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의 독도 공격 -가상시나리오
‘고이즈미 총리 각하!’고이즈미 총리 비서실장은 집무실 의자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고이즈미 총리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많은 숫자의 기자들이 총리 각하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고이즈미 총리는 눈을 뜨고 비서실장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때가 왔어.’
존경하는 일본 국민 여러분!
저 고이즈미는 끓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는 일본의 총리로서 냉정을 잃을 수 없기에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원래 독도는 우리 일본의 영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독도를 강점해 지배권을 행사하고 우리 일본이 엉뚱한 주장을 해댄다고 계속 거짓말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일본은 이웃나라 한국과 원만한 관계를 갖기 위해 그동안 인내하고 또 인내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기어코 일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참으로 애통합니다. 우리 일본 우익 인사 몇 분이 독도 해역 근처에 접근했다가 한국 해경 경비함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것입니다. 저는 사건 발생 이후 바로 한국 대통령의 사죄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국 대통령과 한국 국민들이 우리 일본 국민에게 왜 이다지도 고통을 주는 것일까요. 선량한 이웃의 땅을 빼앗아 수십년 간 강점하면서 오히려 우리를 비난하는 것도 모자라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려는 우리 우익인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도 사죄조차 거부하는 저 한국 국민들을 어떻게 해야만 하겠습니까?
아,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존경하는 일본 국민 여러분.
그래서 저는 선택했습니다.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에도 단호하게 행동해야 할 때는 단호하게 행동해야 하듯 저 역시도 한국에 단호해 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독도 근처 해역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한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습니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부득이 행동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이는 우리 일본의 최소한의 자존심과 국익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사실을 밝혀 둡니다.
친애하는 한국 국민들과 노무현 대통령.
제발 이성을 되찾고 현실적인 시각을 갖고 독도 문제를 바라봐 주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양국의 우호친선을 위해 속히 사망한 일본 우익 인사들과 우리 일본 국민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의 메시지를 전해주길 바랍니다.
독도 해역에서의 일본 우익인사 사망사건에 대한 고이즈미 총리의 텔레비전을 통한 입장 발표가 나온 일본 전역과 한국은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 상황은 전 세계로 알려졌고 그에 따라 세계 여론도 빠른 속도로 한국 편, 일본 편으로 나뉘어졌다.
‘대통령님. 고이즈미 총리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청와대 내부의 공기는 무거웠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리면서도 마음이 답답했다.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군요.’
대통령은 이 한마디를 하고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일본의 로비력이 원체 대단한 터라 다른 국가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외교통상부 장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국무위원들의 얼굴이 너무 굳어져 있어 이야기를 더 꺼낼 수 없었던 것이다.
‘국방장관.’
‘예. 대통령님.’
‘정직하게 말씀해 주시오.’
‘예, 대통령님.’
‘우리 혼자 얼마나 버틸 수 있소?’
‘…’
‘일본과 독도 해전을 벌일 경우 말이오.’
‘힘듭니다.’
국방장관은 짧게 말했다. 하지만 ‘힘듭니다’라는 한마디면 모든 설명은 충분했다. 국방장관의 답변을 듣고 대통령은 한숨을 쉬었다. 국방장관은 대통령의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제는 정공법입니다. 맞붙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대통령이 입을 열고 천천히 말했다. 국무위원들은 책상을 주시한 채로 가만히 있을 따름이었다.
한편 일본의 독도 위협상황에서도 국론은 분열되었다. 한미동맹을 현 정부가 위협했기 때문에 지금의 사태가 발생했다는 일부 보수세력의 불만과 일단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으로 공격해 오는 보수야당이 목청을 높였다.
이런 보수야당과 보수세력 일부의 공세에 개혁여당 측은 어려운 상황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맞섰다. 심지어 개혁여당 지지자들 가운데 일부는 보수세력을 친일세력이라고 공격하며 독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고까지 주장해 양측은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에만 모두가 공감할 뿐, 제각기 상대방을 헐뜯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어 마치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조정을 연상케 했다는 점이다.
