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6공 시기 매출 성장률 10대 그룹 중 9위에 그쳐
매일일보 = 최은서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관장과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에 대해 '진실을 바로잡겠다'며 상고장을 제출했다. 기여도와 자금 출처 등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어 향후 대법원 판결에서 SK그룹 성장과정에서의 '정경유착'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SK그룹과 6공화국 간 '정경유착'을 사실상 인정해 천문학적인 재산 분할 판결로 경영권 위협으로까지 비화되면서 최 회장의 이혼소송은 개인사가 아닌 그룹 대응 이슈로 번졌다. 이를 두고 최 회장은 "이번 판결로 지난 71년간 쌓아온 SK그룹의 가치와 그 가치를 만들어온 구성원의 명예와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이 이례적으로 직접 공식 석상에서 입장 발표에 나선 것은 항소심 재판부가 SK그룹과 노 전 대통령 간 정경유착을 기정사실화해 그룹 전반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K의 이동통신 성장史
대표적인 것이 이동통신사업 진출에 대한 특혜 의혹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SK그룹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무형적 기여가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SK그룹은 "해묵은 가짜뉴스로 진실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1984년 최종현 선대회장은 정보통신 분야를 그룹의 미래 중점 사업 분야로 정하고 미주경영기획실 내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하는 등 사업 진출을 위한 선제 대응에 나섰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1991년 선경텔레콤을 설립했다. 1992년 4월 당시 체신부가 제2이동통신사업 민간사업자 선정계획을 발표하자 선경텔레콤은 대한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사업자 경쟁에 참여했다. 포항제철, 코오롱, 동양, 쌍용, 동부 등 6개 컨소시엄 경쟁에서 선경이 1만점 만점에 8388점을 얻어 최종사업자로 선정됐다. 미래를 내다보고 경쟁사들 중 가장 앞서 통신사업을 준비하고 경험을 축적해온 결과였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인척 기업에 사업을 허가한 것이라는 특혜 시비에 선대회장은 사업권을 반납했고, 이후 김영삼 정부가 1993년 12월 제2이동통신사업 선정을 추진할 때도 전경련 회장으로서 공정성 시비가 재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불참을 선언했다. 대신 막대한 인수자금이 필요한 한국이동통신 공개 입찰에 참여했다. 소요 자금 규모와 위험이 훨씬 크지만 특혜시비를 차단하기 위한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민영화 발표 전 8만원대였던 한국이동통신 주가는 30만원까지 수직 상승해 지분 23% 인수자금은 4271억원까지 뛰었다. 그룹 안팎에서 '무리한 인수'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선대회장은 "우리가 통신 사업을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나, 회사 가치는 앞으로 더 키워가면 된다"고 일축했다. 1994년 인수된 한국이동통신은 1997년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바꿨고, 2002년 1월 신세기이동통신을 합병 완료했다.
◇"특혜 아닌 사실상 역차별"
재계에서도 SK그룹의 이동통신사업이 노 전 대통령의 특혜를 누렸다기 보다는 사실상 역차별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승자의 저주' 논란이 나올 정도로 더 큰 출혈을 감당하고 사업권 경쟁 대신 지분 매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 1987년부터 1992년까지 6공 기간 중 SK그룹의 매출 성장률은 당시 재계 10대 그룹 중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1987년 당시 SK의 연간 매출액은 약 5조3000억원으로 5위에 자리했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 말기인 1992년에 SK 매출액은 9조4000억원으로 재계 5위를 기록했지만 매출 성장률은 1.8배로 9위에 그쳤다. 같은 기간 매출 성장률이 가장 큰 기업이 4.3배 성장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6공 시절 SK 매출 성장세가 다른 그룹보다 더뎠던 셈이다.
이형희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은 "대통령 사돈기업으로 SK그룹이 특혜를 받아 많은 성장을 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마이너스 된 부분이 많이 있었다"며 "매출은 기업의 모든 경영성과의 최종 결과물인데 당시 이미 5위이던 SK가의 성장률이 9위에 그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동통신 사업 진출 당시 오히려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많은 규제 부처에서 SK에 대한 세무조사, 관계부처 조사 등이 진행돼 기업 경영활동에 굉장히 부담됐었다"며 "이동통신사업은 YS정부 시절인 1994년 경쟁입찰을 통해 인수했는데 6공 정부에 대한 청산 여론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비등한 시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