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한 씨, “나는 이렇게 당했다”
한 재일교포 사업가는 "A씨를 신뢰해 노 이사장에게 100억을 투자하려 했다."고 밝혔으나, A씨 측은 "모르는 일"이라며 침묵으로 일관, 판교 프로젝트를 둘러싼 진실게임에 의문만 쌓여가고 있다. 매일일보은 이 사기의혹의 실체를 2회에 걸쳐 연재, 독자들과 함께 궁금증을 풀어가고자 한다.<편집자 주>
지난달 29일 이른바 황우석 사단의 핵심인물 중의 한 명인 미즈메디병원의 노성일 이사장이 불임시술 환자를 속여 난소를 적출하는 등 불법 의료행위로 피해를 입힌 데 대해 법원으로부터 거액의 배상판결을 받았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5부(신수길 부장판사)는 한경춘(재일교포ㆍ52ㆍ기업가)씨가 노 이사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한 씨에게 6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가 진료 이외의 다른 목적을 위해 난소를 적출하면서 시술 목적과 필요성에 관해 원고를 적극적으로 속였거나 원고가 착오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올바른 의학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이뤄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이는 부당한 목적 아래 이뤄진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어 “외과적 수술로 난소를 적출한 뒤 냉동보관하며 난자를 추출해 인공 수정할 수 있는 기술은 현재 존재하지 않고 가까운 시일 내에 현실화될 가능성도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피고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라고 적시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사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행위를 한 점과 이 분야의 권위자로 믿고 난소까지 적출해 준 원고의 정신적 충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며 이 같은 배상 판결을 내렸다.
법원 판결 이후 한씨는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는다. 의사의 양심을 저버린 노 이사장을 형사 고소하겠다.”라고 분개했고, 노 이사장 역시 항소할 뜻을 보여 이들이 얽힌 악연의 고리가 가볍지 않음을 알게 했다.
“난소에 이어 나팔관까지 도둑맞았다”
노성일, 환자 동의 없이 여성 性 적출
이들의 악연은 8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10월 독신으로 살아 온 한 씨는 아이를 원했으나 불임으로 고민하던 중 NHK 광고방송을 통해 알게 된 미즈메디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한 씨는 당초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노 이사장이 제시한 뜻밖의 말을 듣고는 매우 당황하게 됐다. 노 이사장이 불임시술 환자인 한 씨에게 난소를 떼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난소는 여성의 생식선으로 난자를 만들며 배란기능도 영위하는 장기다. 일종의 난소 공장이기도 한 곳인데, 그 것을 떼어내 아이를 만들어 주겠다는 노 이사장의 발상 자체가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법한 시술제안인 것이었다.
한 씨는 현해탄을 건너올 당시 인공수정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믿고 온데다, “줄기세포 연구의 1인자이니 난소만 떼 주면 반드시 아이를 갖게 해주겠다.”는 노 이사장의 설득에 결국 난소 적출 수술을 받았다.
7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지만 이때 노 이사장은 난소뿐 만아니라 환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나팔관까지 떼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2005년 12월 한씨는 7년이 지나도 아이를 만들어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노 이사장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다른 병원을 찾게 됐고, 진단 결과 자신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인데다, 여성 性의 중요한 장기인 나팔관까지 없어진 것을 알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팔관을 도둑맞았다.” 한 씨는 기자에게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이 사실을 알려왔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노 이사장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지만 예상했던 되로 모든 사실을 부인했다.
노 이사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나팔관이 아니라 난소조차 떼어낸 기억이 없다.”면서 “한 씨가 도대체 누구냐?”며 오히려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6일 강서 미즈메디병원에서 만난 노 이사장은 불과 몇 개월 전의 기억은 모두 잊은 듯 태연히 말을 바꿨다.
그는 “한 씨가 처음 병원에 찾아 올 당시 4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다 이미 폐경이 시작돼 아이를 가지기는 불가능 한 몸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직 시도는 해보지 않았지만 난소를 떼어내 연구를 해보면 가능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여운을 남기자 한 씨가 적극적으로 애원해 할 수 없이 난소를 적출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노 이사장은 환자의 동의 없이 나팔관을 떼어낸 사실에 대해서는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했다.
그는 “난소 적출 수술에는 나팔관도 함께 포함될 수 있다. 의학적 전문용어를 해석하기 나름인데, 재판과정에서 이를 적극 해명하지 않은 부분이 큰 실수였다.”며 곧 항소할 뜻을 내비췄다.
A씨와의 친분 내세워 100억 투자유치 부탁
“불임치료 의탁, 노 이사장 제안 거절 못했다”
이들의 악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판교 신도시 개발로 전국이 떠들썩하던 지난해 7월 노 이사장은 일본 자금 100억을 끌어 들이기 위해 자신의 불임시술 환자인 한 씨에게 투자유치 활동을 부탁했다.
일본에서도 성공한 여성 건축기업인인데다, 자신을 믿고 난소까지 떼 준 환자와 의사관계였고, 여기에다 한국 현지의 실정에는 어느 정도 어두운 한 씨였기에 가장 적당한(?) 인물로 낙점했던 것이다.
한 씨는 노 이사장의 이 같은 제안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노 이사장이 예상한대로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한 씨는 “불임 치료를 의탁하고 있는 노 이사장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거절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 챈 노 이사장은 한 씨에게 일본 자금유치를 위한 활동비로 선 듯 1억 원을 건넸다.
