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분양가 상세 내역 공개 등 소신 실천
보수 단체장이 진보 인사 중용···이례적 評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김헌동 사장을 필두로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가 토지·주택 관련 정책 허점을 꼬집고 개선 방향을 잇달아 공론화하고 있다. 업계에선 매우 이례적인 행보로 평가되는 가운데, 자사 보유 자산과 분양가 내역을 주기적으로 공개해 투명·정도 경영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김 사장이 과거 수십 년간 주택·부동산 가격 거품 빼기 등 시민운동에 매진한 만큼 그의 오랜 소신이 임기 막바지로 갈수록 짙게 묻어 나는 양상이다.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SH는 고분양가와 부실시공 논란을 키우는 기본형 건축비 제도를 개선하고 선(先)분양제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치고 있다. 또 업계에서 영업기밀로 통하는 분양 원가를 전면 공개하는가 하면, 회사가 보유 중인 주택·토지 자산 내역을 일반에 완전히 내보이고 있다.
SH는 우선 건설업계 최대 현안인 기본형 건축비와 후(後)분양제를 화두로 던졌다. 현행 주택법상 기본형 건축비에 가산비와 택지비를 합산해 분양가가 산정되는 데 자체 분석 결과, 실제 공사 투입된 건설 원가와 책정된 분양가 간 괴리가 발생한다고 SH는 지적한다.
SH가 2005년부터 최근까지 진행한 분양 단지 142곳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분양 이익에서 택지비를 통한 이익은 110%에 달했다. 분양가에 적용되는 택지비는 3.85배 상승했지만, 실제 시공 원가상 택지비는 1.83배 상승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건축비는 실제 원가보다 반영 폭이 낮아 분양가에서 -10%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근거가 미흡한 기본형 건축비는 사업자 손실의 원인이 되고 택지비 부풀리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 건설사 대다수가 시행 중인 선분양제는 최근 일련의 사례들에서 보듯 부실공사가 발생하면 그 피해를 입주예정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만큼, 건축공정의 80% 이후 분양하는 후분양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SH는 보고 있다.
실제로 선분양제는 시공 단위면적을 기준으로 입주자모집공고 시점에서 '추정공사비'를 산출해 분양가를 결정한다. 이로 인해 시공 원가의 신빙성을 둘러싼 논란이 잦고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조합과 건설사 간 공사비 분쟁을 불러오고 있다.
반면 후분양제는 투입된 원가를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현실적인 분양가를 책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SH는 2006년 이 제도를 도입했고 2년여 전부터는 공정 90% 시점에서 후분양을 시행 중이다.
이와 관련된 분양 원가 공개에도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분양원가는 건설사들 사이에 영업기밀로 통할 만큼 민감한 부분이지만, SH는 지난 2021년 말부터 실제 투입된 공사비를 기준으로 산정한 분양원가(준공원가)와 수익률을 일반에 전면 공개하고 있다. 이를 공개하는 공공주택사업자는 SH가 유일하다.
SH는 지난 2022년 3월부터 공기업 최초로 자사가 보유 중인 자산 내역을 홈페이지에 전면 공개 중이다. 또 자사 주요 임무인 공공임대주택 현황을 민간 주택과 비교·분석하고, 객관화된 평가 지표를 제시하는 등 실질적인 사회 기여도를 내보이고 있다.
이는 김 사장이 취임 초부터 강조한 '열린경영·투명경영'의 일환으로, 노사를 망라한 전체 임직원들도 환경·사회·투명경영(ESG) 실천과 인권 경영 선언 등 자체 행사를 병행하면서 경영진의 방침에 발맞춰 가는 모습이다.
이 같은 노력으로 SH는 한국경영인증원(KMR)이 선정한 '인권경영시스템 인증 기업'에 올라 있다. 또 지난 3월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발표된 2023년도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에선 전국 도시개발공사 가운데 고객만족도 상승률이 가장 높게 나왔다.
김헌동 사장은 1981년부터 20여 년간 쌍용건설에서 쌓은 실무 경험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 감시단장,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뚜렷한 소신을 보여왔다. 이는 저렴한 아파트 공급 확대를 주창해 온 오세훈 서울시장과도 결이 맞아 떨어졌고, 보수정당 출신 단체장인 오 시장이 진보 성향인 김 사장을 직접 임명하는 이례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다.
김헌동 사장의 임기는 오는 11월 중순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