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 전엔 공짜, 설치 후엔 400만원
[매일일보= 이재필 기자] 위성 DMB와 GPS의 발달로 내비게이션이 나날이 경쟁력을 높여가며 고급화 되어 가는 지금. 오너드라이버들의 내비게이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 이런 차량 운전자들의 마음을 역이용한 범죄 사기가 급증하고 있어 문제시 되고 있다. 내비게이션을 무료로 교체해 준다며 소비자를 유인하여 속인 뒤 일방적으로 내비게이션을 장착, 고가의 대금을 요구하는 것이 그것.
여기에 이미 제품이 설치돼 있는 운전자를 상대로 무료교체나 무상업그레이드를 해준다고 접근. 제품제공 후 돈을 요구하는 방법까지 더해지고 있어 소비자들의 피해는 늘어만 가고 있다.
실제로 경기도소비자정보보호센터의 자료에 의하면 올 들어 접수된 내비게이션 피해건수는 84건. 이는 전년 같은 기간 67건 보다 17건이 증가한 상황이다. 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을 상대로 벌어지는 내비게이션 사기가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신림에 거주하는 김 모씨는 한 식당 주차장에서 내비게이션 사기를 당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김 씨를 내비게이션 판매업자가 붙잡고 늘어진 것이다. 업자가 선보인 제품은 DMB시청도 가능하고 GPS기능도 장착된 고급 내비게이션. 김 씨는 호감은 갔지만 없는 형편에 살 엄두가 나지 않아 그만 두려 했다.
그러나 판매업자가 제시한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제품비, 설치비 무료에 업그레이드를 원할 시 5만 원 가량만 지불하면 된다는 것.
김 씨는 ‘업그레이드야 필요할 때 하면 되지. 어차피 공짜니까 하나 구입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어 그는 판매업자에게 설치를 요구했고 업자는 그 자리에서 제품을 김 씨의 차에 설치했다. 그러나 그게 화근이었다.
설치가 끝난 업자는 돌연 통신료 명목으로 400여만 원을 요구했다. 황당한 김 씨는 “사전에 그런 이야기는 없지 않았느냐”며 항의 했지만 판매업자는 “설치를 했으니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말 그대로 설치비와 제품비는 무상으로 해준 것 아니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이어 어이없어 넋이 나간 김 씨에게 판매업자는 “지금 설치를 받고 발뼘 하는 거냐며 이러면 우리도 생각이 있다”며 위화감을 조성. 결국 김 씨는 4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인천의 한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 모씨 역시 ‘배짱’ 내비게이션 사기에 걸려 거금 300만원을 위약금으로 날렸다.
정 씨는 내비게이션을 업그레이드 하지 않아 길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하루 바삐 업그레이드를 신청해 사용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 공짜 교체 및 업그레이드’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지금이 기회다’라고 생각한 정 씨. 곧바로 문자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했고 내비게이션 판매업자와 접촉을 했다. 업자는 정 씨에게 “자사 제품이 아니니 업그레이드는 무리고 내비게이션을 재설치 해야 한다. 하지만 공짜니까 걱정하지 말아라”고 전했다.
판매업자의 말을 믿은 그는 계약서에 설치동의를 인정하는 싸인을 했다. 그러나 계약서를 제대로 읽어 보지 않은 정 씨는 거금을 날리게 됐다. 계약서에 조그만 글씨로 ‘관리비 별도’라는 글씨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에 설치가 끝난 후 업자는 정 씨에게 관리비로 다달이 3만 5천원이 나갈 것임을 알렸고 정 씨는 얘기가 다르다며 항의했다. 그러나 정 씨의 싸인이 적힌 계약서는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정 씨는 분을 삭이며 위약금을 물어 혜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어이가 없더라구요. 사전에 관리비 이야기를 했으면 내가 왜 기존의 내비게이션을 버리고 새것을 달았겠습니까”라며 “사전에는 얘기 없다가 설치 후 갑자기 얼굴을 바꾸고 사람의 등을 치는 내비게이션 업자들... 정말 눈뜨고 코 베인 느낌이더라구요”라고 사기 업자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피해자들 대부분이 판매업자의 속임수에 속아 기기를 교체하거나 신규 가입해 피해를 입는 만큼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조금 더 신중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전하고 있다.
한 소비자정보센터 관계자는 “세상에 ‘무조건 공짜’라고 하는 것은 의심을 해봐야 한다. 판매자들이 무슨 생각이 있어 공짜로 물건을 팔겠는갚라며 “공짜라고 할 때는 그 이면에 어떤 이익추구 시스템이 있다. 이는 주의 깊게 살펴보고 함부로 계약을 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비게이션 무상 교체나 무상 업그레이드는 사기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하며 주머니 얇은 소비자들을 노리는 내비게이션 사기꾼들에 대해 주의 할 것을 전했다.
경기가 냉랭한 요즘 먹고 살기도 힘든 서민들을 상대로 듣기 좋은 말과 보기 좋은 때깔로 속여 넘기려는 사기꾼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서민들을 노리는 빈도가 높아지는 만큼 소비자의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과 행동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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