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나라에 가난한 국민... 석유의 저주?
[매일일보 이재필기자] 14일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전격 침공한데 따른 중동전 확산 우려로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인 76달러 선을 돌파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76달러를 돌파한 것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지난 1983년 원유선물거래가 시작된 이래 처음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의 경우 유가 상승은 곧 생산비용의 증가와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자연히 무역수지 악화로 인한 무역적자로 이어지고 서민경제에도 큰 타격을 입힌다.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는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제 유가 상승. 이런 언론 보도를 접할 때 마다 가장 크게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산유국에 대한 부러움일 것이다. 첨단 기술이 아닌 매장되어 있는 천연 자원만으로 천문학적인 부를 유지하는 산유국.
한국은 가진 것 없는 부모를 만나 자수성가한 아이, 산유국은 부자 아빠를 만나 태어나면서부터 부를 손에 쥐고 태어난 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그러나 부자아빠를 둔 아이들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2005년에만 1533억 달러를 석유 수출로 벌어 들였다. 하루 870만 배럴을 수출하는 사우디는 석유 수익만으로도 재정충당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민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부러움보다 측은함이 든다. 사우디는 2000년대 초반 ‘0%’의 성장을 보이다 작년에 겨우 경제 성장률을 ‘6.2%’로 끌어 올렸다. 또한 1인당 국민소득 역시 1970년대에 2만 6천 달러 수준에서 2004년 1만 430달러로, 국민 경제 수준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석유산업 이외에는 마땅히 일자리도 없는 사우디는 20~30대의 청년층 실업률은 20% 이상으로 정부가 교육비, 의료비 등 웬만한 것을 다 해결해 주니 의욕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임에도 석유로 인한 막대한 수익은 3만 명에 달하는 왕족이 잠식하고 군대, 경찰, 정보기구 등 모든 권력기관을 독점하는데 사용한다.
주요 도시 곳곳에 슬럼가가 위치한 사우디는 2002년에서야 사상 처음으로 빈곤의 실체를 인정하고 원인과 대책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만들었다.
하루 219만 배럴을 수출하는 아프리카 최대 석유 수출국 나이지리아 역시 막대한 부를 벌어들이는 국가임이 무색하다.
나이지리아는 1970~1999년 석유로 2310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나 같은 기간 1인당 국내 총생산은 264달러에서 250달러로 오히려 감소했다.
최근 국제유가가 사상최고치를 달리고 있음에도 나이지리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현재 390달러. 국민의 70%가 하루 1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살고 있는데 이는 40년 전 27%였던 것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다.
미 일간 보스턴 글로브는 보도를 통해 나이지리아 석유 수입의 80%는 단지 1% 국민의 배를 불리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나이지리아 인권인도주의법연구회의 아르야크위 은시리모부는 “풍요 속의 가난”이라는 말로 현 상황을 요약했다.
1999년 취임한 올루세군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나이지리아 전력을 인구수로 나누면 30w짜리 전구 하나도 제대로 켜지 못할 정도”라고 개탄할 정도다.
베네수엘라는 남미 1위의 석유 수출국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평균 6280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4020달러에 불과하다. 2002~2004년 평균 경제 성장률은 -1.3%로 남들이 앞을 향해 달려갈 때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1998년 집권한 이후 석유 수익을 빈곤층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빈곤층 비율은 여전히 인구의 40%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국내 기업 중 40%가 문을 닫고 해외로 나가는 국부 유출 현상이 더해져 베네수엘라의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이처럼 석유 수출국들이 경제발전에 뒤처지고 국민의 삶이 다른 국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몇 나라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해주는 석유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들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부러워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즈’에 따르면 2004년 8월 석유 수출국 34개국 중 12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마이클 로스 UCLA 교수가 석유 수출 의존도가 높은 20개국에 대해 조사한 결과 상위 6개국 중 앙골라, 예멘, 콩고. 이 3개국이 세계은행 기준의 극빈국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에 많은 부를 축척하게 해주는 석유. 이를 이용해 급성장을 이룬 산유국들. 그러나 이들은 겉모습만 키웠을 뿐 내실은 키우지 못했다.
석유 채굴지를 가진 소수만이 부를 획득할 수 있는 석유 사업. 세금이나 국유화를 통해 용이하게 석유 수익을 획득할 수 있는 석유기업과 정치인들이 당장 자신들의 돈줄에만 신경 쓸 뿐 다른 산업발전은 뒤로함으로써 발생하는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는 산유국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국가수익은 막대하지만 수익의 대부분을 일부 고위층만이 독식해 대다수의 절대빈곤층과 소수의 부자들만이 존재하는 산유국. 석유가 나지 않음에도 한국이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는 이유임과 동시에 많은 산유국들이 세계 경제 11위의 한국을 부러워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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