또 1천억 원이 소요될 이번 사업에 국내 유망기업들이 함께 참여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노 이사장 자필로 참여할 기업과 투자금액을 적은 메모를 건네기도 했다. 이 메모에는 M유업 50억 등 구체적인 기업의 이름과 투자 금액이 명시돼 있었다.
게다가 노 이사장은 이 사업의 배경에는 당시 경기도의 높은 사람인 A씨가 있음을 자랑삼아 내세우면서, 그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다녔다고 한시는 주장했다.
한 씨는 “경기도의 높은 사람하고 한다(판교 프로젝트)는 소릴 하면서, 그 사람이 대통령에 나온다는 이야기도 했다. 또 같은 경기고 출신인데다, 노 이사장 측 아버지가 아끼던 사람이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A씨와 노 이사장은 경기고 선후배 사이로, 각각 61회와 67회 졸업생이다.
한 씨는 자신의 불임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에다, A씨가 이번 사업에 함께한다는 노 이사장의 사업설명을 믿고, 일본의 모 건설회사로부터 10억 엔(100억 원) 유치확약서를 받아왔다.
이 증서에는 일본의 모 건설회사가 판교 프로젝트에 10억 엔을 투자한다고 돼 있으며, 문서의 하단에는 ‘이 사업에 노 이사장과 A씨가 함께 참여했을 경우’라는 단서조항이 명시돼 있었다.
한 씨는 “A씨와 이번 사업을 함께 한다고 하니까 신뢰할 수 있었고, 땅도 값이 싸게 할 수 있다는 노 이사장의 말만 믿고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노 이사장이 제시한 땅값은 평당 900만원. 한 씨의 기대치를 수십 배나 비켜나간 비싼 금액이었다.
아직 개발도 되지 않은 판교지역의 땅값을 평당 900만원에 책정하고, 이를 600만원까지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게 노 이사장의 제안이었다고 한 씨는 설명했다.
한 씨는 “일반적으로 볼 때, 산림을 부셔서 일반 대지로 할 때에 그렇게 가격이 들지 않는다. 밭에서 토지로 하는 것은 더욱 안 들지만, 산을 깎는 등의 토목공사가 시작되면 부대 대금이 발생하긴 하나 그것을 고려해도 그 땅값이 싼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 씨는 땅값에 대한 의혹을 뿌리칠 수 없어 노 이사장에게 재차 비싼 이유를 캐묻자, “싸게 토지를 조성할 수 있으니까 남는 비용은 정치자금으로 쓴다는 등 납득하기 힘든 설명만 되풀이 했다.”고 말했다.
즉, 투자 당시 비싼 금액으로 땅값을 책정해 차액을 A씨의 정치자금으로 이용하고, 대신 투자자들이 이윤을 나눌 수 있도록 뒤에서 이번 사업을 도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 씨는 예상보다 비싼 땅값과 이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 계획서가 제출되지 않아 이번 사업에 대한 투자를 포기했다.
한 씨는 “계획서와 납득할 만한 서류가 오지 않아 입금을 할 수가 없었다. 플랜이 있으면, ‘어느 공사를 어느 선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지분은 어떻게 나누어지나?’, ‘영업상의 이익에 대한 배당’ 등에 대한 설명이 뒤따르는 게 기본적 이캇라며 포기이유를 밝혔다.
A씨 측, 노성일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
“허위사실 유포, 대응 안할 것”... 의혹 증폭
한 씨의 투자포기로 인해 판교 신도시에 영리법인의 여성병원을 짓겠다던 노 이사장의 야심은 결국 미수로 끝나고 말았다. 물론 병원법인에 대한 영리부분도 아직 법제화되지 않은 부분이었고, 경기도에서조차 승인받지 못한 것이 주된 요인이기도 했다.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한때 판교 프로젝트 건으로 노 이사장을 만났지만 법령 미비를 들어 거절했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A씨가 해외 투자 유치를 중시한다는 점을 파악,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환자인 한 씨를 통해 일본 자금을 유치하려 했던 것이 아니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즉, 투자자들에게는 A씨와의 친분을 통해 프로젝트를 완성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사실상 일면식도 없는 A씨와는 해외투자 유치를 우선적으로 갖춰 놓은 다음 이 사업에 끌어들이려 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전후야 어찌됐건 노 이사장이 추진해 온 판교 프로젝트는 무성한 의혹만 남긴 채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노 이사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A씨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한 씨의 주장을 일축하면서도 자신의 자필로 남긴 비망록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못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은 경기도의 높은 사람으로 지칭되고 있는 A씨의 침묵이다.
A씨 측근은 “노 이사장과 경기고 동문이란 사실조차도 몰랐던 일”이라며 일련의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노 이사장의 허위사실 유포와 관련한 대응문제에 대해서는 “대응할 가치조차 못 느낀다.”며 끝내 무대응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나 A씨의 일관된 침묵과 무대응 방침은 향후 그의 정치행보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공인의 이름을 팔아 1천 억대 사기의혹을 불러일으킨 이번 사건을 묻어 둔다는 자체가 큰 부담을 안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고두고 무성한 추측과 의혹을 양산하게 될 이번 사건의 부담을 혼자 떠안으려는 A씨의 속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