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백의종군」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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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백의종군」이 살 길이다
  • 곽호성 기자
  • 승인 2006.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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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략을 고심하라
지방선거 이후 열린우리당은 한동안 극심한 혼란에 시달릴 전망이다. 이 혼란의 파도가 가장 먼저 덮칠 사람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다. 어찌보면 정동영 의장은 정치인생에서 최대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정동영 의장이 이끌었던 열린우리당은 현재 사실상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다.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으로 가고,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은 민주노동당으로 가거나 특별한 지지정당을 정하지 않은 채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열린우리당에 남아 있는 지지자들은 호남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유권자들 가운데 일부이거나 친노 잔존세력 등이 전부다.

‘정동영 대통령’의 꿈은 멀어지고

이런 열린우리당의 몰락 속에서 ‘정동영 대통령’의 꿈은 계속 멀어지고 있다. 최근 있었던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정동영 의장은 고건 전 총리에 비해 많이 뒤처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반 한나라 연합세력 내부에서 대권후보로 당선만 된다면 한나라당 후보와 맞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그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우선 지방선거 직전에 터져 나온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의 ‘정동영 탈당’ 발언만 해도 그러하다.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가 직설적으로 정동영 의장을 공격하고 나선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동영 의장 세력은 다소 보수성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한나라당보다는 왼편에 있지만 거의 중도보수 성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 측을 포함한 열린우리당의 젊은 지지자 그룹은 상대적으로 정 의장 세력보다 진보적이다.

정 의장 세력이 호남에 지역적 기반을 두고 있는 거의 중도보수에 가까운 집단이라면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 측을 포괄하는 열린우리당의 386그룹은 적어도 정 의장 세력보다 진보적이며 특별한 지역기반이 없다.

지난 2002년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386 젊은세대의 마음을 잡음으로서 승리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2007년 대선 후보 결정전에서도 386세대의 힘은 대단할 것으로 전망된다. 숫자는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더 많을 수 있지만 지지의 열성도에서 비교해보면 386의 열성에 미치지 못한다.

김두관, 중도좌파 연합 통해 정동영 무찌르려 시도할 것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는 정동영 탈당발언을 통해 반 정동영 그룹의 전면에 섰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중도좌파 성향을 대표하는 김근태 의원 역시 정동영 의장 공격에 대해 검토했을 수 있다. 그러나 김 의원은 당 내외의 파장을 생각해 그것을 주저했을 수 있다. 여기에는 김 의원의 지나칠 정도로 신중한 성격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는 직설적으로 정동영 의장을 공격했다. 그는 이 공격을 통해 상대적으로 정동영 의장보다 진보적이면서 정동영 의장을 중심으로 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386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장기적으로 생각해 볼 때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는 2007년 대선 후보 결정전에서 ‘제 2의 노무현’ 바람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정동영 의장이 ‘제 2의 이인제’로 전락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2007대선에서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가 제 2의 노풍, 즉 ‘두풍’을 일으키는 과정을 예상해 보자. 현재 열린우리당 후보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후보는 김두관 후보가 대표적이다. 김근태 의원은 진보적인 인물이지만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이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다.

김두관 후보에게 유리한 조건은 유시민 의원이 참여정부 이후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말한 점이다. 중앙일보 5월 15일자 기사를 보면 ‘유시민 의원이 대통령 퇴임에 맞춰 장관 임기 끝내고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유시민 의원의 고향이 경주인 까닭에 유시민 의원은 영남에 고향을 둔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을 받아왔다. 물론 유시민 의원이 대선주자로 나서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많았지만 그래도 ‘유시민 대권론’이 한동안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반 한나라 세력 입장에서는 영남을 고향으로 둔 후보가 나와야 유리한 측면이 있다.

노무현과 김두관, 그리고 정동영

노 대통령의 경우에는 고향이 경남 김해였던 까닭에 영남 지역에서 상당한 양의 득표를 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영남에 뿌리를 두고 있는 김두관 후보나 유시민 장관이 대선후보로 나설 경우 반 한나라 진영은 이득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데 유시민 장관이 사실상의 정치중단을 선언한 상태이므로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김두관 후보 정도 밖에는 영남 프리미엄을 가진 대선후보가 없게 되었다.

다만 김혁규 의원이 있지만 김 의원의 연령이나 열린우리당 내 세력분포를 볼때 김혁규 의원이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항들을 정리해보면 오히려 정동영 의장의 최대 라이벌은 김근태 의원이 아니라 김두관 후보일 수 있는 셈이다.

정동영 의장은 이제 기로에 섰다. 정동영 의장의 선택에 따라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대통령 후보의 자리에 무사히 설 수도 있고,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한 채 평범한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동영 의장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정동영 의장은 대선 전까지 ‘백의종군’의 길을 걸을 필요가 있다. 현재 정동영 의장은 의원 신분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2007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이름이 오르 내리겠으나 선거에 출마해서는 안된다. 철저히 바닥에서 민심을 읽으며 발로 뛰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동영 의장은 자택에 칩거해 여러 가지 구상을 매듭지어야 한다. 현재 대선후보들 가운데 고건 전 총리나 정동영 의장의 경우에는 뚜렷한 자신만의 색깔이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이념적으로 봤을 때 그러하다. 이명박 시장이나 박근혜 대표, 김근태 의원이나 김두관 후보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이념색이 명확하다. 하지만 고건 전 총리나 정동영 의장은 이념색이 불명확하고 출신지역의 지지도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정동영과 공손찬

지금의 정동영 의장을 생각하면 삼국지에 나오는 공손찬이란 인물이 떠오른다. 공손찬이란 인물은 고구려와 인접한 중국 요서지방에서 태어난 인물로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해 일찍부터 그곳에서 관리로 등용되었다고 한다.

