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강정구, 노무현은 공히 ´광신적 파벌주의자´"
대한민국 민주화세력의 악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노무현, 강정구, 김용옥 등이 극명하게 보여주는 분파주의(particularism)이다. 민주화운동에 전념한 자들의 악을 가장 잘 정리한 남한의 학자는 아마 신유길 교수일 것이다. 그는 70년대에 버클리에서 반독재투쟁을 하다가 민주투사들의 교만함과 배타성에 실망하여, 개발도상국가에 있어서 민주화운동의 한계와 민주투사들의 악덕을 연구했다. 파벌주의를 거부한 신유길 교수는 독재자에게도 미움의 대상이었고, 민주투사들에게도 미움의 대상이 되어, 결국 지금까지도 대학에서 쫓겨나있다. 좌우익의 과격한 갈등 속에 정치적, 종교적, 지역적, 지식적 파벌주의자들만이 부귀영화를 누린 한반도에서 파벌주의에 타협하지 않는 보편주의자들의 삶이란 구조적으로 고단한 것이다. 맹목적 지역주의, 교조적 냉전이념, 근본주의 종교 등 각종 형태의 분파주의(sectarianism)에 세뇌된 편향적 군중(crowd)들이 주류를 이루는 한반도에서 각종 파벌과 세력을 초월한 보편주의(universalism)를 신봉하는 공중(public)들이 설자리는 그렇게 넓지 않다. 평상심과 보편성을 상실한 파벌주의 사회에서는 특수한 이념이나 세력에 치우친 파벌주의자들이 설치면서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어있다. 자신의 입지와 이익에 예속된 분파주의자들은 전체 공동체와 경쟁 상대방을 무시하고 사회를 통째로 지배하려는 불의를 감행하려는 맹목적인 군중으로 변하게 되어있다. 남한 사회가 이렇게 시끄러운 것은 좌파 정치세력의 총수인 노무현 대통령의 분파주의적 의식구조가 전체 사회에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을 구별하는 연구자들은 공동체와 상대를 무시하는 무책임한 군중(crowd)과 공동체와 상대를 인정하는 책임적인 공중(public)을 구별한다. 전체 공동체의 운명과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공격적 자기주장(aggressive self-assertion)이나 광신적 자기희생(fanatic self-surrender)을 즐기는 군중은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과 상식을 존중하는 공중과는 다르다. 특수주의에 매몰된 군중은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과 상식을 중시하는 공중과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다. 지금 한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주는 “대통령직 그만 두겠다”는 과도한 자기포기와 “끝까지 내 패거리를 챙기겠다”는 과도한 자기주장은 모두 가치기준이 붕괴된 변동사회의 군중인간이 보여주는 파벌주의와 정신혼란의 표현이다.
결코 사회학에서 군중은 못 배운 하층의 떼거리이고 공중은 배운 중산층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구스타브 르봉이나 오르테가 가세트 같은 군중연구자들은 자기분수를 넘어선 전문분야의 박사들을 대표적인 현대사회의 군중으로 지목했다. 이 군중연구자들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만물박사(pundit)처럼 자신의 지식을 타 분야에 전용하는 도착현상을 현대사회의 대표적인 군중현상’으로 보았다. 의학에 박사는 정치학에는 무지할 수 있다는 전제를 완전히 무시하는 특수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교만과 착각이 ‘배운 무식쟁이’ 혹은 군중을 양산한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좌파 지식인들이 보여주는 독선적이고 방자한 언행들은 배운 무식쟁이의 군중심리가 표출된 것이다.
이 군중연구가들에 의하면, 강정구나 김용옥은 전통적 가치가 붕괴되는 변동사회에서 탄생되는 전형적인 ‘뿌리 뽑힌 군중(the uprooted)’이며, 무책임하고 혼란된 ‘정치적 광신도(political fanatics)’이며, 유한한 지식을 무책임하게 다른 영역에 마구잡이로 전용하는 ‘배운 무식쟁이(learned ignoramus)’들이다. 지금 강정구와 김용옥은 지적, 도덕적, 영적 자만에 걸려들어서 결과를 계산하지 않는 미숙한 발언들을 마구 지껄이고 있다. 자신의 발언이 가진 명분과 결과를 정확하게 계산할 능력을 가진 나이가 충분히 되었는데도, 강정구와 김용옥 같은 포시라운 몽상가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언동이 자신과 공동체에 끼칠 악영향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 두 배운 무식쟁이들은 무지하고 무책임한 언동을 일삼는 현대판 군중에 불과하다.
