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용 기자 |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마법사들의 사회를 그린 소설 ‘해리 포터’는 완결된 지(2007년) 17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비단 소설 뿐 아니라, 등장인물 개개인에 대한 팬덤까지 형성됐을 정도다.
대부분의 팬들은 해리, 론, 헤르미온느 등 주연급을 좋아하지만, 매니아를 자처하는 이들은 맥고나걸, 매드아이, 통스 등 조연급 캐릭터의 활약까지 기억하고 열렬히 사랑한다.
본 기자도 해리 포터의 오랜 팬으로서, 앞서 언급된 인물들을 모두 좋아한다. 다만 주요 인물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바로 '루퍼스 스크림저'다. 스크림저는 연재 막바지인 6권부터 등장한 인물로, 마법 정부의 장관이다. 사실 비중이 거의 없어서 오랜 팬들조차 언뜻 들으면 “누구?“라고 되물을 수도 있다.
이 인물의 진가는 자신의 직업 윤리를 끝까지 관철한 사명감에서 비롯된다. 악의 조직이 부활해 사회가 흉흉해지자, 마법 정부는 스크림저를 적임자로 보고 장관으로 임명한다. 그는 머글(인간)사회로 치면 강력계 형사 혹은 검찰인 ‘오러’ 출신으로, 범죄자와 최전방에서 싸워온 무골이다.
스크림저와 주인공 삼인방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다. 스크림저는 보수적인 기성 세대 공무원으로 묘사됐으며, 해리는 그를 대화가 안 통하는 꽉막힌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소설 최종편에서 악의 조직에 의해 마법 정부가 전복되고, 악당들은 해리를 죽이기 위해 그 소재를 아는 스크림저를 고문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함구했고 결국 죽음을 맞았다.
소설에선 그의 죽음이 겨우 한두줄로 묘사되지만, 개인적으론 이 부분이 전체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었다. 그의 죽음을 결코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이유는, 그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사법공무원답게 끝까지 범죄와 타협하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해리를 위해 희생했던 인물은 종종 나왔지만, 다들 혈연 관계거나 개인적인 인연으로 맺어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스크림저는 해리와 단 한 번 마주쳤을 뿐 아무런 관계도 없고, 오히려 사이가 안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림저는 직무에 걸맞는 도덕심과 강직한 신념, 그리고 무고한 시민 한사람의 안녕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다.
현재의 의정갈등을 살펴보자. 정부, 정치인, 의사 모두 ‘국민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문제는 이들에게 ‘신념’만 있을뿐, 진정 국민의 안녕을 바라는 이들이 없단 점이다.
정부는 지역사회 의료공백을 해결한다며 의대증원을 추진했으나 결과적으로 의사들이 현장을 이탈하는 결과를 낳았다. 의사들은 정부의 의료개혁이 국민의 보건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환자를 저버리고 사표를 던졌다. 의대증원에 동의했던 정치인들은 저들만이 의사들과 대화할 수 있다고 입으로만 떠들 뿐, 정작 입법기관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애써 모른체 한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국민들의 희생은 돌아보지 않고 본인들에게 손해되는 건 절대 하지 않는단 점이다. 정부는 의료개혁을 철회하자니 자존심이 상할 터다. 의료계의 속내는 증원이 기존 의사들의 기득권을 해친다고 본다. 여야 정치인들은 저들 입맛에 맞는 법안은 짝짜꿍으로 통과시키더니, 의정갈등에선 언제나 정부와 의사 탓만 한다. 대통령은 의사들이 통제되지 않자, 계엄으로 복귀를 강제하는 무리수까지 뒀다.
이들 모두 저들의 자존심과 안위를 지키기 위해 국민의 이름을 팔아먹는다. 마법부 장관은 일개 학생 하나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쳤다. 만약 우리 정치인들이 정말 국민 이름을 들먹이고 싶다면, 자신들이 가진 것부터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