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론조사는 여론조작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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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론조사는 여론조작에 가깝다
  • 매일일보닷컴
  • 승인 2006.08.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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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정치 배제한 여론조사... 멍청할 뿐더러 위험하다

▲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요즘 다음 번 대통령 선거에 누구를 뽑겠는가 하는 여론조사가 유행이다. 자고 나면 이명박, 박근혜, 고건 등 대권 후보들의 지지도가 어떻다는 뉴스가 신문 지면이나 인터넷을 장식한다. 그러나 이런 조사는 멍청할 뿐더러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미국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나는 pollingreport.com 이란 사이트를 이따금 훑어본다.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미국의 여론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이트에는 2008년 대통령 선거에 관해 세 가지 여론 조사 결과를 잘 정리해서 실어 놓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

첫째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찍겠냐는 조사 결과이다. 지난 7월말에 표본 유권자를 상대로 한 다이어지오/핫메일이 행한 여론 조사는 공화당에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그리고 민주당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후보로 나오면 누구를 찍겠냐고 물어 보았는데, 응답자의 49%가 매케인을, 그리고 37%가 힐러리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중순 폭스뉴스가 행한 조사에 의하면 공화당에서 매케인이, 그리고 민주당에서 힐러리가 후보로 나오는 경우에 매케인이 힐러리를 46 대 42로 누르며, 공화당에서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그리고 민주당에서 힐러리가 나오는 경우에는 줄리아니가 49 대 40으로 낙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에서 앨 고어 전 부통령이 후보로 나오는 경우에는 매케인은 고어를 48 대 36으로, 줄리아니는 50 대 37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에는 WNBC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 사람들에 대해서 이들이 대통령에 출마하는 것을 지지하느냐 또는 반대하느냐는 여론조사를 했는데, 존 매케인은 지지 56% 반대 39%, 줄리아니는 지지 49% 반대 45%, 그리고 힐러리는 지지 47%, 반대 51%를 보였다. 둘째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조사결과이다. 지난 6월 초에 갤럽이 민주당원 및 민주당으로 기울어져 있는 유권자를 상대로 한 조사에 의하면 힐러리 클린턴이 36%, 앨 고어가 16%를 얻었으며, 그 외에 존 에드워드 전 상원의원이 12%, 존 케리 상원의원이 11%를 차지했다. 셋째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조사결과이다. 지난 6월 초에 갤럽이 공화당원 및 공화당으로 기울어져 있는 유권자를 상대로 한 조사에 의하면 줄리아니가 29%, 존 매케인이 24%를 차지했고,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 등은 한 자리 수에 머물렀다.
위의 여론조사를 통해서 다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공화당은 줄리아니가 후보가 되든 매케인이 후보가 되는 간에 힐러리를 10% 정도 차이로 이길 수 있다. 둘째, 일반 유권자로부터 호감을 가장 많이 받는 후보는 매케인이고 가장 반감(抵触)을 많이 사고 있는 후보는 힐러리이다. 특히 힐러리에 대해선 어느 여론 조사에 의하더라도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힐러리가 필패(必敗)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셋째, 민주당 성향 유권자들은 민주당 후보로 힐러리를 가장 많이 지지하고 있다. 다만 주목할 것은 앨 고어에 대한 지지도가 최근에 급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넷째, 공화당 성향의 유권자들은 공화당 후보로 줄리아니를 가장 많이 지지하고 있다. 위의 결과를 종합해 보면 현재의 상황에서는 줄리아니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많으며, 줄리아니는 힐러리나 고어를 이길 수 있다고 보게 된다.

여론을 오도(誤導)할 위험이 많은 우리 여론조사

8월14일 한겨레신문이 의뢰해서 실시한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되었다. 이 조사에 의하면 이명박 21.6%, 박근혜 18.1%, 고건 13.5%, 강금실 2.2%, 손학규 1.9%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런 방식의 여론조사 결과는 우스운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누구를 반장으로 뽑겠냐고 물어 본다면 이런 여론조사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엄연히 정당이란 실체가 있는 우리나라 정치에서 이런 여론조사는 멍청한 짓이다.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는 같은 당 소속이고, 강금실 정동영 등은 또 다른 같은 당 소속이다. 따라서 위의 여론조사 기관은 대통령 선거에 한 개 정당에서 후보를 무제한 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셈이다. 제대로 여론조사를 하려면 미국의 경우처럼 이명박이 한나라당 후보로 나오고 강금실이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오는 경우 누구를 지지하겠느냐 하고 물어야 한다. 미국의 여론조사가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느냐를 물을 때는 항상 민주당 및 공화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각각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조사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보수적인 줄리아니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더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론 조사에는 이와는 정반대다. 일반 유권자 표본을 상대로 누구를 한나라당 후보로 지지하느냐고 여론조사를 하게 되면, 응답자 중에는 한나라당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게 되어 결국 한나라당 본류(本流)와 거리가 먼 후보가 가장 높은 지지를 얻게 된다. 지난 번 서울시장 선거 때 여론조사에서 ‘트로이의 목마’ 같은 오세훈씨가 높은 지지를 얻은 것도, 요즘 이명박씨가 높은 지지를 얻는 것도 이런 ‘마술(魔術)’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 그렇다면, 이런 여론조사는 차라리 여론조작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매일일보닷컴 제휴사=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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