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라이언 일병을 구해야 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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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라이언 일병을 구해야 했던 이유 
  • 조석근 기자
  • 승인 2024.06.0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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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근 정경부장
조석근 정경부장
전쟁영화 걸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보여준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지옥 그 자체다. 사선을 뚫고 어렵게 생존한 군인들 중 최정예 8명이 긴급 차출된다. '제임스 라이언'이라는 한 병사를 찾아서 귀환시키라는 명령이다. 그가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수색조는 막연히 라이언을 찾아야만 한다는 목표만을 품은 채 적진 한 가운데로 뛰어든다.  이들이 라이언을 구해야만 했던 사연은 이렇다. 미 국방부와 육군의 중대 결단이 작용했다. 라이언의 어머니 때문이다. 말썽쟁이들이지만 누구보다 씩씩했던 4형제의 어머니. 아들들은 어머니의 모든 것이다. 사랑과 추억, 삶 그 자체다. 남편 없이 아이들을 돌봤다. 
그 아들들 중 3명의 전사 통지서를 같은 날 받았다. 남은 아들마저 사망하면 어머니는 이 세상에 홀로 남는다. 어머니는 네 아들을 모두 전장에 보낸 것으로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 한 시민이 감내할 희생으로써 너무도 가혹하다. 전사 통지서를 붙들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무너진 어머니, 그 옆으로 그 아들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 비친다.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낸 명장면이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이렇게 설명한다. 단 하나의 '적'을 향해 모든 세계가 단결한 인류 유일의 기억이다. 독일과 일본을 주축으로 한 극단적 군국주의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미국 정부의 선택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다. 라이언 일병을 구출하고 끝내 장렬히 전사한 군인들은 국가의 의지 그 자체다.  인류사상 최대의 참혹한 전쟁 속에서 아무 힘 없는 어머니, 한 시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결단했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한편 절박한 희망을 말하는 영화다. 그래서 걸작이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위대한 감독이다.   왜 채수근 일병을 구하지 못했는가.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얻은 외아들이다. 그가 장성해 해병대로 입대했다. 잘 생겼고 훤칠하다. 100일 휴가를 나왔을 때 건장한 몸으로 어머니를 꼭 끌어안았을 아들이다. 그 아들이 어머니 곁에 없다. 구명조끼도 없이 급류 속에 투입되었다가 영영 떠내려갔다.  이 사건을 엄정히 수사할 의지를 보이던 해병대 수사단장은 항명죄로 재판 중이다. 당초 문제의 하천 수색을 반대했던 소속 대대장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사단장 이하 소속 부대 고위 간부들은 모두 무죄를 주장한다. 경찰에 이첩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결과를 국방부가 회수하고 사건의 방향이 틀어진 과정에서 국방부는 물론 대통령실의 강력한 외압이 있었던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향한 국회의 특검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표류하고 있다. 채 일병은 상병으로 추서된 후 해병대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윤석열 대통령의 추도 메시지는 이렇다. "국가유공자로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도록 하겠다.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  지금 채 상병 사건 수사와 특검을 둘러싼 정국이 과연 유공자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인가. 사고 원인은 철저히 조사되긴 했나. 채 상병과 그 어머니, 남은 해병대 전우들에 대한 대통령실 이하 정부의 의지는 무엇인가. 대체 누구를 구하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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