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신원정보 미제공에 따른 전상법 위반 혐의로 당근 제재 절차 착수
매일일보 = 오시내 기자 | 티몬·위메프 대규모 정산금 미지급 사태로 이커머스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한 가운데, 중고거래 플랫폼들마저 논란에 휩싸이며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번개장터는 거래수수료를 판매자에게 전가해 구설수에 올랐으며, 공정거래위원회는 신원정보 미제공을 이유로 당근에 대한 전자상거래법(전상법) 위반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가 결제 방식을 안전결제로 일원화하면서 소비자 부담 거래수수료를 전면 무료화한다고 밝혔으나, 그 수수료를 고스란히 판매자에 전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018년 4월 도입한 안전결제는 제3의 금융기관이 결제대금을 보관하고 거래완료 후 판매자에게 정산하는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 시스템이다. 에스크로는 티몬·위메프가 무리한 인수합병을 위해 소비자의 구매 자금을 유용해 문제가 되면서 주목받는다.
그간 번개장터는 안전결제를 구매자용 유료 서비스로 제공했다. 판매자에 비해 정보가 적은 구매자들이 안심하고 중고거래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번개장터에 따르면 안전결제 이용자는 올해 1분기 기준 누적 600만명을 넘어선다. 지난달에는 일본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 ‘메루카리(mercari)’와 단독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안전결제 서비스를 해외 상품 거래에도 적용했다.
안전결제 적용 범위를 넓히던 번개장터는 지난 1일 해당 시스템을 구매자 선택에서 의무 도입으로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구매자가 부담하던 거래수수료를 전면 무료화한다고 홍보했으나, 그 수수료를 판매자에게 전가해 논란이다. 그간 판매자들은 빠른 정산을 위해 안전결제 대신 실시간 계좌이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 조치에 따라 판매자들은 의무적으로 안전결제를 이용해야 하며, 거래수수료 3.5%를 번개장터에 지급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번개장터가 일부 구매자만 사용하던 안전결제를 전면 도입하면서 판매자에게 거래수수료를 전가해 수익 늘리기에 나섰다고 비판한다.
번개장터 애용자는 “수수료 무료라고 했지만 구매자가 부담하던 수수료를 고스란히 판매자에게 전가한 꼼수”라며 “전문 사업자도 아닌 일반 판매자가 안 쓰는 물건을 거래하는데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면 번개장터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는 최근 전상법 위반 혐의로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한 건 지난 2020년 6월이다. 공정위는 당근이 판매자의 성명,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등 신원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판매자와 구매자 간 분쟁 발생 시 해당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당근은 전화번호 인증만 하면 가입해 플랫폼 내에서 물건을 사고팔 수 있다.
전상법에 따르면 통신판매중개업자는 판매자의 신원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통신판매중개업자는 사이버몰 등을 통해 판매업자가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 수 있도록 알선하는 사업자를 말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플랫폼에 해당 법을 적용하는 건 현실성이 없으며,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피해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당근은 네이버, 쿠팡 등이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것과 달리, 개인 간의 거래가 이뤄지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뿐”이라며 “만일 당근이 신원정보를 수집해 제공하기 시작한다면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지난 2021년 공정위가 전상법을 개정해 개인 간 거래 방식의 C2C 플랫폼에도 강한 규제를 적용하고자 했을 때도 터져 나왔다. 당시 업계와 여론의 반대에 개정안은 무산됐고, 당근에 대한 전상법 위반 조사도 지지부진하게 흘렀다.
이후 공정위는 입장을 달리해 당근과 원만한 합의점을 찾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공정위는 당근과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이용자 안전 확보 및 분쟁 해결’을 위한 자율준수 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20년 이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던 공정위가 갑자기 제재 절차를 통보한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지난해 MOU까지 체결했던 공정위가 묵혀뒀던 제재를 꺼내 든 것을 두고 업계 내에서 앞뒤가 맞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