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1만대당 1.3건…내연차보다 적어
실내주차장 화재, 스프링클러 역할이 가장 중요
매일일보 = 김명현 기자 | 지난 1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이후 이른바 ‘전기차 공포증’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정부는 지난 25일 전기차 화재 방지 대책을 발표했고, 자동차 및 배터리 제조사도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고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의 기술력을 전파하는 등 전기차 공포심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잘못된 정보와 막연한 오해가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 확산을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업계에서는 명확한 사실관계를 통해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전기차 화재의 언론 보도가 늘어나며 ‘전기차는 화재가 많다’는 인상을 주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화재는 비전기차와 전기차 합계 매년 4500건 이상 발생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4800건에 이르는 등 하루에 약 13건 이상 발생할 정도로 빈번하다.
다만 연도별 자동차 누적 등록대수를 기준으로 산출한 1만대당 화재 건수는 지난해 기준 비전기차는 1.86건, 전기차는 1.32건으로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며, 전기차 화재 발생 비율은 비전기차에 비해 30% 정도 낮은 상황이다.
또 소방청의 화재 통계는 충돌 사고, 외부 요인, 전장 부품 소손 등에 따른 화재를 모두 포함하고 있고 초소형 전기차, 초소형 전기화물차, 전기삼륜차까지 함께 집계된다. 이런 요인을 제외하면 승용 전기차에서 고전압배터리만의 원인으로 화재가 난 사례는 훨씬 줄어든다. 전기차가 더 화재가 많이 일어난다는 생각은 오해인 셈이다.
‘전기차 화재는 열폭주 때문에 진압이 어렵고, 차량이 전소돼야 불이 꺼진다’는 주장도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전기차 화재는 내연기관차와 마찬가지로 여러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으며, 실제로 기타 부품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한 대부분의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 열폭주를 수반하지 않았다.
배터리팩은 고도의 내화성, 내열성을 갖춰 배터리 이외 요인으로 화재 발생 시 불이 쉽게 옮겨붙지 않으며, 배터리 화재의 경우에도 최신 전기차에는 열폭주 전이를 지연시키는 기술이 탑재돼 조기진압 시 화재 확산 방지가 가능하다.
지난해 7월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실시한 ‘전기차 화재 진압 시연회’에서 조선호 경기소방재난본부장은 “전기차 화재의 초진이나 확산 차단이 내연기관 차량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며 전기차 화재 진압이 내연기관차 화재 진압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일축한 바 있다.
화재 완전 진압까지 걸리는 시간이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더 오래 걸려 피해가 크다는 것도 대표적인 오해라는 지적이다.
일부 전기차 화재에서 초기 진압은 단시간에 이뤄지더라도 이후 혹시 모를 배터리 화학 반응에 대비해 차량을 일정 시간 소화 수조에 담가 놓거나 질식포로 덮어 모든 배터리 에너지가 소모될 때까지 관리한다. 이 과정은 소방청 관리 하에 안전하게 이뤄지고 주변에 화재 피해를 확산시킬 수 없기 때문에 긴 화재 진압 시간에 대해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전기차 화재는 비교적 최근인 2010년대 후반 이슈화돼 적절한 화재 진화 매뉴얼의 부재로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전기차 화재의 특성 파악 및 소방 기술의 발전에 따라 화재 진압 시간을 줄여주는 여러 화재 진압 솔루션이 등장했다.
특히 소방기술 솔루션 업체들은 전기차 화재 진압 시간을 10분 내외까지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기술을 앞다퉈 개발하고 있어 전기차 화재의 진압 시간은 점차 짧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의 열폭주를 동반해 온도가 1000도 이상으로 치솟기 때문에 내연기관차 화재보다 위험하고 피해가 크다는 주장도 사실과는 다른 면이 있다.
기본적으로 배터리 1kWh의 열량은 3.6메가줄(MJ)로 가솔린 1리터의 열량 32.4메가줄 대비 크게 낮다. 즉 같은 용량이라면 열량이 높은 연료를 싣고 있는 내연기관차의 화재 확산 속도가 더 빠르고 차량 외부 온도도 더 높이 오르는 편이다.
중형급 승용의 경우 가솔린차는 약 50L급 연료탱크, 전기차는 약 80kWh급 배터리가 탑재되며 연료가 100% 채워진 상태에서의 열량은 각각 1620메가줄, 288메가줄로 환산된다. 따라서 같은 차급이더라도 가솔린차가 지닌 에너지량이 전기차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볼 수 있다.
한국방재학회는 2021년 발행한 ‘전기자동차와 가솔린자동차의 실물화재 비교 분석’ 논문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검증했다. 실험은 구형 레이 가솔린차와 전기차를 사용했으며, 가솔린차는 폭발 위험에 대비해 3L만 주유하고 전기차는 100% 완전 충전한(NCM 배터리 16kWh) 조건으로 진행됐다.
실험 결과 가솔린차의 화재 확산이 더 빠르고, 외부 온도도 훨씬 높게 올라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두 차량 모두 실내 온도는 1300도 수준을 기록한 반면, 외부 온도는 가솔린차가 최고 935도, 전기차는 최고 631도로 큰 차이를 보였다.
업계는 지하주차장 등 실내에서 자동차 화재가 발생한 경우 전기차, 내연기관차 등의 차량 종류와 무관하게 스프링클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화재소방학회가 지난 4월 발행한 ‘지하주차장 내 전기자동차 화재의 소방시설 적응성 분석을 위한 실규모 소화 실험’ 논문에 따르면 스프링클러 작동만으로도 인접 차량으로의 화재 전이를 차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여기에 더해 전기차 화재에 특화된 하부 스프링클러까지 설치된다면 배터리 열폭주 가능성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점도 같은 논문을 통해 확인된다.
실제 지난 5월 전북 군산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해 45분 만에 진화됐고, 인접 차량은 2대만 화재가 아닌 소화 활동에 따른 피해를 입는 등 화재 규모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반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경우에는 내연기관차 화재이더라도 피해 규모가 큰 편이다. 지난 2022년 대전의 한 아울렛 지하주차장에서 1톤 트럭에서 시작된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수백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사고나 2014년 용인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120여대의 차량 피해를 낸 사고 등 내연기관차의 화재로 인해 대형 피해가 발생한 사례도 다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지하주차장 등 실내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 화재 양상과 피해 규모는 발화 요인이 아니라 스프링클러의 정상 작동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분석이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탄소 감축을 위해 전기차 전환이 국가별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라는 점에 전 세계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자동차업계는 고객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전기차 안심점검 서비스 △배터리 기본 점검 강화 △전기차 생애주기 통합지원 프로그램(현대차 EV 에브리 케어/기아 e-라이프 패키지) △BMS(배터리관리시스템) 순간 및 미세 단락 감지 기술 적용 △배터리 이상 징후 문자메시지 전송 등을 시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기회로 전기차 및 전기차 화재에 대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 일반 시민들이 잘못 알고 있는 정보로 인한 전기차 공포심을 줄이고, 사회 전반이 일관성 있고 건설적인 준비를 통해 전기차 시대를 올바르게 맞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배터리 셀 제조사와 함께 품질을 철저히 관리하고, BMS를 통한 사전 진단으로 더 큰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배터리 이상징후 통보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소방청은 오는 11월 20일까지 3개월간 스프링클러 설비가 갖춰진 전국 아파트 지하주차장 중 10%를 대상으로 화재안전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며, 전기차 화재진압 전용장비 확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좌우명 :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