이런 정치권을 보며 국민들은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 양극화에 시달리는 국민들은 독도 문제를 생각하며 이런 불만을 내뱉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젠장, 독도에 뭐가 있건 나한테는 떨어지지도 않는 이득을 위해 왜 우리가 난리를 쳐야 하는 거야? 강남부자들이나 가서 지키라 하지.’
한국 젊은이들은 또 이렇게 생각했다.
‘한-일 전쟁이 벌어지면 또 억울한 청년들만 죽어 나가는 구나. 어차피 돈있는 집 자식들은 군대도 안 가거나 이리저리 좋은 데로 뺄 텐데. 글로벌 시대라는 데 그깟 돌섬 누가 갖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될 대로 되라지.’
그러나 외형상으로는 독도 문제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워낙 강해서 국민들은 위에서 언급한 생각을 갖고 있어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들 사이에 이런 생각이 폭넓게 유포되어 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나라를 위해 희생한다고 해봐야 돌아오는 것도 없고 가진 자들에게만 이득이 돌아가는데 내가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한국 사회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 국민의 눈과 귀는 독도로 집중되었다. 독도에는 해경 독도경비대가 나가 있는데 이들의 하루 일과는 텔레비전 카메라를 통해 매일 생생히 중계되었다. 그리고 독도 주변 해역에는 해경 경비함 수십척이 계속 경비를 서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 해군과 공군은 출동 준비를 갖추고 있을지 모를 일본의 공격을 기다렸다.
‘기습이 중요하오.’
고이즈미 총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은 적절치 않은 시기요. 한국이 굉장히 긴장하고 있거든.’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을 비웃었다.
‘겁을 단단히 먹은 듯 합니다.’
고이즈미의 측근인 관방장관 아베가 말했다.
‘그럴만도 하지.’
고이즈미 총리는 독도 싸움에서 자신이 승기를 잡아간다고 생각했다. 이미 국제 여론은 일본의 편으로 돌아섰다. 적어도 국제 여론이 중립만 지켜 준다면 게임은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동태였는데 러시아는 기회주의적으로 눈치만 보고 있고 중국은 일본의 움직임을 묵인할 태세다. 중국은 내부 사정이 복잡해 한국과 일본의 일에 끼어들 처지가 못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러나 곧 이것은 누구 편이든 센 편에 붙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그래서 고이즈미 총리는 자신만만했다. 미국만 끼어들지 않는다면 거리낄 것이 없었다.
북한?
북한은 절대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
북한이 끼어들어 봐야 이득이 없기 때문이지.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조총련에서 북한으로 송금되는 막대한 자금을 떠올렸다.
그 자금만 틀어막아도….
‘자, 아베…. 지금은 잠시 기다릴때요. 조만간 한국인들이 긴장을 풀꺼야. 그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3일이면 다 잊어버리거든? 기습으로 단숨에 처리합시다.’
고이즈미의 예상은 적중했다. 독도 갈등이 불거진 이후 얼마 간 시간이 지나자 한국 국민들은 독도 문제를 금방 잊어버렸다. 독도에 파견된 텔레비전 방송 기자들도 속속 철수했다. 이런 상황을 고이즈미는 일본 정보기관들을 통해 속속들이 보고 받았다.
고이즈미는 작전 D-DAY를 7월 중순으로 잡았다. 한국 국민들이 여름휴가를 떠나느라 정신없는 시기, 여름 더위에 정신없는 시기를 틈 타 단번에 기습으로 독도를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고이즈미와 일본 자위대는 독도 장악계획에 있어 다음과 같은 원칙을 분명히 했다.
① 한국의 공군력보다 앞선 공군력을 활용해 공수부대를 투입, 단번에 독도를 점령한다.
