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경탁 기자] LG전자가 2005년 LG-IBM을 합병하는 과정에 이루어졌던 허위가공거래에 의한 탈세가 지난해 말 적발돼 영등포세무서로부터 1억2967만여원 상당의 추징을 당한 바 있는데, 이 사안이 1월 말 영등포세무서 적부심의위원회의 과세전적부심사에서 취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종혁 사장에 따르면 당시 영등포세무서 측 관계자는 ‘불문처리’ 사유를 묻는 질문에 국세기본법 상의 개인정보 보호규정을 들어 ‘국회의원이 물어봐도 말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3월 3일 LG전자가 법원에 제출한 소명자료에는 문제의 ‘과세전적부심사결정서’가 첨부되었고, 부과됐던 1억2976만여원의 추징 취소는 ‘불문처리’가 아닌 ‘부당한 처분이기 때문에 취소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어떻게 된 내막일까 추적했다.
적부심의위원회, 잦은 진술번복 불구 LG전자 주장 무조건 신뢰
핵심 증언․팩트는 아예 무시, 앞뒤 안 맞는 판단에 황당한 논리
기자가 입장·관련절차 등 캐묻자 신문사 소재지 되묻는 세무서
LG전자의 허위가공거래에 의한 탈세를 제보한 김종혁 사장이 ‘탈세제보 처리결과 통지’를 받은 것은 지난 2월1일이었다. 한 장으로 된 통지서에서 영등포세무서는 “처리결과 : 과세에 활용할 수 없음.(불문 처리)”라는 짧은 문장이 담겨있었다.
영등포세무서가 김 사장의 제보 자료를 근거로 지난해 12월4일 LG전자의 허위․가공 매입 관련 현장 세무조사를 종결, ‘가공매입 경정’하고 ‘허위세금계산서’ 수취에 따른 탈세부분에 대해 과세 통고 처분 결정을 내린지 2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문제의 허위․가공거래 관련 양쪽 당사자였던 김 사장과 당시 LG전자의 담당 마케터는 세무조사 과정에서 “LG-IBM과 LG전자의 ‘회계상 필요에 의해’ 진행한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허위․가공 거래였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세무서의 과세처분은 피할 길이 없어보였다.
특히 가공거래와 관련한 신우의 통장 사본과 결산내역 등 충분한 허위 거래 증거 자료가 제출된 반면 LG전자는 영등포세무서와 동작세무서에서 요청한 입증 자료를 기한인 2010년 1월4일까지 제출하지 못한 채 ‘불복신청’을 우선 제기했다.
‘불문처리’통지에 대해 김종혁 사장은 영등포세무서에 제보자자격으로 ‘심의결정문’의 열람을 요청했지만, 영등포세무서는 수원세무서로 수원세무서는 영등포세무서로 다시 조사과는 납세자보호실로 김 사장의 요구를 ‘토스’할 뿐이었다.
김 사장에 따르면 한 세무서 담당자는 ‘국세기본법 제81조의 10항(피제보자에 대한 비밀 유지)’ 조항을 들면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결정문을 제출하라고 해도 못한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 사장이 궁금해하던 ‘불문처리’의 내막은 의외의 장소에서 밝혀졌다. LG전자와 김 사장 사이에 진행중인 ‘명예훼손금지 가처분 이의’ 재판 관련 소명자료로 문제의 ‘과세전적부심사결정서(영등포세무서)’(이하 ‘결정서’)가 지난 3월3일 제출된 것이다.
