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위태롭게 할 권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무슨 일을 “내가 책임진다”며 강행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은, 중매를 하면서 신랑감이나 신부감을 “책임진다”는 식의, 책임이나 보상이 불가능한 사안에 대해서 그런 소리들을 하는데, 그렇게 추진했던 일이 실패하면 ‘책임’진다던 사람은 오히려 자기도 속았다고 분해서 펄펄 뛰고, 믿었던 사람만 억울한 바보가 된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방화시설 미비를 다루는 TV 프로에서 기자가 어느 대규모 공장을 탐방해서 그곳의 방화시설이 부실하다는 우려를 말했더니 그곳 공장장이 “절대 안전하다. 내가 책임진다”고 말을 잘랐다.
만약 그 공장에서 방화시설 부실로 화재가 나서 수십억 재산손실과 인명피해가 생긴다면 어떤 책임을 질 각오로 그런 말을 했을까, 참 남의 일이라도 안타까웠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지혜와 판단을 ‘어린’ 백성은 믿고 따르기만 하면 우리나라가 편안하고 발전한다는 신념으로 통치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지혜와 판단이 옳지 않았음이 드러났을 때 그는 어떻게 책임을 질 요량인지, 참으로 의문스럽다. 그는 야당과 국민 뿐 아니라 여당까지 결사반대를 하는 김병준의 교육부총리 임명을 강행하고 나서 그의 온갖 비행이 드러났을 때 그를 사퇴시킬 사안이 아니라고 우겼다. 그것은 교육부총리 정도 되려면 학자적 양심 따위는 싹 무시할 ‘담력’이 있어야하고, 어느 길에서나 정도를 걷는 것은 바보이고 편법을 잘 써야 잘난 인물이라는 의식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게 혼탁해진 사회를 그는 어떤 식으로 책임지려 했을까? 그렇게 정의도 가치관도 전도된 사회가 그가 자나 깨나 외치던 ‘개혁’의 목표였던가? 그런데 사회를 혼란하게하고 국력을 저하시키는 내치의 실패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온 국민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외교이다.
노대통령은 한미 작전통제권을 ‘지금 환수하더라도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있다’고 큰소리를 치고, ‘지금 환수하더라도 국가 안보에 문제가 없고 한미동맹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리고 주한 미군은 계속 주둔할 것이라고 확언도 한다. 이것은 그의 ‘직관’일까, 아니면 부시대통령의 은밀한 약속이 있었던 것일까? 노대통령이 모든 역대 국방장관이 반대하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자주국방의 핵심’이라면서 그것은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이니까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국민의 합의가 있다면 환수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어느 정도 비용’은 어느 정도의 비용인가? 북한의 침략 위험과 북한에 의한 무력적 합병도 지불 가능한 비용인가? 그가 내치에서 항상 무시한 ‘국민적 합의’를 거론한 것은 고마운 일인데, 어느 날 ‘국민적 합의’는 빠지고 ‘작전통제권 환수’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주장으로 대체되지 않기 바란다. 국가의 안위를 위태롭게 할 권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 아니다. 그리고 나라가 위태롭게 되면 대통령도 ‘책임’질 도리가 전혀 없다. 수요일 저녁에 방영된 환경다큐멘터리 ‘적도 생명의 보고, 칼라파고스’ 편에 소개된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동물들의 기묘한 환경적응은 정말 처절했다. 먹이가 존재하는 높이에 따라 목을 뻗어야하는 높이가 달라서 갈라파고스군도의 10여개 작은 섬 마다 거북은 등껍질의 형태가 달랐고, 핀치새는 부리의 길이와 두께가 달랐다. 잡은 물고기를 군함새에게 늘 강탈당하는 제비꼬리갈매기는 먹이를 지키기 위해 야행성 갈매기가 되었고, 새끼를 먹여 기르기 힘든 부비새들은 알을 두 개씩 낳아서 그 중에 강한 새끼가 약한 새끼를 죽이는 것을 묵인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지극히 취약한 생존조건을 지녔다. 그러므로 슬기롭게,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안전을 지켜야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힘없는 자라고 힘 있는 자에게 굴종해야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약자도 지혜와 논리와 품위로 힘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힘없는 나라가 터무니없는 큰소리를 하면 세계의 비웃음을 받는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그리고 인간만이 말 한마디로 재앙을 불러들일 수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끊임없는 해명과 설명이 필요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서지문 고려대 교수<매일일보닷컴 제휴사=업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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