② 독도 점령작전 돌입과 동시에 일본 해상자위대 및 항공자위대 군사력을 투입, 독도를 지킨다.
③ 한국의 동태를 세밀히 관찰하되 한국 국민들이 흥분해 한국 내의 일본 국민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할 경우 그것을 빌미삼아 즉각 보복을 가한다.
이런 원칙 하에 일본 자위대는 극비리에 독도 점령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고이즈미 총리의 책상 위에는 그 독도 점령 계획 준비가 모두 끝났다는 내용을 담은 극비문서가 올려져 있었다.
‘총리 각하. 훈련은 이미 다 끝났습니다.이제는 총리 각하의 명령만 남았습니다.’
고이즈미는 약간의 미소를 보였다. 고이즈미가 미소를 보이는 모습을 보고 일본 육상-해상-항공 자위대 사령관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내가 9월에 임기를 마친다는 것을 알고 설마 7월 중순에 독도를 기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저도 그렇게 봅니다.’
해상 자위대 사령관 료타 데루마사가 맞장구를 쳤다.
‘이번 독도 공격은 우리 일본의 미래를 위한 위대한 사업이야. 위대한 사업!’
고이즈미는 책상을 내리쳤다. 그리고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고이즈미의 궁극적 목표는 독도가 아니었다. 한국 국민들은 독도를 과대평가한다. 마치 독도가 대단한 가치가 있어서 일본이 호시탐탐 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 국민들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 뿐이다.
독도가 대단하다 한들 이미 세계 경제의 거대한 기둥이 되어 있는 일본 전체의 힘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을 지배하는 것이다. 한국을 지배하면 독도 따위는 저절로 손에 들어온다. 고이즈미와 일본 우익의 궁극적 목표는 독도가 아니고 한국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독도와 한국 지배가 무슨 연관성을 가질까?
독도는 한국 국민들이 지키고자 하는 섬이다. 그래서 그 섬을 빼앗으면 한동안은 한국 국민들의 저주와 원한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대다수 한국 국민들은 체념할 것이다. 무엇보다 양극화와 국가 분열에 허덕이는 대다수 한국 국민들은 독도를 쥐어 봐야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래도 목소리야 높이겠지. 하지만 그것은 허장성세일 뿐이다. 원래 허약해지는 세력일 수록 목소리는 높아진다. 이것이 바로 반 작용 콤플렉스인 것이다. 지금 깽깽 대는 한국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독도를 지킬 능력도 없고 우리 일본을 이길 능력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깽깽 거리고 있는 것이다.
일단 독도를 빼앗으면 지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한국과 일본의 경쟁구도가 당연히 성립된다. 이렇게 되면 일본 국민들은 단결하게 된다. 그 빌어먹을 놈의 개인주의란 병에 걸려서 허우적대는 한심한 일본의 젊은 놈들이 ‘국가주의’란 주사를 맞고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된다.
어차피 산업의 상당부분을 일본에 의지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결국 일본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 사실상 2010년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미 일본과 한국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고 서로 대중문화 교류가 활발해진 탓에 많이 동화되어 있다. 더군다나 한국 젊은이들 특유의 개인주의와 가진 자에 대한 불만은 반일정서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주저하게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우리 일본 문화권으로 흡수되는 일만 남았다.
경제와 문화, 군사력에서 압도당하면 정치적으로는 당연히 우리 일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곧 앞에서 말했듯 한국은 우리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지.
한국, 너희는 끝났다.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을 비웃었다. IT강국이 어떻고 지랄을 하지만 다 소용없다. 이제 한국은 망할 것이 분명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서로 반목하고 증오한다. 가진 자의 발목을 잡아채기 위해 못 가진 자들이 난리를 친다. 이러니 투자도 안 이뤄지고 기업들도 번창하지 못한다.
당연히 돈이 없을 수 밖에.
