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문장원 기자 | 4‧10 총선에서 여당이 역대급 참패를 당하면서 가장 큰 관심은 윤석열 대통령이 그동안의 국정 운영 방향 변화에 쏠렸다. 민심은 사실상 윤 대통령의 대오각성을 촉구하는 철퇴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발언 형식을 빌어 밝힌 첫 입장은 '국정 기조는 옳다'였다. 총선 민의를 받아 들고 반성하는 대신 아집과 독선만 드러낸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영수회담을 제안하고 이를 위한 실무회담에 임하는 자세에서부터 윤 대통령의 '마이 웨이'는 확실히 느껴졌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치고 나서야 부랴부랴 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고, 실무회담을 직전에 앞두고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을 교체하며 신경전을 펼쳤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만남에서도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은 없이 비공개로 회동을 전환하려고 하다가 이 대표가 제지하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비공개 회담에서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발언 비율이 85대 15 정도로 계산됐다고 할 정도로 일방적으로 본인의 이야기만 했다. 대통령실이 70%가량이었다고 반박했지만, 85나 70이나 그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다. 국정 쇄신은커녕 '잘했는데, 세심하지 못했다'는 인식 수준인데 '듣겠다'며 제1야당 대표를 앞에 앉혀 놓고 자신의 이야기만 쏟아낸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영수회담 이후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민심 청취라는 이유로 자신이 폐지했던 민정수석실을 부활하겠다는 것이다. 야당 대표가 전하는 민심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민심을 청취하겠다고 자기 말을 뒤집는 건 '듣고 싶은 민심'만 듣겠다는 것 아닌가. 또 민심을 듣겠다면서 민정수석 후보에 검사 출신이 유력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민생특보라는 없던 자리를 만들어 자신과 친한 검찰수사관 출신을 앉히더니 민심을 듣겠다면서 검사를 전면 배치하는 것이 말이 되나.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윤 대통령의 일방적 독주, 오만함의 기저에는 이른바 '검사 무오류 신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검찰의 수사가 잘못될 리가 없다는 믿음, 인사에 드러나는 검찰 만능주의를 아직 윤 대통령이 고수하고 있어서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는 종합예술이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정치가 이런 정치는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