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법률 용어 중에는 ‘요식(要式)행위’라는 단어가 있다. 의사표시가 서면 등 일정한 방식으로 행해질 것이 요구되는 법률행위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일상에서 ‘별 의미는 없으나, 형식적으로 구색을 갖추기 위해 하는 행위’라는 의미로 활용되기도 한다.
달력이 한 장씩 넘어가며 한 해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때에는 기관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예방교육 출강 제의가 물밀 듯이 들어온다. 그런데 출강하다 보면 종종 어떤 조직은 예방교육을 요식행위로 대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기관은 이미 수많은 법정의무교육을 실시해야 하므로 피로도가 가중된 것이다.
그러나 ‘최선의 관리는 예방’이라는 측면에서 실효적인 예방교육은 긍정적인 조직문화 형성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이하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예방교육 운영 시 알아두면 좋을 사항에 대해 살펴본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이라 함)에 따라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교육인 반면 현행 법령상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은 법정의무교육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업장에서 1년에 최소 1회 이상 시행이라는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성희롱 방지 교육하면서 괴롭힘 교육도 함께 하고는 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때에 △관련 법령 △사업장에서 사건 발생 시 처리 절차 및 조치 기준 △사업장의 고충상담 및 구제 절차 △예방에 필요한 사항 등을 필수적으로 포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괴롭힘 예방교육도 이와 유사한 구성으로 진행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성희롱 및 괴롭힘의 법적 판단 기준 및 해당 사례를 함께 소개해 구성원들이 현장에서 스스로 문제 행위를 판가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예방의 목적을 강화할 수 있다.
교육 대상자로는 근로자가 포함될 수 있으며, 남녀고용평등법은 근로자는 물론 사업주도 성희롱 예방교육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으므로 교육의 취지를 고려해 사업장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삼으면 된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파견근로자에 대해 예방 교육을 실시할 의무는 그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사업주에게 있다. 이러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용사업주는 파견근로자가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하는 ‘보호의무’를 부담하므로 파견근로자 또한 교육 대상자로 선정해 성희롱 및 괴롭힘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적절하다.
고용노동부는 성희롱 예방교육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교육 1회당 수강 인원이 50명을 초과하지 않을 때 교육의 효과가 가장 크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직급별로 교육 회차를 구분한 후 하급 직원 대상 교육에서는 사건 발생 시 신고 및 대응 방법을 중심으로, 상급 직원 대상 교육에서는 하급 직원과 고충 상담 시 자세 등을 중심으로 내용을 차별화해 실시할 수도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3년간 보존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법원은 피용자의 괴롭힘 혹은 성희롱이라는 불법행위에 대해 사용자가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사용자책임’의 성부, 사용자가 보호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함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의 존부를 판단할 때 예방교육 실시 여부를 고려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교육일지, 자필 서명이 담긴 참석자 명단, 교육 실시 사진 등을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한 기관에서 여러 일자에 걸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했다. 마지막 날 강의 시작 전에 교육 담당자가 수강생에게 강사인 필자를 소개하면서 지난 며칠간 수강생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며, 실생활에서 적용 가능한 내용이 전달된 점이 만족의 요인으로 꼽혔다고 설명했다. 담당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현듯 그동안 마주했던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이 떠올랐다. 기본적인 상담과 대화가 불가할 정도로 정신 질환을 호소하는 그들의 얼굴이 차례로 겹쳤다. 현장에서 도대체 어떤 종류의 예방교육을 하기에 오늘날에도 노골적인 가해 행위가 지속되고, 신고해도 대응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한지 생각이 들며 씁쓸했다. 그러니 교육은 잠재적 가해를 방지할 적절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코 요식행위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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