돈이 없으니 더 가난해진다. 가난해질 수록 더 가진 자의 돈에 탐이 난다. 이런 식으로 한국은 몰락의 길을 계속 걷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특별히 머리가 똑똑한 것도 아니다.
고이즈미는 한국을 다녀 온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 한국 이공계의 몰락과 한국 젊은이들의 공무원 선호 현상을 전해 들은 지 오래였다.
철밥통 만능시대!
한국의 운명은 몰락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이런 한국을 사실상 합병해 자랑스런 일본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것은 한국 국민들에게도 영광임에 틀림없을 것이었다.
2010년!
영광의 한일합방 100주년 되는 해에 사실상 일본과 한국은 하나가 될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우둔한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은 그 영광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2006년 7월 16일
한국은 장마가 끝나고 혹독한 더위가 찾아왔다. 한국 국민들은 언제 독도 위기가 있었느냐는 듯이 저마다 휴가 길에 나섰다. 심지어 대통령 역시 휴가를 떠났다. 전국에 긴장이 이완되어 있었고 이는 군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해상-항공-육상자위대 연합 특수부대는 7월 16일 밤 11시 독도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물론 한국군을 기만하기 위해 7월 10일부터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동해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처 한국군은 일본의 음모에 대해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위님!’
한국 공군 대관령 레이더 관제소의 한 병사가 당직장교를 급하게 찾았다.
‘무슨 일이야?’
‘이상한 일입니다.’
‘뭐?’
‘일본에서 비행기들이 대거 날아오고 있습니다!’
‘뭐?’
당직장교 이홍돈 대위는 레이더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이럴 수가!
일본항공자위대의 주력 전투기인 F-15 전투기 편대들은 일본 고마쓰 기지를 이륙해 일본 육상자위대 공정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독도 상공으로 출격했다. 이홍돈 대위가 레이더 화면을 통해 보고 있는 일본에서 날아오고 있는 비행체들은 바로 이 F-15 전투기 편대들이었다.
이홍돈 대위는 허둥지둥 상부에 보고했고 이 대위의 보고를 받은 공군참모총장은 서둘러 청와대에 이 사실을 알렸다.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대통령의 대응지시가 떨어진 이후 공군은 서둘러 KF-16 전투기를 출격시켰지만 이미 F-15 전투기 편대들은 독도 근해를 장악하고 있었다.
한편 청와대는 일본 대사관 측에 항의했지만 일본 대사관 측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본국에서 실력행사에 나섰다는 말과 사태의 책임은 한국에 있다는 말 뿐이었다.
동해에 떠 있는 일본의 조기경보기는 한국 KF-16 전투기의 이륙을 탐지하고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들에게 격추 명령을 내렸다. 이윽고 한국 공군 KF-16 전투기들은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았고 한국 공군 전투기 가운데 4대가 동해 상공에서 격추되고 말았다.
한국 전투기 4대가 동해 상공에서 실종되었다는 보고를 들은 공군참모총장은 서둘러 최신기종인 F-15K와 KF-16 전투기들을 출격시켜 일본 전투기들과 교전을 벌이도록 명령했다.
공군참모총장과 한국 공군은 그때까지도 KF-16 전투기에 배치된 신형 미사일인 암람의 위력을 믿었다. 암람이 일본 전투기들이 갖고 있는 스패로 미사일보다 성능이 나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공군은 허를 찔렸다. 레이더 성능이 우수한 일본 항공자위대의 F-15 전투기들은 미리 한국 전투기의 이륙을 감지하고 KF-16의 미사일 공격을 피한 다음 KF-16에게 역공을 가했다.
전투기 자체의 크기가 작아 독도 근해까지의 비행이 힘겨웠던 KF-16은 제대로 전투 조차 못하고 허둥지둥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들의 공격을 피해 서둘러 돌아와야 했다.
