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콩가루 청와대”…비선실세 국정개입 특검 ‘불씨’ 살리기
[매일일보 홍유철 기자] 청와대의 한 행정관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비선실세 국정개입 문건유출 사건의 배후로 지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청와대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사자는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관련 증언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14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수첩에 적힌 ‘청와대 문건파동 배후는 K, Y’라는 메모 속 주인공을 ‘김무성, 유승민’이라고 청와대 행정관이 지목했다는 주장과 관련,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민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 수첩과 관련한 기사를 어떻게 보는가. (관련설이 나오는 행정관의) 교체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또 ‘사실관계를 청와대 민정이나 정무에서 확인한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사실에 대해서 저도 확인을 해야한다. 안에서 어떻게 되고 있는지, 그것을 포함해 사실 관계를 확인중이다. 확인이 되면 말씀드릴게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 대변인의 이러한 언급은 김 대표 수첩 메모건에 지목된 행정관의 관련여부는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는 청와대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K=김무성, Y=유승민
앞서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카메라에 찍힌 김 대표의 수첩에는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메모가 적혀있었는데 K는 김무성 대표 본인, Y는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그 바로 앞 대목에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지낸 이준석씨, 손수조씨, 음종환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등 4명의 이름도 기재됐다.
이에 대해 여권 핵심 관계자는 “김 대표가 지인으로부터 메모에 적혀있는 4명을 포함해 새누리당 청년위원장까지 모두 5명이 술자리를 가졌고, 이 자리에서 음 행정관이 김 대표와 유 의원을 지목해 이 같은 발언을 했다고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두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출신 이준석씨는 지난달 18일 음 행정관이 술자리에서 문건배후 관련발언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발설자로 지목된 음 행정관은 “그 수첩에 있는 내용은 나는 모르는 얘기고, 나는 그와 관련된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청와대는 사건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번 사건이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논란과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항명성 사퇴파동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터지면서 또다시 청와대 공직기강 해이 논란이 불거지는 것 아니냐 우려하는 분위기다.
특히 비록 실체 없는 모임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세간의 의혹을 받았던 ‘십상시’ 멤버로 거론됐던 음 행정관이 문건파문과 관련해 거듭 구설에 오른 것 자체가 청와대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배후 발언을 놓고는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음 행정관 역시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 출신인 이씨와 손수조씨, 신용한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장, 이동빈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실 행정관 등이 모였던 술자리와 그 모임에서의 일부 발언 등은 시인하고 있다.
당시 음 행정관은 술자리에서 시사정치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이씨의 발언내용 등을 지적하면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김 대표와 유 의원에게 줄을 대서 대구 지역에서 배지(국회의원)를 달려한다. 그런 사람(조응천) 말을 근거로 문건 의혹이 사실인 것처럼 논평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음 행정관이 대체로 청와대와 관계가 껄끄러운 것으로 알려진 집권여당 대표와 차기 원내대표 주자 등 두 인사를 거론한 것은 사실인 셈이다.
문건에 ‘십상시’ 멤버로 묘사돼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친박(친박근혜)계 행정관이 미묘한 시기에 여당 대표 등에 대한 언급을 한 것 자체가 당청간의 마찰을 가져올 소지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언행이 신중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새누리당 내에서도 비박계를 중심으로 청와대 공직기강 문제와 인적쇄신론을 재차 거론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재오 의원은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문고리 3인방도 부족해 행정관까지 나서서 헛소리를 하고 돌아다니고 이게 되겠느냐”며 “비선실세가 있는 없든, 문고리 3인방이 국정을 농단했든 안했든, 여론은 그 사람들 자리를 바꾸든지 인적쇄신을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건 배후 발언을 계기로 야당의 공세도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국민 걱정을 덜어줘야 할 청와대가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켜 국민이 청와대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노회찬 “여당대표가 ‘비둘기’ 날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논란을 '여권내 권력투쟁'으로 규정, 청와대를 향해 맹공을 폈다. 여권내 분란을 부채질함으로써 이를 지렛대로 꺼져가는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특검의 불씨를 살려가는 한편 청와대 인적쇄신에 대한 대여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려는 포석이 읽혀진다.
한정애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음 행정관이 ‘십상시’의 한명으로 알려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라며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십상시 세력의 오만과 국정농단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된 ‘콩가루 청와대’의 모습은 한심함을 넘어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을 확인시켜준다”며 “더 늦기 전에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문고리 3인방 등에 대한 청와대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당권주자인 박지원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청와대 내부 인사들의 권력투쟁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눈엣가시로 보이는 정적들에게 전가시키는 또 다른 권력투쟁”이라고 주장했고, 트위터에도 “권력은 측근이 원수이고 재벌은 핏줄이 원수란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라고 썼다.
정의당 노회찬 전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감방에서 당국의 검열을 피해 비밀편지를 몰래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비둘기 날린다’고 한다”며 “집권여당대표가, 국회에서 언론을 통해 수첩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만천하에 비둘기를 날렸다. 국민은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