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렌의 다양한 삶의 궤적을 복원한 통찰력 있는 평전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크리스티나 하트먼(청각장애를 지닌 운동가)은 말했다. “우리 사회는 이 똑똑하고 입체적인 여성을 영감을 자극하는 우화와 농담으로 끌어내렸다. 켈러 같은 사람을 하찮게 여긴다면 나 같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대할까?” 20세기 가장 대담한 인물 중 한 명인 헬렌 켈러에 대한 이야기는 ‘펌프장에서의 기적’ 서사와 대중적인 이상화 작업에 의해 헬렌 켈러의 유쾌한 재치, 평화운동가로서의 면모, 급진적 사회주의 선동가로서의 활동은 간과되어 왔다.
맥스 월리스의 『헬렌 켈러』는 ‘장애를 극복한 천재 소녀’라는 이미지에 가린 헬렌 켈러의 열정적인 사회 정치적 삶의 면모를 완벽히 복원한 평전이다.
생후 19개월 때 심각한 병을 겪고, 듣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게 된 헬렌 켈러는 애니 설리번을 만난 후 적합한 교육을 받기 시작해 언어를 습득하고 세상과 소통했다. 전 세계 장애인의 권리 증진을 위해 평생 애쓴 것은 물론이고, 미국의 가혹한 인종차별과 열악한 노동 환경, 계급과 젠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하고 빈자와 약자 편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애 내내 투신했다. 이 책은 헬렌 켈러의 따뜻한 성자 이미지를 벗기고 전투적 사회주의자의 초상을 그린다.
남부 출신임에도 짐크로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누명을 쓰고 투옥된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고, 노동자들의 시위에 연대하는 헬렌 켈러의 모습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자신의 한계를 잘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세상의 변혁을 위해 싸운 헬렌의 서사는 한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한다.
하지만 월리스의 연구가 헬렌 켈러의 정치적 역정의 위대함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헬렌의 사고와 활동, 주변인(애니 설리번, 존 메이시, 폴리 톰슨, 넬라 브래드 헤니, AFB 내부 활동가)과의 미묘한 관계, 정치적 관계 등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수많은 인터뷰(피터 페이건의 자녀 앤 페이건 진저, 노엄 촘스키 교수, 엘라 간디, 아룬 간디, 산자이 굴라티 박사, 존 헤인즈와 하비 클레어 등 공산당 운동사 전문가, 헬렌켈러기록보관소 및 헬렌 켈러 연구자)를 진행한다.
헬렌과 애니 설리번과의 관계와 관련한 디테일한 문제에도 천착하며, 헬렌의 장애 정치를 폄하하거나 헬렌이 1920년대 이후 사회주의를 버렸다고 보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근거를 갖고 비판한다.
마크 트웨인, 조지프 에드거 체임벌린, 찰리 채플린, 데일 카네기, 유진 데브스, 옘마 골드만, 빅 빌 헤이우드, 루스벨트 대통령 부부 등 수많은 유명 인사와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헬렌이 논리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헬렌의 주된 활동과 그 이면을 아우르는 통찰력 있는 저작으로 정치사적 가치 또한 충분하다.
저자 맥스 월리스(Max Wallace)는 캐나다의 역사가, 인권운동가, 영화감독, 장애인 권리 운동가이다. 현재 대중문화, 인권 문제, 홀로코스트를 전문 분야로 BBC와 《선데이뉴욕타임스(Sunday New York Times)》에 기고하고 있으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저자는 몬트리올의 홀로코스트 연구소인 앤앤드맥스베일리센터(Anne and Max Bailey Centre)의 전임 이사로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USC 쇼아재단(USC Shoah Foundation)과 협력하며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증언을 녹화했다. 역사가로서 홀로코스트 시대의 조직적 구출 작전, 유대인 구조를 위한 나치 고위층과 지하조직망의 비밀 협상을 10년 이상 연구하고 기록해 왔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시각장애, 부분시각상실을 지닌 사람들을 위한 티브이 네트워크인 AMI-TV와 협력해 비디오영화 및 텔레비전 대본 수백 편을 집필했다.
2017년에 출간한 『인류의 이름으로: 홀로코스트를 끝내기 위한 밀약(In the Name of Humanity: The Secret Deal to End the Holocaust)』은 선풍적 베스트셀러로서 2018년 캐나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논픽션 문학상인 RBC 테일러상(RBC Taylor Prize)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캐나다유대인문학상(홀로코스트 부문)을 수상했다.
역자 장상미는 대학원에서 시민사회 운동을 공부하고, 번역 자원 활동을 하던 시민단체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하며 출판 번역을 시작했다. 옮긴 책으로 『멜트다운』 『재난 불평등』 『가려진 세계를 넘어』 『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등이 있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