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새로운 정치 질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뉴딜과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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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새로운 정치 질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뉴딜과 신자유주의』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4.05.17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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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딜 질서의 폐허에서 출현해 미국과 전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 역사에 대한 총체적 이해
- 루스벨트, 레이건, 클린턴 그리고 트럼프와 샌더스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년간 좌우가 함께 일군 정치 질서의 두 얼굴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이민, 인종, 계급 등을 중심 주제로 정치와 사회구조를 분석해 온 역사가 게리 거스틀(케임브리지대학교 폴 멜런 교수)은 ‘정치 질서(Political Order)’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30여 년간 뉴딜과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살펴 온, 정치경제 및 역사 학계의 권위자이다.

게리 거스틀은 지난 1989년에 ‘뉴딜 질서’를 분석한 『뉴딜 질서의 흥망 1930-1980(The Rise and Fall of the New Deal Order, 1930-1980)』(이하 『뉴딜 질서의 흥망』)을 펴내며, ‘정치 질서’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뉴딜 질서”라는 용어는 193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미국 정치에서 민주당이 행사한 지배력을 강조하는 용어로 대중화됐다. 『뉴딜 질서의 흥망』에 이어 34년 만에 후속작으로 펴낸 ‘The Rise and Fall of the Neoliberal Order’(2022)는, 직역하면 ‘신자유주의 질서의 흥망’으로 국내에서는 『뉴딜과 신자유주의: 새로운 정치 질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아르테 필로스 시리즈 28번)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과 전 세계를 이끌어 온 신자유주의의 시작점에서부터 해체에 이르는 역사를, 30여 년 전 게리 거스틀이 제시해 대중적으로 확립한 ‘정치 질서’라는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분석의 관점으로 톺아보았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그로써 신자유주의 주제를 다룬 수많은 도서 중 독보적 혜안의 제시가 가능하다. 즉, 신자유주의를 단순한 경제 사조나 경제정책의 틀과 담론으로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를 통틀어 ‘진보와 보수를 모두 아우르는 현실의 질서’로서 파악함으로써, 지구화(globalization), 세계경제 통합, 감옥 국가, 불평등 심화 등 주요 기제가 된 신자유주의를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한다. 홍기빈 역자는 옮긴이의 말에서, 게리 거스틀의 ‘정치 질서’는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용어를 쓰자면 ‘역사적 블록(il blocco storico)’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제도나 정책 몇 가지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세계 전체로 확장”해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저자가 내놓는 독특한 혜안” 또한 도출될 수 있음을 논설했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보이고 있는 양극단의 정치적 상황에서,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정치 질서에 대한 식견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정치 질서는 어떻게 탄생하고 해체되는가?

“--지난 100년간의 역사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에 정치 질서의 개념이 어떤 쓸모가 있는지를 보여 주고자 한다. 이 개념은 엘리트와 대중, 경제와 도덕, 국내와 국제 등 여러 복잡한 힘의 형세가 작동하면서 정치적 삶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 게리 거스틀

거스틀은 ‘정치 질서’를 “2년, 4년, 6년 등의 선거 주기를 버텨 내면서 중장기적으로 정치를 형성해 온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하고, 지난 100년간 나타났던 두 정치 질서를 ‘뉴딜 질서’와 ‘신자유주의 질서’라고 칭한다. 따라서 이 책에는 미국이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시절에 뉴딜을 수용하고 이를 반세기에 걸쳐 국가 중심 정책으로 사용한 뒤 어떻게 가차 없이 포기하게 되었는지, 또 오늘날 양극화, 경제적 불평등 등 여러 문제점을 낳은 신자유주의가 197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절에 발흥해 어떠한 과정을 거쳐 해체에 이르게 되었는지의 면밀한 분석 틀을 제공한다. 이 분석으로 우리는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정치의 흥망성쇠 패러다임을 통찰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뉴딜 질서가 진정으로 확립되었던 때는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권기가 아니라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정권이었다는 점, 또 신자유주의가 확고히 자리 잡게 된 때는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의 시대가 아니라 민주당의 클린턴 정권이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정당정치에서 정치 질서는 어느 한쪽 정당의 독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오히려 야당 진영의 정당과 정치인들이 지배적 정당의 노선과 이념을 받아들여 ‘묵종(acquiescence)’할 때에, 즉 그럴 때에야 ‘헤게모니’가 진정으로 관철되고 한 정치 질서가 비로소 성립된다는 점을 역설한다.[냉전, 그리고 뉴딜 질서에 대한 공화당의 묵종(68쪽), 민주당의 묵종과 저항(248쪽)] 『뉴딜과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한 정치운동이 새로운 정치 질서로서 어떻게 안착하게 되는지를 뉴딜 질서(1부)와 신자유주의 질서(2부)를 중심으로 면밀히 탐구한다. 저자는 한 정치 질서가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을 잃게 되면 이는 그 질서가 쇠퇴하는 신호로서, 급진적/이단적/비현실적으로 간주되어 온 정치사상이 주류에서 떠오르게 된다고 논설한다.

