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상래 기자 | 10년 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1등은 지금의 맨체스터 시티가 아니었다. ‘해버지’(해외 축구 아버지)로 통하는 박지성 선수가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였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시절의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출범 20년간 무려 13회 리그 우승을 해냈다.
그리고 2012-2013 시즌을 끝으로 퍼거슨 감독은 맨유를 떠났다. 그로부터 최근 10년간 맨유는 단 한 번의 우승을 이뤄내지 못했다. 우승 경쟁 레이스에 끼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지금도 맨유는 팬들을 분노케 하는 경기력에 머물고 있다.
스포츠 세계에서 영원하고 당연한 1등은 없다는 냉엄한 진실은 반도체 산업에도 똑같이 통한다. 20년 전 ‘인텔 인사이드’ 스티커는 PC의 명품 인증과도 같은 것이었다. 원조 ‘반도체 제국’ 인텔이 만든 CPU는 최고의 자부심 그 자체였다.
그랬던 인텔이 이제는 부진의 늪에 빠져 피인수 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최근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이 인텔에 인수를 타진한 것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반도체 황제로 군림했던 인텔의 올해 적자 규모는 1분기(1∼3월) 3억8100만 달러에서 2분기(4∼6월) 16억1000만 달러로 늘어났다.
반도체 제국 인텔이 무대 뒤로 퇴장할 때 새로운 황제 등극을 앞둔 기업이 바로 한국의 삼성전자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 1위를 수십 년간 지켜왔던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기반의 인텔이 부진하자 종합 반도체 1위 자리를 꿰찼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까지 넓혀가며 종합 반도체 초격차 기업을 꿈꿨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불안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8일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잠정실적을 발표하며 대표이사 명의의 반성문을 내놨다. 잠정실적이 시장 추정치보다 낮게 나오자 삼성전자 반도체를 이끄는 전영현 부회장이 사과문을 발표한 것이다.
인텔이 시스템 반도체 최강자로 군림할 때부터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부동의 세계 1위였다. 시장 점유율, 매출과 영업이익 그리고 투자 및 연구·개발(R&D) 지출까지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 존재감을 과시했다.
요즘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삼성 위기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리더십이 실종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프리미어리그 최강자 맨유와 반도체 제국 인텔처럼 삼성전자에도 영원하고 당연한 1등은 있을 수 없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전영현 부회장의 사과문이 절대로 일기장으로 끝나선 안 되는 이유다. 전 부회장은 지난 2분기 실적 반등을 두고 “근본적인 경쟁력 회복보다는 시황이 좋아진 데 따른 것”이라며 “최고 반도체 기업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조직 문화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뼈를 깎는 조직문화 쇄신에 회사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