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상래 기자 | “중국 업체는 폄하할 대상이 아니라 무서워해야 할 대상이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이 최근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4’를 찾아 중국 업체 TCL과 하이센스 제품을 살펴본 뒤 이렇게 말했다. 조 사장은 “중국 업체 TCL과 하이센스 전시를 보니 굉장히 많이 따라왔다”며 “제품 다양화 측면에서는 굉장히 경계해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1위 가전업체인 LG전자의 수장이 전한 경고는 예사롭지 않다. 미국, 유럽 등 서방국가와 비교해 중국을 은근 폄하하는 분위기가 강한 국내에서는 더욱 새삼스럽다. 특히 국내 산업계에서 앞선 기술력을 내세워 중국보다 우위를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 디스플레이업계는 과거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을 중국에 내줬고, 최근에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줄곧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던 K-디스플레이는 올 1분기 처음으로 중국에 밀리고 말았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 1분기 글로벌 OLED 시장에서 중국 기업 합산 점유율은 49.7%로 한국의 점유율 49%를 앞섰다. 근소한 차이라며 안심할 때가 아니다. 불과 1년 전 한국이 중국을 25.7%p 차로 크게 앞섰던 것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국내 조선업계도 점유율 싸움에서는 중국에 밀린지 오래다. K-조선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기술력을 앞세워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 기술 격차를 업계에서는 보통 3년 정도로 본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이 정부 주도 하에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는 만큼 이 기술격차는 안심할 수 없다. 게다가 중국은 불법적 ‘기술 유출’을 악용해 격차 줄이기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산업계의 대표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전기차와 배터리 경우도 중국의 기세는 어마어마하다. 중국 전기차 산업은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세계 최대 내수 시장의 무시무시한 결합으로 초고속 성장 중이다. 반면 미국, 유럽의 전통적인 자동차 강자들은 전기차 케즘(일시적 수요 정체) 영향으로 관련 투자를 축소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체도 내수를 기반으로 한 중국 업체들의 그칠 줄 모르는 해외 팽창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나 중국은 원료부터 생산까지 이어지는 전기차-배터리 밸류체인 완성에 다가가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위협받는 국내 산업계가 살 길은 오직 ‘혁신’뿐이다. 과거의 틀에 머물려 공허한 외침의 혁신이 아닌 인재양성부터 조직문화까지 바꾸는 새로운 틀의 혁신 말이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탓인지 여전히 과거 패러다임에 머무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가전은 LG’ 구호마저 탈피한 LG전자 수장의 경고를 국내 산업계 전체가 새겨들을 때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