이런 식으로 독도 주변 동해에서 한-일 양국의 공중전이 벌어지는 동안 일본 육상자위대 제 1공정단(공수부대)에서 차출된 특공대는 비행기를 통해 바다로 낙하한 뒤 독도 경비대를 공격했다. 특공대 1개 중대 병력의 기습 앞에 한국 해경 독도 경비대 1개 소대 병력은 바로 전멸당했다. 결국 독도의 태극기는 내려지고 일장기가 계양되었다.
한편 한국 본토 해경본부에서는 독도와의 연락이 두절되자 독도 경비대가 전멸되거나 모두 포로가 되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한 해군은 즉각 출동에 나섰다. 일본 항공자위대에 정신없이 당한 한국 공군은 결국 최후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바로 최근 도입한 F-15K 전폭기를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F-15K 전폭기도 한계는 있었다. F-15K 전폭기의 숫자가 너무 적었던 까닭에 일본 해상자위대 F-15기 10대를 격추하기는 했으나 일본 측의 반격을 받아 한국 F-15K 전폭기 가운데 3대가 격추되어 버렸다.
결국 이로 인해 한국 해군은 공군의 지원없이 해상자위대와 맞서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한국 공군은 북한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동해안으로 전투기를 날려 보낼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한국 공군의 주력인 KF-16은 항속거리의 문제와 자체 성능 때문에 일본 항공자위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거요?’
대통령은 각 군 장군들에게 물었다.
‘면목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공군은 어렵습니다.’
공군참모총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해군참모총장도 뭐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통령 옆에 서 있던 대통령 비서실장은 해군참모총장이 무슨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 해군도 승산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비서실장은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해군마저 그냥 퇴각했다가는 국민의 분노가 엄청날 것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독도 교전 사실이 인터넷을 타고 알려지자 한국 전역은 난리가 났다. 흥분한 군중들이 길거리로 뛰쳐 나오고 일장기를 불태우는 소동이 빚어지자 한국 경찰은 서둘러 출동해 군중들을 막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찰은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보호하기로 했다. 성난 군중들에게 일본인들이 봉변을 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도 교전 사태로 인해 전 국민이 한 잠도 못 자고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그러나 국민들 가운데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길거리 편의점을 돌아다니며 각종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편의점들이 대박을 쳤다.
성난 군중들이 인터넷을 통해 일본 관련 웹사이트에 온갖 욕설을 올리고, 각 뉴스 사이트에 접속해 일본에 대한 증오를 토해놓는 까닭에 한국과 일본의 주요 웹사이트는 모두 불통되었다. 휴대폰 통화량이 급증했고 이메일 사용량도 엄청 늘었다. 일본과의 국제전화가 폭증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 국민들은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서둘러 귀국할 것을 종용했다. 일본에 있다가 봉변을 당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제공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해상전은 큰 의미가 없었다. 허둥지둥 출동한 한국 해군은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들의 대함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게다가 한국 해군 함정들은 일본 해상함과 잠수함의 집중적인 대함 미사일과 어뢰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출동한 한국 해군 구축함 4척 모두 침몰되었다.
한국의 잠수함 부대 역시 일본 구축함 2척을 침몰시키는데 성공했으나 세계 최상위권 수준의 일본 잠수함 사냥 부대의 공격을 받아 출동한 잠수함 4척 가운데 2척이 침몰했다.
‘대통령님, 해군도 안되겠습니다. 퇴각해야 합니다.’
해군참모총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통령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해군참모총장은 대통령의 입을 주시했다. 이미 판세가 꺾인 상황에서 더 해군함정이 출동해 봐야 계속 침몰당할 뿐이었다.
‘철군하시오.’
