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한아람 기자] ‘반부패 척결’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거침없는 권력 강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다시 한 번 권력투쟁의 칼날을 휘둘렀다.
앞서 구속된 보시라이 전 충징기 서기와 함께 자신의 집권을 위협했던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에 대해 유죄를 선고, 또 하나의 ‘호랑이(고위 지도층)’ 제거에 성공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저우융캉을 이을 다음 호랑이가 누가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 6일 중국공산당은 그동안 당내 조사를 벌여온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법위원회 서기를 검찰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줄곧 베일에 싸여 있던 그의 혐의에 대해서도 “저우융캉은 ‘거액의 뇌물수수’, ‘기밀유출’, ‘간통’ 등의 규율 및 법률위반 행위를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중국 권부의 핵심 인맥인 ‘석유방’(石油幇·석유 인맥) 좌장 역할을 해온 저우융캉은 가족과 측근을 통해 석유 생산·유통을 장악하고 천문학적인 규모의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로이터통신은 중국 당국이 저우융캉의 가족과 측근들로부터 최소 900억 위안(약 16조 2000억 원)의 자산을 압수했다고 보도했다.
당국이 적시한 저우융캉의 혐의가 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되면 무거운 형벌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국은 공직자의 뇌물수수 행위를 엄중 처벌하고 있고 특히 국가기밀 유출 행위는 사안에 따라 사형까지도 선고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저우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비리문제로 사법처리를 받는 첫 정치국 상무위원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 중국 내부에서는 최고 지도부인 상무위원을 사법처리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저우융캉 처벌 수위가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지만, 시 주석이 저융캉에게 중형을 선고할 조사결과를 끌어 낸 것은 내부 권력투쟁에서 중요한 정치적 승리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시진핑 체제가 2014년을 불과 20여 일 남겨준 시점에서 저우융캉에 대한 ‘유죄선고’를 전격으로 발표한 것은 내년에도 역시 강력한 반부패 정책이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저우 당적박탈은 당기율과 국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반부패 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을 전망했다
‘반부패 반대세력’에 대한 경고메시지로도 해석된다. 최근 중국 내부에서는 시 주석의 전방위적인 반부패 정책에 대해 우려하거나 반대하는 동향도 감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우융캉 사건과 관련해 가장 주목할 부분은 역시 ‘반부패 칼끝'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지다.
중화권 언론에서는 일찍부터 그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 자칭린(賈慶林) 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등이 다음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제기해왔다.
물론 중국의 현 지도부가 전직 최고지도자에게까지 칼을 겨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대세지만, 시 주석이 ‘성역’을 침범한 만큼 또 다른 지도자급 인물이 수사망에 걸려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저우융캉 사건은 신중국 역사상 최악의 정치적 스캔들로 꼽힌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최고지도부 일원인 정치국 상무위원 이상의 인물이 개인비리 문제로 처벌받은 사례는 아직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