1970년대 뉴딜 질서의 해체로 인해 오랫동안 ‘비웃음’ 받아 온 신자유주의 사상이 경제를 조직하는 주된 원리로서 뿌리를 내렸고, 또 지금이 다음 질서의 향방을 가를 기로에 있다. 게리 거스틀은 신자유주의 질서의 해체가 기정사실화된 현재 도널드 트럼프식의 권위주의, 샌더스식의 사회주의가 번창하는 공간이 열렸음을 역설하며 앞으로 펼쳐진 새로운 정치 질서에 대한 혜안을 제공한다.

21세기의 산업기술, 국제 정세, 사회적 요구에 조응하는
새로운 질서의 출현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이 책의 1부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루스벨트 정권과 민주당 세력이 주도한 뉴딜 질서의 흥망을 다루지만, 이는 2부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신자유주의 질서가 이전 질서와 어떻게 다른지, 또 그 발흥과 해체까지의 과정을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저자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과 공화당이 밀어붙인 자유시장주의 이데올로기와 그 지지 세력이 부상하는 과정을 새롭게 분석해 밝히고, 1990년대에 빌 클린턴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묵종하고 어떻게 확장시켜 나갔는지를 그려내고 있으며, 또 조지 W. 부시에 이르러 기고만장한 태도로 모든 일에 신자유주의 원리를 들이밀었던 결과로 미국 경제를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로 몰아넣음으로써 신자유주의가 붕괴의 지점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상세히 펼친다. 거스틀은 신자유주의 담론에 대해서도 다면적이며 색다른 관점으로 살핀다. 기존의 연구자들은 신자유주의를 지배 엘리트들이 “여러 해방 운동의 싹을 밟아 버리기 위해” 만들어 낸 사상과 실천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엘리트 중심 모델만으로는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광범위한 지지와 호응을 얻게 됐는지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해방과 개인성을 약속’한 고전적 자유주의와 친연 관계이며, 이러한 가치 덕분에 모든 사회 성원에게 설득력을 지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담론은 진보적인 신좌파[흑인 권력(black power), 여성주의, 다문화주의, 게이 프라이드(gay pride) 등]에도 영향을 미쳐 신자유주의의 힘과 영향력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지나면서, 뉴딜에서 비롯된 국가 관료적인 통제에 반기를 들었던 ‘신좌파 세력’이 신자유주의 담론과 어떻게 친화력을 가지게 되었고, 스티브 잡스 등이 실천했던 히피와 같은 반문화(counterculture) 운동이 어떻게 IT 혁명과 금융 혁명 그리고 시장의 자유 등을 지지하는 흐름으로 연결되는지를 흥미롭게 추적한다.

좌우가 함께 일군 신자유주의 질서의 두 얼굴
자유와 해방의 프로젝트, 지적ㆍ도덕적 개혁


신자유주의라는 주제를 다룬 책들이 넘쳐 나는 가운데 게리 거스틀이 이 책에서 펼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차별적인 관점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앞서 언급한 대로 신자유주의와 고전적 자유주의의 긴밀한 관계이다. 이는 둘 사이의 차이점을 강조해 온 기존 학자들과 대극의 위치에 선다. 거스틀은 “신자유주의를 고전적 자유주의의 후손으로 다루어야 한다”(18쪽)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가 금융자본의 수탈을 위한 지배 엘리트들의 의도이자 계획이 아닌,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와 해방의 프로젝트’로서 고전적 자유주의를 고수하던 세력이 일으켰던 초기의 신자유주의였다는 점이다. 레이건은 이러한 고전적 자유주의의 해방적 언어를 20세기 말 청중에게 주도적으로 전달해 부활시켰으며, 그리하여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또한 이는 신자유의가 진보적 좌파에도 확산되는 결과로 이어졌음을 밝힌다. 둘째는 좌파 신자유주의의 확산이다. 거스틀에 따르면, 정치 질서는 한 정당의 독주가 아닌 야당의 위치에 있는 세력 및 정당이 지배적 노선과 이념을 수용하고 묵종할 때 비로소 진정으로 정치 질서가 자리 잡게 되며, 신자유주의 역시 이와 같은 경로를 밟았음을 해설한다. 뉴딜 질서가 진정으로 확립되었던 때는 뉴딜 질서에 묵종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정권 시절이며, 신자유주의가 확고한 정치 질서로 자리 잡은 것은 민주당의 클린턴 정권이 적극적으로 지구화와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를 밀고 나가며 신자유주의 질서를 묵종한 때라고 말한다. 셋째는 공산주의 몰락이 신자유주의에 미친 영향이다. 즉 공산주의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공산주의의 위협이 작동했던 방향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를 기존의 역사서들과는 다르게 이해하는 관점을 제공한다. 거스틀은 공산주의의 몰락은 거대하고 광활한 지역에 자본주의가 침투할 수 있는 길을 열었으며, 모순적으로 그전까지 뉴딜의 기조이자 뉴딜 질서가 유지하고자 했던 자본주의 엘리트와 노동자 사이 계급 타협의 제거를 촉진했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고 해석한다.

