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한듬·정두리 기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생태계 구축을 위해 지난 2011년 도입된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시행 3년마다 실효성을 검증해 재지정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방침에 따라 올해 34개 품목 신규 지정과 82개 품목 재지정을 앞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갈등이 불 붙고 있는 것. 이에 <매일일보>가 이 제도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과, 진정한 상생 생태계 구축을 위해 나아가야할 방향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
① 벙어리 냉가슴 앓는 대기업들 ② 사회양극화의 해소 바라는 中企 ③ 모두가 행복한 동반성장 길은
“솔직히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합니다”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기업 A사의 관계자는 대번에 손사레를 쳤다. 워낙 만김한 주제인 탓에 어떤 이야기든 함부로 꺼내기 어렵다는 것. 제도 도입 당시 찬반논란의 중심에 섰던 B기업의 관계자 역시 “사업 확대의 길이 막힌 대기업 입장에서 제도를 찬성하기는 어려운데, 그렇다고 이에 대한 애로사항을 말했다가는 자칫 상생 역행 논란에 휩싸일 우려가 있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기 어려운 입장”이라고 토로했다.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2011년 도입된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제도’가 올해로 시행 3년을 맞이했다.이 제도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부터 중소기업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시행 이후 지금까지 막걸리, 간장, 세탁비누 등 100개 품목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정해졌다.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 3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의를 통해 대기업의 사업철수 내지는 확장 자제가 이뤄진다.이후 3년마다 재지정 여부를 결정하도로 돼 있는데, 올해 가 바로 그 해이다. 다음 달 34개 품목 신규 지정에 이어 하반기 82개 품목에 대한 재지정이 결정된다.하지만 이를 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대기업은 이 제도를 대기업의 경쟁력을 가로 막는 규제로 지목하며 경영상의 애로점을 호소하는 반면,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중소기업의 보호를 위해 제도가 더욱 보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이 같은 논란은 사실 제도 도입 당시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문제다.
특히 두부·간장 등도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이를 주력사업으로 성장해온 중견기업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일었다.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도 이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다음 달 지정 예고된 34개 품목을 들여다보면 자동차 임대업, 문구 도·소매업, 여행업, 예식장업, 기업용 메시징 서비스 등 민감한 품목이 적지 않다.여기에 더해 지난 12일 실태조사를 마친 정보기술(IT)서비스업의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놓고 적절성 논란이 가중되는 양상이다.이 품목들이 모두 적합업종으로 지정될 경우 하반기 예정된 82개품목 재지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기싸움이 치열하다.물론 적합업종 제도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권고사안이다.하지만 적합업종 품목을 지정하는 협의체인 동반성장위원회는 적합업종 권고 미이행시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 신청을 할 수 있어 대기업들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 규제’라고 반발하고 있다.그러나 대기업들은 제도에 대해 개별적으로 직접 불만을 표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섣불리 문제점을 제기했다가는 ‘동반성장을 거스르는 기업’으로 낙인이 찍힐 위험이 있기 때문.실제로 대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측이 올해 초 제도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제기하자 “대기업 집단이 적합업종을 공격하고 있다”는 중소기업계의 거센 반발에 휩싸이기도 했다.하지만 전경련 측은 적합업종 제도의 실효성을 먼저 신중하게 검증하고 목표를 뚜렷이 하자는 것이지, 제도를 공격하거나 폐지를 하자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이상호 전경련 산업정책팀장은 “최근 실태조사를 마친 IT서비스 업종의 경우 규모가 30조원대에 이르는데, 이를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 국가 경쟁력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며 “너무 성급하게 시행하는 것 보단 실효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적합업종 제도의 도입 목적은 중소기업의 근원적 경쟁력 확보와 산업발전에 대한 기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 있다”며 “하지만 지난 2월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매출이 늘었다고 응답한 곳은 9.1%에 불과해, 과연 이 제도가 중소기업들에게 실익이 되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어 “단순히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는 것은 이미 실패한 공유업종 제도의 전철을 밟는 것에 불과하다”며 성급한 제도 시행을 경계했다.그러면서 그는 “적합업종 제도의 도입으로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그 실효성을 먼저 검증한 뒤 제도의 목적을 뚜렷이 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