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한종해기자]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대학가에 ‘엽기 알바(아르바이트)’가 인기다.

엽기 알바는 편의점, 식당, 주유소에서 하는 아르바이트와 다르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직종이지만 짧은 시간에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이 특징.

전국 대학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과 각종 구인구직 사이트 게시판에는 ‘엽기 알바’ 또는 ‘이색 알바’라는 단어가 늘어나고 있다.

엽기 알바 중 하나가 ‘시신 닦기’. 병원에서 교통사고 피해자 등의 시신 1구를 닦는데 시간당 10만~20만 원은 받는다.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마루타 알바’도 눈에 띈다. 병원의 신약 임상시험으로 소화제를 먹인 뒤 채혈하거나 자외선을 허벅지에 쬐이고 결과를 지켜본다. 회당 30만~40만 원이어서 대형병원과 제약회사에 대학생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포르노 알바’도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을 법한 ‘포르노알바’의 업무는 온종일 동영상을 보는 것이다. 하루 종일 인터넷 동영상을 보면서 불순한 내용을 유해 방지 사이트 회사에 알려 준다. 시간당 5000원 안팎.

‘황금 직종’이 단지 돈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편하고, 재미있고,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일도 ‘황금 직종’으로 불릴 만하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는 ‘대행 아르바이트’.

지난 6일 박은경(22, 여)씨는 대구까지 아르바이트를 위해 출장을 다녀왔다. 한 의뢰인의 요청으로 회사 모임에 애인인 척 동행을 했다.

박씨의 일은 ‘역할 대행’. 결혼식장의 신부 친구인 척 연기하는 하객 대행부터 애인으로 파티나 모임에 같이 참석하는 역할 등 인생이 일종의 연기이자 드라마가 된다.

박씨의 본업은 대학생이자 미술학원 보조교사다.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는 재미있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결혼식 하객대행으로 7차례, 애인 대행으로 5차례 나선 박씨.

하객 대행은 호텔 뷔페에서 식사를 한 뒤 신부 측 친구인 척 사진을 찍으면 일이 끝난다. 일당은 4만원 안팎으로 쏠쏠한 편이다. 결혼식 하객 대행은 봄, 가을이 가장 많고 지방으로 출장 가면 벌이도 2배로 뛴다.

애인 대행은 거의 파티나 모임 동반이 많다. 반드시 의뢰인과 30분 전에 미리 만나 인사를 나누고 신상을 차악해야 한다. 진짜 애인인 것처럼 실수 없이 연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애인 대행은 뛰어난 연기력뿐만 아니라 곤혹스러운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침착함이 중요하다. 여자 친구가 없는 미혼자가 커플로 참석하는 자리나 때때로 결혼을 압박하는 부모님에게 애인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옛 여자 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새로 사귄 여자 친구로 등장해 어색한 3자 대면을 하고,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구애하는 여자의 친구 역할을 할 때도 있었다. 역할이 ‘고난도’여서 한번대행에 3시간 기준으로 12만원에서 15만원 안팎의 비교적 많은 돈을 받는다.

결혼식에 대신 참석할 ‘부모 대행’의 경우도 요금이 높은 편. 결혼식에 참석할 부모 역할을 찾는 경우는 15만원을, 상견례 정도만 참석할 부모 역할을 찾는 경우에는 7만~8만원을지급해야 한다.

‘하객 대행’은 보통 4만원선으로, 친구나 친척 역할을 하는 하객 대행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업체들은 입을 모았다. 가장 높은 요금은 ‘비즈니스 대행’. 요금의 상한선은 없다. S업체 측은 ‘호텔에서 거래업체를 상대로 브리핑을 해주는 등 전문성이 필요한 ’비즈니스 대행‘은 최소 15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하며, 역할 난이도에 따라 가격을 판단하기 때문에 상한선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2시간 정도 한국어 브리핑을 할 경우 요금은 20만~25만원 정도인 데 보통 가격의 50% 전후해 대리인에게 지급되지만, 비즈니스 대행 등의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 등이 필요한 경우에는 조금 더 많이 지급되는 편이다“고 귀뜸했다.

박씨는 “가끔 ‘작업성 멘트’를 은근히 건네는 의뢰인도 있지만 정중하게 거절 한다”면서 “의뢰인에게 역할 대행자의 신상이 전혀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 역할 대행 알바를 위해 업체에 등록한 사람은 대부분 직장을 가진 20, 30대로 ‘투잡스족’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행업체 사장 김씨(34)는 “부모, 하객, 자녀, 애인, 가사 등 다양한 역할 대행이 있다”면서“의뢰인이 인터넷에서 대행인의 사진을 본 뒤 직접 선택해 자신의 상황에 맞는 역할을 부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험요? 그거 옛말이죠.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가 최고 아닌가요?”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소위 대박(?) 아르바이트로 불리고 있는 애인대행 아르바이트에 나성 최모양(21)의 말이다.

최씨는 “무리 없이 애인 행세를 해주면 3시간 안에 10만원을 벌 수 있는데 왜 패스트 푸드점이나 주차 도우미를 해서 사서 고생을 하냐”고 오히려 되묻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방학 때만 되면 패스트 푸드점이나 놀이동산 등은 아르바이트 대학생들로 넘쳐났다. 보수는 적어도 또래들을 사귈 수 있고 다양한 사회경험을 할 수 있다는 데 큰 매력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직종이 워낙 가양한 데다 투잡족, 프리터(직업 없이 알바만 하는 사람들)의 등장으로 기본시금에 식대, 교통비까지 챙겨주는 직종으로만 몰리고 있다.

때문에 극장과 백화점 관계자는 골라 쓸 수 있는 ‘물 좋은(?) 인적자원 덕에 미소를 짓고 있는 반면, 패스트푸드점과 자동차 도우미 직종 등에는 하루에 1명 정도 지원을 하고 있어 ’귀한 알바생‘대접까지 해주며 어루고 달래기 바쁘다는 아우성마저 들린다.

대학생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돈독이 오른 것일까.

소, 돼지 팔아도 한 학기 등록금을 내기조차 버겁고, 여전히 반복되는 사업주의 임금체불과 시간외 노동 등 부당한 처우에 지치고 또 지쳐 반기를 든 것인지도 모른다.

상황이 어찌됐든, 다양한 경험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요즘 대학생들의 태도는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은 멀찌감치 떨어져 이해득실을 따지는 모습은 분명 아쉬운 모습이다.

사회로 나가기 위한 첫 관문인 아르바이트, 일단은 이것저것 따져보기 전에 젊음을 무기삼아 사회에 과감히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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