김 사장이 이 ‘결정서’를 받아본 것은 LG전자가 문서를 제출한지 한 달 반이나 지난 4월13일이었다. 원래 양쪽 당사자가 있는 민사재판의 경우 모든 법원제출 문서는 상대편용과 법원 제출용 2부를 내도록 되어있는데, 어찌된 이유인지 상대편용 서류가 제출되지 않았고, 법원 담당과에 끈질기게 요청한 끝에 법원용 서류를 복사해 받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결정서’를 받아 읽어 내려가면서 김종혁 사장은 ‘온 몸에 피가 역류하는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결정서’의 판정 내용이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점철되어있었고 기본적인 사실관계에마저 왜곡하거나 무시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잦은 진술번복도 신뢰
LG전자가 세무조사 과정에서의 진술을 번복해 새로운 논리로 갈아탄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결정서’에서 LG전자는 문제의 매출․매입거래는 처음부터 실물의 이동이 아닌 ‘목적물반환청구권 양도’의 형식에 의한 서류상의 거래였다는 논거를 들고 나왔다.
LG전자는 탈세제보관련 언론 취재가 한창이던 2008년 12월부터 “실물의 이동이 명백하고 이를 입증할 자료가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계속 했으며, 김 사장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건으로 영등포경찰서와 서울남부지검에서 진행한 대질심문에서도 동일한 주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세무조사 과정에 원고 측 전직 직원으로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박아무개 차장의 진술이 나오고, 결국 LG전자의 주장을 증빙할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게 되면서 돌연 ‘서류상의 거래’였다고 기존의 주장을 번복한 것이다.
LG전자는 또한 여러 언론의 질의에 “문제의 거래 당시 물품대금 지급을 정상 처리했다”고 주장했으나 김 사장이 법원을 통해 ‘LG-IBM 흡수 합병 관련 채권․채무 양도 공문’을 제출하자 다시 이 서류를 근거로 “대금은 상계 처리되었다”는 논리를 만들어 진술을 번복했다.
이밖에 LG전자는 세무조사 과정에 문제의 거래 물품이 대외 판매 및 판촉 등을 위해 사용됐다고 주장하면서 제품내역을 제출했지만 이는 전혀 다른 품목을 증빙으로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후 확정 기일전까지 정확한 내역을 제출하기로 했다가 끝내 제출하지 못했다.
핵심증언과 팩트는 아예 무시
‘결정서’의 최종 ‘판단’항목에는 가장 핵심적인 증인인 LG전자 전 직원 박아무개 차장의 진술에 대한 평가와 판단이 아예 빠져있고, 사건 당시 물류창고 관리를 담당했던 최아무개의 진술을 근거로 문제의 제품이 실재했다고 판단했다.
‘결정서’가 아예 진술의 가치에 대한 판단조차 하지 않은 박아무개 차장은 LG-IBM 시점부터 LG전자 흡수 이후인 2005년 6월까지 김 사장과의 거래를 직접 담당했던 인물로,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동시에 LG전자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진술을 할 수 있다.(사법 용어로 하면 ‘진술의 임의성’이 인정된다는 말이다.)
반면 제품이 실재했다고 증언한 최아무개의 경우 현재 근무 중인 SLS용인물류가 LG전자 평택공장 소속 물류센터였다가 2006년경 분리된 사실상의 LG전자 물류부서로, 여전히 LG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에 진술의 신뢰도는 박 차장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
‘결정서’의 판단이 누락한 ‘사실(팩트)’은 이뿐만이 아니다. ‘결정서’에 기재된 ‘청구주장’에서 LG전자는 “이건 세무조사결과통지는 김종혁의 악의적인 허위제보에 기인한 것…명예훼손혐의로 고발해 현재 서울남부지검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결정서’는 “김종혁이 청구법인과 법정 분쟁상태에 있다는 점”을 판단근거의 하나로 들었으나 LG전자가 김종혁 사장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고소에 대해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29일 ‘혐의 없음(증거불충분)’ 판정을 내렸다.
LG전자의 세무조사 결과 통보에 대한 불복신청이 그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LG전자의 불복 내용부터가 사실관계를 누락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결정서’에서 이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초이다.