‘만물박사’ 강정구와 김용옥의 무책임하고 방자한 발언들은 “배운 무식쟁이(the learned ignoramus)”이 보여주는 군중현상에 포함될 것이다. 마치 귀신에 사로잡힌 무당이 내뱉는 듯한 깔목(경상도 사투리: 목청을 꺾어 억지로 내는 갈매기 꺅꺅거리는 듯한 소리)을 쓰면서 말하는 김용옥의 강의는 정치적 광신도의 냄새를 푹푹 풍긴다. 김용옥의 자아도취증은 배운 무식쟁이에 내려진 불치의 저주로서, 머지않아 그는 미칠 지경의 자가당착에 직면할 것이다. 아마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김용옥은 자신의 지적 과잉행동을 인정하고 학자적 지위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강정구의 친북-반미 발언들도 주어진 상황과 전체사회를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발언이다. 배운 무식쟁이 강정구와 김용옥은 자만에 빠져서 무책임하게 지식을 방기한다.
구스타브 르봉에 의하면, 군중들은 건물 파괴나 방화 같은 자극적 사건에 극도로 흥분하여 자신의 행동에 결과를 계산하지 못하는 과격분자들이다. 무책임한 군중으로 전락한 ‘배운 무식쟁이’들은 앞에 있는 청중들에게 아첨하는 인기영합 발언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정치를 궁극적 종교처럼 여기는 ‘정치종교’에 도취된 정치꾼 학자들은 종종 누구보다도 더 편향적이고 부분적인 사고에 집착하는 군중현상을 보여준다. 어떤 파벌에든 예속되어야 권력과 부가 보장되는 한국사회에서, 배운 먹물들은 배타적 지역주의(parochialism), 정치적 편파주의(political factionalism), 종교적 근본주의(religious fundamentalism), 지식적 차별주의(intellectual discrimination)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 배운 무식쟁이들이 인기에 영합하여 만물박사처럼 떠돌기 시작하면, 누구보다도 더 구제불능의 무지하고 무책임한 군중이 되어버린다.
한반도의 정세가 불안정하고, 통일의 구호가 허구로 드러나고, 국가정체성이 혼란되는 이 시기에, 자기패거리 챙기기에 광분하는 노무현과 남한의 정통성을 거부하는 강정구와 김용옥은 특정 분파주의에 사로잡힌 무책임한 군중들이다. 이 분파주의자들은 특수한 망상과 착각에 포로가 되어 사실상 자신의 자존, 자주, 자율을 상실한 살아있는 허수아비들이다. 파편적이고 편향적인 지식과 이념에 사로잡힌 분파주의자들은 공공의 이익과 보편적 상식에 어긋나는 독선을 저지른다. 특정 분파주의에 광신도가 되면, 수치를 모르는 자만과 독선으로 몰입된다. 광복절에 자기패거리를 싹쓸이 사면시키는 것도 분파주의자의 독선이고, 사시동기들만 악착같이 챙기는 것도 수치를 모르는 분파주의자 노무현 대통령이 자행하는 독단과 독선이다.
김용옥, 강정구, 노무현은 공히 ‘광신적 파벌주의자’이고 ‘배운 무식쟁이’들이다. 오늘날 워낙 정신이 뒤집어진(perverted) 군중들이 설치니까, 정상적인 공중들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인다. 집단 간의 갈등에서 자기 집단을 공고히 지킬 때에 비로소 남의 집단과 좋은 대화와 협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좌파 파벌주의자들은 망각하고 있다. 명분 좋은 친북-반미-반일 구호가 정치적 분파주의자들에 의해서 악용되는 현상은 결과적으로 통일에 가장 큰 방해가 될 것이다. 좌파 파벌주의에 찌든 배운 무식쟁이들은 결과적으로 차별과 파쟁과 전쟁을 초래하는 군중들의 광란에 불쏘시개가 될까 걱정이 된다.
파벌에 갇힌 분파주의는 분쟁을 낳고, 파벌을 초월한 보편주의는 통합을 낳는다. 상대방을 배척하지 않고 전체 공동체를 책임지고 고민하는 보편주의자들만이 한반도에 만연한 분파주의를 극복하고 민족의 통일과 화합을 이룩할 주체적 공중이 될 것이다. 어설프게 배운 지식으로 국민들을 무지막지하게 다루는 배운 무식쟁이들은 공중으로 성숙한 국민들의 심판을 서서히 자초한다. 분파주의는 또 다른 분파주의를 불러일으킨다. 내 파벌을 챙기면 챙길수록, 다른 파벌들이 더 크게 번성하는 것이 세상이치이다. 좌파성향의 분파주의자 김용옥, 강정구, 노무현은 스스로 ‘만물박사’라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상 ‘배운 무식쟁이’들이다. 이 우매한 군중들이 분파주의에 몰입하여 국가분열의 씨앗노릇을 할까 우려된다. 조영환 칼럼니스트 <매일일보닷컴 제휴사=업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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