공손찬은 상대를 압도하는 풍채와 우렁찬 목소리를 가졌다고 하는데 관리가 된 이후 당대의 석학인 노식이란 학자 밑에서 유비와 함께 공부를 했다. 이렇게 유비와 인연을 맺게 된 공손찬은 유비와 함께 동탁 토벌군에 참여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중원 북부지역 일대에서 강성한 힘을 갖게 된다. 이때 유비는 공손찬에게 중원의 중심인 낙양으로 나아가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망해가는 한나라의 황제를 돌보라고 간언하지만 공손찬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들며 이를 거절하게 된다.

한편 공손찬은 주변의 또 다른 강자인 원소와 기주라는 지역을 놓고 다투게 되고 결국에는 북방의 최강자 자리를 놓고 원소와 겨루게 된다. 그러나 공손찬은 원소와 본격적으로 겨루기 전 얻은 힘만 믿고 자신의 편안만 찾으려 했다.

원소의 크고 작은 침입이 계속되자 공손찬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거대한 누각을 짓고는 그 안에 막대한 군량을 보관하면서 그 자리에 은거해 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사실을 잊고 현실에 안주하려 했던 것이다.

이때 조조는 여포 토벌을 완료했고 다음으로 황제를 참칭하고 있던 원술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원소를 꼬드겨 공손찬을 습격하도록 했다. 중원의 3분의 2를 차지하게 된 조조와 결국 크지 못하고 쇠망해 버린 공손찬은 이만큼 그릇의 차이가 컸던 것이다.

공손찬은 원소의 엄청난 공격을 받는다. 원소는 북방 일대를 장악하기 위해 공손찬을 반드시 제거해야만 했다. 원소의 집중적이고 적극적인 공격과 달리 공손찬은 그냥 성을 수비하는 형태의 소극적인 대응전략으로 일관했다.

공손찬의 몰락과 정동영

공손찬은 원소의 공격에도 자신의 영토 안에 있는 성들이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공손찬의 성들이 하나씩 함락됨에 따라 공손찬이 있던 누각의 병사들은 급속도로 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공손찬은 주변에 있던 흑산적의 우두머리 장연에게 밀서를 보내 원소를 협공할 것을 요청했으나 이 밀서를 가진 사자가 원소군에게 사로잡히는 바람에 역으로 이용당해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게 된다. 이 기세를 원소군이 공손찬이 있던 누각의 아래로 굴을 파고 잠입해 공격을 가하니 공손찬은 결국 패배하고 목 매달아 자살하고 만다.

한때 공손찬은 북방 최대의 영웅으로 불렸으나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삼국지 인물소프트’란 책을 쓴 저자 최용현 씨는 공손찬의 패망 원인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① 대국을 바라보는 안목이 부족했다는 점

② 유비, 조운등과 같은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

③ 작은 성공에 자만했고 그 성공에 안주하려한 점

공손찬의 이런 실패 원인은 오늘날 정동영 의장의 위기 원인과도 유사한 측면이 크다. 물론 공손찬이란 인물 자체도 정동영 의장을 연상하게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아직 정동영 의장에게는 시간이 있고 기회도 있으며, 지역기반도 있다.

정동영 의장이 해야 할 일

정동영 의장이 이제 해야 할 일을 간단히 말하면 ‘백의종군’이다. 여당의 패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백의종군하며 바닥의 민심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시대가 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그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던지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넓은 안목으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이들을 살펴 우수한 인재를 새로 영입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전에서 인재의 중요성은 굳이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공손찬도 인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망했다. 정동영 의장은 이런 공손찬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정동영 의장은 이념적 위치를 정확히 해야 한다. 중도진보냐, 중도보수냐 하는 갈림길에서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한다. 중도진보든 중도보수든 어느 한편을 확실히 잡아 둔 상태에서 다른 한편을 공략하는 것은 가능해도 두 편을 한꺼번에 잡겠다고 나서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다. 지금까지 정 의장의 스탠스는 중도진보인지 중도보수인지 불명확했다. 다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중도보수에 더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정 의장의 고향이 호남이란 것은 분명 약점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반 한나라 세력은 영남 출신 대선후보를 원할 것이다. 영남에서 표를 얻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이미 구태의연하다고 볼 수 있는 지역주의식 발상이란 점을 주의깊게 봐야 한다. 정 의장은 ‘지역 간 화해’라는 이슈를 선점함으로서 영남이 고향이 아니란 약점을 상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영남을 자주 방문해 영남인들과 거리감을 없애는 노력도 중요하다.

이런 노력을 계속 하면서 열성 지지세력을 굳히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지난 2002 대선의 노사모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노사모는 2002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동영 판 노사모가 2007년 대선에 대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정동영 의장은 현재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 시점이야 말로 그동안 정 의장이 걸어 온 길을 정리하고 대폭적인 자기 개혁을 통해 정 의장의 대선 경쟁력을 한 차원 끌어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정 의장은 활력이 충만한 정치인으로 정가에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 왕성한 활력을 앞서 언급한대로 자기 개혁과 전략 연구에 집중하면 정 의장은 반 한나라 세력의 대권후보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며 일단 반 한나라 세력의 대권주자 자리에만 오르면 ‘2007년 정동영 대통령’의 꿈은 결코 아주 허황된 것만은 아니란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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