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권민경 기자] 롯데가 유통시장 다각화 전략의 일환으로 우리 홈쇼핑(이하 우리홈)을 전격 인수했다. 지난 8월 2일 롯데쇼핑은 우리홈 최대주주인 경방으로부터 지분 53.03%를 4천667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그동안 까르푸, 월마트를 비롯한 대형 M&A 에 잇달아 실패해온 롯데는 자존심을 다소나마 회복하게 됐다. 물론 최종적으로 인수가 완료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난관이 버티고 있어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방송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의 허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우리홈의 2대 주주인 태광산업 측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의 우리홈 인수를 계기로 벌써부터 업계는 유통 빅3(롯데-신세계-현대)의 기싸움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단 국내 할인점 부동의 1위인 신세계는 홈쇼핑 부분에서만큼은 롯데에 한 발 뒤지게 돼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홈쇼핑 업계 3위로 우리홈과 경쟁관계였던 현대백화점(이하 현대)은 롯데와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더욱이 업계에서는 롯데의 SO(종합유선방송사업) 인수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어 이 사업에 공을 들여왔던 현대 측으로서는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우리홈 인수 계기로 '유통 빅3' 기싸움 본격화
롯데는 이번 우리홈 인수가 확정되면 외형상 백화점-할인점-인터넷 쇼핑으로 이어지는 온.오프 유통라인업을 완전히 구축하게 된다. 또한 할인점과 수퍼의 중간개념인 대형 수퍼마켓 롯데수퍼와 편의점 세븐일레븐까지 보유하고 있어 국내 유통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전 유통 채널을 아우르게 됐다.
롯데쇼핑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롯데가 다양한 유통채널이 홈쇼핑 사업과 연계돼 각 부문에서 시너지를 창출해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물류통합을 비롯해 롯데가 가진 바잉 파워를 이용, 홈쇼핑에 들어가는 물건 단가를 낮출 수 있게 된다.
또 홈쇼핑 구매 고객이 바로 백화점이나 할인점으로 연결될 수 있어 고객은 상품에 대한 신뢰를 더욱 높일 수 있고, 회사측은 고객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등 다양한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롯데가 홈쇼핑을 통해 공격적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서면서 영원한 라이벌 신세계와의 기싸움 또한 재점화됐다.
신세계는 지난 5월 월마트 매장 16개를 8천250억원에 인수하며 롯데와의 선두다툼에서 다소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월마트에 대한 공정위의 기업결합 승인이 떨어지면 신세계는 국내에만 이마트 점포 100개(이마트 84개+ 월마트 16개)를 확보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신세계 주가 또한 꾸준히 상승해 시가총액 기준으로 롯데를 앞질렀다. 그러나 롯데가 홈쇼핑을 확보하면서 신세계 역시 안심할 수만은 없게 됐다.
사실 신세계 측은 그동안 "홈쇼핑 사업에 관심은 있지만 적당한 매물과 가격이 나와야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홈 인수전에서도 신세계 역시 인수의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홈이 롯데 손에 넘어가면서 신세계는 유통 빅3 가운데 유일하게 홈쇼핑을 확보하지 못하게 됐다.
롯데, SO 인수 가능성?... 현대百 경쟁 불가피
한편 현대 또한 롯데의 홈쇼핑 사업 진출에 신경이 쓰이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홈쇼핑 업계는 CJ가 선두를 달리고 있고, 그 뒤를 GS 가 쫓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업계 3위, 롯데가 인수하게 된 우리홈은 4위로 추격하는 양상이다.
롯데 관계자는 "현대홈쇼핑을 따라잡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면서 "우리의 목표는 업계 1위인 CJ와의 경쟁이다" 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현대 측은 롯데의 우리홈 인수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고 있다.
현대 한 관계자는 "섣부른 전망을 하기는 어렵지만 롯데가 들어온다고 해서 홈쇼핑 시장을 크게 좌지우지 할 수 있을 것이라 보진 않는다" 고 말했다.
더욱이 롯데는 최근 실적발표 자리에서 SO 인수 가능성을 언급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해 업계의 추측이 전혀 설득력 없는 것만은 아님을 나타냈다.
현재 SO 1개 인수가격은 대략 1천억원대로 거론되고 있는데 롯데는 2조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자금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 또한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롯데 관계자 또한 "당장 SO인수 계획은 없다" 면서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고 언급했다.
이렇게 되면 롯데와 현대의 경쟁은 한층 더 뜨거워진다. 현대는 지난 2002년부터 서초, 동작, 금호 등 케이블방송사를 집중적으로 인수했고, 충북 지역 종합유선방송사인 CCS와 충북방송까지 인수해 업계 3위에 올라섰다.
이로써 단번에 총 10개 SO 운영업체, 가입자 100만 돌파라는 위상을 얻게 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롯데가 SO 시장에까지 진입하게 된다면 현대 또한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현대 관계자는 "롯데가 SO를 인수한다고 해도 단 시일 내에 따라잡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며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2대주주 태광과의 갈등 봉합이 최대의 관건
하지만 치열해진 '유통 빅3'의 선두다툼에서 롯데가 우리홈 인수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일단 롯데 측은 방송위의 승인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부담과 함께 우리홈 2대 주주인 태광과의 갈등 문제까지 안고 있다.
지난 2004년 경방은 방송위의 재승인 심사 당시 향후 3년간 대주주의 지분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한 바 있다. 홈쇼핑 사업자는 3년마다 방송위에서 사업 재승인을 받도록 돼 있는데 경방이 제출한 이 서약서에 따르면 2007년 5월까지 경영권을 다른 곳에 팔 수 없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태광 측은 "경방이 방송위에 제출한 각서 내용을 어기고 지분을 매각한 만큼 방송위는 이번 인수, 합병을 승인해서는 안된다" 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
그러나 경방은 "각서 작성 당시 경영권이 위협받을 경우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었다" 면서 "더욱이 이는 강제성이 띤 것이 아니므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는 입장이다.
실제로 태광은 최근 우리홈 지분율을 46%까지 끌어올리며 지난 6월에는 대주주 변경 신청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에 경방은 자칫 태광에게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던 것이다.
열쇠를 쥐고 있는 방송위는 현재로서는 인수 승인 여부에 뭐라 말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편 롯데 측은 인수 계약이 체결되자마자 불거진 부정적 상황에 당혹스러운 내색을 보이면서도 여전히 인수 허가를 낙관하고 있는 분위기다.
롯데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인수 계약 전에 경방이 방송위에 제출한 서약서에 대해 알고 있었다" 면서 "그러나 검토 결과 법적 하자가 없었기 때문에 인수를 추진했다. 아마 방송위의 허가 역시 무난하게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일단 태광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며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가장 좋은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사실 롯데 입장에서도 유선방송 채널망을 확보하고 있는 태광과의 관계개선이 홈쇼핑 사업을 원활하게 하는 데 절실한 상황이다.
태광은 전국에 걸쳐 3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 SO 19 개를 보유한 국내 SO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때문에 태광의 협조 없이는 우리홈 방송을 안정적으로 송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태광이 이미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상황이기 때문에 롯데와의 갈등 해결이 만만치는 않다.
롯데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태광과의 '공동경영'에 관한 얘기까지 나오고 있지만, 이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면서도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봐야겠지만 애초부터 이를(공동경영) 협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고 여운을 남겼다. 권민경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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