※ LG전자는 서울남부지검의 무혐의 처분에 항고했고, 이에 대해 서울고검은 영등포세무서의 과세처분 취소가 내려진 직후인 2010년 2월 3일자 로 재기수사명령을 내렸다. 서울고검의 재기수사에 따른 재수사는 최근까지 '배정대기'상태에 있다가 최근에서야 재개되 4월27일 출두하라는 요청이 지난 23일 김 사장에게 전달되었다.
앞뒤도 안 맞고…말도 안 되고
더 우스운 부분은 ‘결정서’의 최종 판단 중 앞 뒤 문장이 동일한 사안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나열하는 내용이 포함된 점이다.
앞부분에서 “LG-IBM이 LG전자에 합병되어 사라지면서 쟁점매출관련 거래를 입증하기가 어렵고 5년 전 거래에 있어서 매출 매입 제품 내역을 1:1로 연결시켜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더니, 뒤에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대규모 전산시스템을 운용하는 LG전자의 경우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실물 없는 거래를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이 인정”된다고 상반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이와 관련해 김 사장은 “LG-IBM은 물론 LG전자는 세계적인 IT 기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산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며, “특히 거래처에 공급되는 제품의 모든 내역은 제품 고유번호가 있어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결정서’는 “LG전자 및 LG-IBM이 가공거래를 통하여 얻을 이익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으나 이번 사안이 가공거래에 의한 탈세에 대한 것으로, 세금을 덜 내는 것은 그 자체로 이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부분은 더욱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와 관련 본지는 탈세 추징 사실을 처음 전한 지난해 12월 보도에서 “이번 세무조사 및 과세예고 통지는 김 사장이 제출한 증거서류에만 근거해 진행된 것으로, LG-IBM 흡수합병 과정에 벌어졌을 수 있는 전체 가공매입 여부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전체 가공매입 여부에 대해 조사가 이루어질 경우 탈세 규모는 훨씬 늘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가공거래를 통해 얻을 이익이 없다’는 LG전자 측의 주장에 대해 세무조사를 진행한 영등포세무서 관계자는 ‘조사관서 의견’을 통해 허위가공거래는 ‘재고 누락분’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반박했다.
“당시 LG전자는 분할 피합병되는 LG-IBM의 49% 주주로서 LG-IBM의 지분정산을 위해 재고조사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동 재고가 정상적으로 실제 남아있었다면 설사 악성 재고라 하더라도 쟁점법인 같은 제3자를 통한 매출거래를 할 이유가 없이 청구법인에 인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쟁점법인에 매출한 것은 재고가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입장 묻자 주소 되묻는 세무서
세무서 관계자에 따르면 ‘과세전적부심사결정’을 내리는 적부심의위원회는 민간 4명 세무서 3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회에는 불복신청을 제기한 청구법인과 세무조사를 담당한 조사관이 출석해 관련 진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와 관련해 영등포세무서 복수의 관계자들은 적부심사 등 관련 내용 일체에 대해 말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적부심의위원회 구성이나 심사 절차에 대해서도 자세한 답변을 거부했고 ‘결정취소’와 ‘불문처리’라는 상반된 통지가 나간 이유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취재과정에 한 세무서 관계자는 기자가 소속된 신문사의 소재지를 되묻기도 했다.(영등포세무서 관할이다.) 이 관계자의 질문 의도를 예단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세무서가 갖고 있는 막강한 정보력과 행정력을 감안하면 언론사에게는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김종혁 사장은 이번 과세전적부심사 결과에 대해 “국세청 탈세제보로 제보자의 과세 부분이 발생함은 물론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음을 감수하고 명백한 사실을 밝혀 줄 것을 호소한바 있다”고 토로했다.
탈세 제보 이유에 대해 김 사장은 “세무조사 과정에 단순히 법적 분쟁 중이라는 이유로 이와 같은 무모한 제보를 국세청에 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설명하였으며 교묘하게 상대적인 약자를 악용하는 대기업의 관례를 타파하고자 함을 명백히 밝힌 바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