르쳐야 할 것이다.

 

김원식 마라톤 해설가·전남 함평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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