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까지 24년간 재계 1위 굳건…경영권 분쟁 등으로 분리
현대차그룹·현대중공업그룹·현대그룹 등 각 분야서 여전히 선도
[매일일보 최수진 기자] 가난이 싫어 10대의 나이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성공을 꿈꾸며 도전과 성공, 실패를 반복했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정신은 68년째 ‘현대’의 이름으로 이어지며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정 명예회장은 무작정 상경해 쌀가게에서 일하며 신용을 쌓았다. 이후 쌀가게를 인수하고 경일상회로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자동차 수리공장 사업과 건설보수업 등 다양한 사업을 시작했다.1947년 현대건설의 전신인 현대토건사를 설립했고, 1950년 정 명예회장은 자동차 수리공장인 현대자동차공업사와 현대토건사를 합병해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현대그룹의 본격적 역사가 시작된 것.현대그룹은 다른 기업들이 소비재사업을 시작한 것과 달리 건설업부터 시작해 자동차, 조선 등 중공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현대건설은 6·25 전쟁 당시 미군 하청공사에 동원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제1한강교 공사 등 전후 복구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입지를 강화했다.현대건설은 1965년 국내 최초로 해외건설을 수주하기도 했다. 이후 잇따라 동남아·중동 등으로 해외 진출을 가속화 하며 한국 건설업의 해외 진출 물꼬를 텄다. 이 같은 해외 건설을 통해 얻은 막대한 오일머니는 정 명예회장이 다양한 사업에 진출하는데 밑바탕이 됐다.해외 진출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1970년 완공된 경부고속도로의 5분의 3을 2년 5개월 만에 완공하기도 했다.정 명예회장은 1967년 미국의 유명 자동차 브랜드인 포드와 기술제휴를 맺으며 현대자동차주식회사를 설립, 완성차 사업에도 뛰어들었다.현대차그룹·현대중공업그룹·현대그룹 등 각 분야서 여전히 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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