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속도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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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속도 내야
  • 김혜나 기자
  • 승인 2024.05.16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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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10곳 중 4곳, 기술탈취에도 無조치
피해 사실 입증 어려워…자료 확보부터 난항
기술탈취 사건이 급증하면서, 국내 상황에 맞게 수정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기술탈취 사건이 급증하면서, 국내 상황에 맞게 수정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매일일보 = 김혜나 기자  |  해가 거듭될수록 기술탈취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국내 상황에 맞게 수정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6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은 기술탈취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 결과, 특허 출원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10곳 중 4곳 이상이 기술탈취 피해를 경험했지만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기술탈취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워서(78.6%)를 가장 많이 꼽았다.

피해회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는 피해경험이 있는 업체 10곳 중 7곳이 ‘정부의 기술탈취 피해사실 입증 지원’(70.6%)을 꼽았다.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23.5%)가 그 뒤를 이었다.

정부가 지난 2021년 기술탈취 피해입증을 지원하기 위해 하도급법에 도입한 ‘상대방당사자에 대한 자료제출명령’ 규정도 잘 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 이유로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피해기업이 자료를 특정해서 법원에 신청해야 하는데, 가해기업이 자료를 보유하고 있어 정확한 특정이 어렵다’(53.0%)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입증 과정이 어려운 만큼 중소기업의 승소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2 중소기업 기술보호수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1년부터 손해배상소송에서 중소기업이 승소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하다.

재단법인 경청이 지식재산권 출원 및 보유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 중 50.1%만이 현재 한국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방지 및 기술 보호에 대한 법과 제도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기술침해 발생 시 법원 재판에 앞서 양측이 각자 필요한 자료를 상대방과 제3자에 요구할 수 있는 디스커버리 제도(증거개시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76.9%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현재 피해 기업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바로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기업들은 기밀 유출을 우려해 자료 제출에 소극적이며,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기술탈취 양상은 복잡해지는 상황이지만 관련 자료 확보의 어려움은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윤석열 대통령이 ‘스타트업 코리아 전략회의’에서 기술탈취를 중범죄로 규정했고, 정부와 국회도 법 개정에 나섰다. 하도급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27일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개정, 공포했다. 개정법에서는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취득한 후 부당하게 자기 또는 제3자를 위해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해 수급사업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책임을 지도록 했다.

다만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고, 기술탈취 문제가 지속되는 만큼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당사자 간에 서로의 소송과 관련된 증거를 제출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미국·영국·일본 등이 도입했다. 공정성 측면에선 장점이지만, 인력과 시간을 비롯한 비용 증가와 소송 지연 등의 단점도 존재한다. 특히 기술탈취 분쟁 시, 증거 공개 과정에서 영업비밀 침해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점을 보완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기술탈취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법원이 전문가를 지정하고, 해당 전문가가 관련 증거를 수집하는 방식이다.

최근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가능성이 관측됐다. 김시형 특허청장 직무대리는 13일 정부대전청사에서 ‘기술보호 대책’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4중 안전장치가 완성돼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김시형 직무대리는 “영업비밀 유출을 소개·알선·유인하는 브로커 행위를 침해로 규정해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신속히 도입,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며 “이번 기술보호 4중 안전장치를 발판삼아 기술유출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엄단하겠다”고 말했다.

과거 기술탈취 문제를 겪었던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기술탈취 피해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피해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들 대다수가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우선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자료 준비는 필수임에도, 자료 입수부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해 법이 개선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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