또한 소련과 공산주의가 몰락한 시점이 1989년과 1991년 사이라는 점은, 신자유주의가 어째서 1980년대보다 1990대인 빌 클린턴 정권기에 더욱 부흥했던 것인지를 정교한 분석 틀로서 흥미진진하게 논설한다.

정치경제사 100년으로 살펴본
오늘날 한국의 정치 현실


2008년과 2009년 사이에 벌어진 대붕괴, 소외 백인층의 티파티운동, 월 스트리트 점거 운동, ‘BLM(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라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 이러한 운동들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질서는 서서히 해체되었고(7장 해체, 418~488쪽), 종국에 지배적 위치를 점한 신자유주의가 트럼프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모순, 갈등, 심지어 혼돈의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8장 종말, 489~536쪽).

그렇다면 새로운 정치 질서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까? 거스틀은 새로운 정치 질서가 수립되는 것은 결코 간단하거나 쉬운 작업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질서의 폐허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90년 전의 뉴딜 질서가 만들어 낸 사회보장제도가 아직 살아남은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질서를 구성하던 요소가 아직 존속하고 있다고 해서 그 질서가 살아남았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거스틀은 우리가 알던 어제의 질서가 종식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현재를 지배하는 것은 정치적 무질서와 기능부전일 뿐이다”라고 일갈한다. 홍기빈 역자는 이 책의 통찰에 기대어 오늘날 한국의 정치 현실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오래전 노무현 정권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노선을 설명하면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어휘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이 참신한(!) 표현을 두고 당시에는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많았고, 특히 신자유주의는 그 자체로 보수우파의 것이라고 보는 단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그 말을 두고 형용모순이라고 비판할 뿐만 아니라 조롱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그저 ‘참신한’ 표현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역사적 블록의 구성과 성격을 적확하게 파악한 용어로 판명되었다. ---

루스벨트의 경우 그전 20년간 꾸준히 발전해 왔던 미국 제도주의 경제학과 영국의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있었기에 뉴딜의 정치경제 정책 및 제도가 가능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강조되듯이 레이건의 경우에서도 1940년대의 하이에크와 폰 미제스 그리고 시카고대학교 경제학자들 이후 수많은 싱크 탱크와 연구소에서 축적된 신자유주의적인 정치경제 사상, 이론, 정책 아이디어들이 필수 불가결의 준비 요소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질서 이후의 세상을 만들어 낼 정치 집단과 정책 및 제도의 아이디어는 언제 어떻게 마련될 것인가? 이 책은 대안적인 정치경제학이 필요한 현 시점에서 훌륭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게리 거스틀(Gary Gerstle)은 역사학자로 미국의 역사학자로 주된 연구 분야는 정치경제, 사회운동이다. 이민, 인종, 계급 등을 중심으로 18세기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미국의 정치·사회구조를 30년간 분석해 온 이 분야의 권위자다.
브라운대학교에서 학사학위,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역사학과에서 폴 멜런 교수로 재직하며, 20세기 미국사를 가르친다. 존사이먼구겐하임기념재단(John Simon Guggenheim Memorial), 미국 국립인문재단(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 등 수많은 기관에서 펠로십을 받았고, 프린스턴고등연구소의 회원으로 있다.
거스틀은 이 책에서 정치 질서(Political Order)라는 독특한 개념을 통해, 정치경제 및 이데올로기를 분석한다. 뉴딜 질서가 진정으로 확립되었던 때는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정권이었다는 점, 신자유주의가 확고히 자리 잡게 된 때는 민주당의 클린턴 정권이었다는 점을 여러 사례를 통해 분석할 뿐만 아니라, 한 정치운동 또는 사상이 새로운 정치 질서로서 어떻게 안착하게 되는지를 면밀히 탐구한 최초의 역사가이다.

역자  홍기빈은 정치경제학자로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을 마쳤고 캐나다 요크대학교에서 정치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어나더 경제사 1, 2』 『위기 이후의 경제철학』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등이 있고, 역서로는 『자유시장』 『광장과 타워』 『둠: 재앙의 정치학』 『카를 마르크스』 『도넛 경제학』 『거대한 전환』 등이 있다. 유튜브 채널 <홍기빈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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