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필벌’에 대한 신뢰부터 쌓자
[매일일보 한아람 기자] ‘한강의 기적’. 1960년대를 시작으로 반세기만에 국내총생산(GDP) 1조 달러를 기록한 우리나라의 상전벽해 급 경제성장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이 같은 초고속 경제성장으로 2014년 세계 경제순위 13번째에 오른 우리나라가 선진국 경제 반열에 올랐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선진국형 마인드’까지 갖췄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이처럼 ‘선진국’이라는 수식어가 아직 어색한 배경에는 후진국형 마인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들의 ‘낯부끄러운’ 부패실태가 자리하고 있다.경제만 ‘선진국’…청렴도는 ‘후진국’
먼저, 대한민국을 후진국으로 끌어내리는 가장 큰 요인으로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를 들 수 있다.선거철에는 국민을 위해서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듯이 요란스레 ‘국민의 대표’임을 강조하는 그들이지만, 당선만 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들의 사리사욕만을 대표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격에 줄곧 먹칠을 해온 그들이다.일례로 지난 8월 새정치민주연합의 신계륜, 신학용, 김재윤 의원이 서울종합예술실업학교 이사장으로부터 학교 운영에 유리한 법안을 발의해주는 대가로 수 천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기소된 바 있다. 신계륜·신학용 의원은 불구속기소, 김재윤 의원은 구속기소 됐다.당시 검찰은 의원들의 강제구인을 위해 국회로 들이닥쳐 007작전을 방불케하는 진풍경을 보였고, 이에 해당 의원들은 편파수사라는 이유로 의원실 문을 걸어 잠그고 검찰과 대치 상황을 벌이거나 재빨리 다른 의원실로 ‘피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대한민국 정치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줬다.이 같은 부패한 현실은 비단 정치인에만 그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는 공무원들의 처참한 ‘민낯’ 또한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해양수산부, 원자력사업부, 철도청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이탈리아 범죄조직인 마피아 못지않은 조직력을 과시하는 ‘공무 분야별 마피아’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재무부(MOF, Ministry of Finance : 현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들이 마치 마피아처럼 끼리끼리 범죄적 활동을 벌인다는 의미인 ‘모피아’라는 단어의 용례가 이제 철피아(철도), 핵피아(원자력산업), 해피아(해양수산) 등 점점 다양해지더니 급기야 이제는 ‘관피아(관료집단+마피아)’ 라는 단어로 한데 묶이기에 이르렀다.끝없는 부패, 원인은?…신상필벌의 부재
지난 달 23일 국제투명성기구는 2014년 OECD 뇌물방지협약 이행보고서를 발표했다.국제투명성기구의 이행보고서는 뇌물방지협약 참가한 41개국의 시행 현황에 대해 독립된 평가를 제시했다. 이행보고서는 적극 이행, 보통 이행, 제한된 이행, 이행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국가 등 4분류로 나눠 참가국을 평가했다.이에 따르면 41개국 중 미국, 독일, 영국, 스위스의 4개 나라만 적극적으로 뇌물방지협약을 이행하였고, 대한민국은 ‘이행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국가’ 그룹에 속하는 불명예를 얻었다. 2013년에 이어 2년 연속 이행이 거의 없는 국가에 포함된 것이다.또 이 그룹에 속하는 22개 국가 중 G20에 속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9개국이며, 이 국가들은 국제표준을 확실히 따르게 하기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아 사실상 공공부문 부패 증가에 기여한 것이라는 혹평을 받았다.이 같은 국제투명성 기구의 ‘낯부끄러운’ 보고서는 우리나라 공직사회 부패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원인까지 지적하고 있다.즉,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신분고하를 막론해 엄히 벌하는 ‘신상필벌’ 체제가 우리나라에 구축돼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국제 뇌물방지 협약이라는 국제적인 약속조차 등한시 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부패척결의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 자신이 부패의 중심에 서있기 때문에 다른 이를 향한 ‘신상필벌’의 칼을 날카롭게 겨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심지어 ‘신상필벌’을 위한 사회시스템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체계까지 ‘법피아(법조)’라는 오명을 얻으며 전관예우라는 명목 하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이 때문에 국민들은 정치권과 공직사회에 대해 ‘신상필벌’의 기대를 갖지 않게 됐고, 이는 곧 사회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각종 안전문제, ‘윤 일병 사망사건’과 같은 군내 가혹행위 등의 결과로 돌아왔다.단 기간 내 눈부신 경제성과를 이뤄 ‘한강의 기적’이라는 극찬을 받았음에도, 우리나라가 완전한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이유와 원인 그리고 처방까지 모두 이 대목에서 찾아야 한다. 이제 세계가 요구하는 글로벌 선진국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청렴도부터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때이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