대통령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날 아침, 한국 국민들은 비참한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섰다. 아침 소집된 긴급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일본 측에 엄중항의할 것이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일본에 대응할 것이라고 천명했지만 이미 독도를 일본에 빼앗겼고 해군력과 공군력이 일본에 미치지 못하는 지금 대통령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고이즈미 총리의 생각대로 격렬한 한국 국민들의 분노는 3일이 지나자 누그러 들고 분노는 실망으로 실망은 다시 체념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또 다시 격렬한 당파싸움이 한국 정계를 강타했다. 독도를 빼앗긴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보수야당과 왜 독도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냐는 개혁여당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해군력과 공군력을 크게 증강해야 한다는 국민적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그것도 잠깐의 일이고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군사력보다 급한 것은 빈곤에 허덕이는 국민들을 구제하는 일이라는 목청이 높아졌다. 하여간 이런 식으로 독도해전에서 참패한 한국은 여론이 심각하게 분열되어 극심한 혼란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미 레임 덕에 빠져든 대통령은 이 혼란을 수습할 능력이 없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9월 아베 신조에게 총리직을 물려주고 퇴임했다. 독도를 되찾는 공훈을 세워 일본 우익의 우상으로 떠오른 고이즈미는 일본에서 상당한 권위를 갖추고 아베 총리를 배후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고이즈미는 퇴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존경하는 일본 국민 여러분
우리는 마침내 우리의 땅을 되찾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득이 피를 흘렸으나 그 책임은 응당 우리의 땅을 강점하고 우리를 악의 세력으로 몰았던 한국인들이 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랑스런 우리 일본을 위해 싸우다 숨진 자위대 용사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들은 우리 일본의 영웅입니다. 일본의 젊은이 여러분, 우리의 국익은 이렇게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해야 지킬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일본 젊은이 여러분
다케시마는 우리의 것이고 우리의 자존심입니다. 다시는 한국이 우리의 땅을 넘볼 수 없도록 우리 젊은이들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아시아 전체의 지도국가이며 세계 초일류 국가입니다. 이런 우리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일본 젊은이 여러분들의 노력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일본은 모든 힘을 합쳐 군사력 증강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주변국들이 우리 일본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일본 국민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 다시금 뭉쳐야 합니다. 자랑스런 히노마루(일장기) 앞에 한 점의 부끄럼이 없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일본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총리직을 아베 신조에게 물려준 것과는 달리 한국의 대통령은 보수야당과 국민들의 사퇴압력에 시달리다 못해 2006년 10월, 하야를 결정했다.
한국 대통령이 하야선언을 하는 것을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텔레비전으로 지켜 보았다.
‘거, 쪽바리 새끼들에게 당하구서리 꼬랑지 내리고 자빠지는 구냐야.’
김정일 위원장은 혀를 끌끌 찼다.
한심한 새끼.
‘위원장 동지, 그래도 딱하지 않습네까?’
김 위원장의 옆에 앉아 있던 김정일의 애첩 고영애가 입을 열었다.
‘딱할 게 뭐 있디? 제가 못 나 그런 거이디. 고저 그런데 말이야. 남조선 동무들은 안작도 꿈에서 해롱대고 있지 않네. 북남이 무슨 힘을 합쳐 개지고서리 일본에 저항하자고 떠들어 대는 동무들이 있어. 내 참 웃기디도 않아.’
김정일은 남북공조를 통해 일본과 싸우자는 이들을 비웃었다.
‘나하고 북조선 지도자들을 뭘로 보는 기야. 우리가 이득도 없는 일에 나설 이유가 있가서? 아니 그리고 우리가 일본하고 뭘 갖고 싸우자는 기야. 내레 공작원 동무들한테 쪽바리 천황궁이라도 폭파하라고 시키라는 기야? 나 죽으라고 그런 일을 시킬 이유가 있간? 이것 봐! 남조선 동무들! 동무들 일은 동무들이 알아서 하라우야!’
김정일은 이 말을 마치고 손에 들고 있던 최고급 프랑스제 와인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 리모컨을 들어 보고 있던 텔레비전을 껐다. 김정일이 보던 텔레비전은 일제 소니 제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