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권은 주한미군의 뇌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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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작전권은 주한미군의 뇌수이다.
  • 조흔구 논설위원
  • 승인 2006.08.1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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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흔구의 클린정치]
 아직은 때가 아니다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이 우리 정치권의 오랜 관행이라지만 이 번 정쟁은 불필요한, 하지 않아도 될 소란이기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현재의 우리 사정을 둘러보자. 이미 세상 그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겠다는 듯, 단 하나 남은 우방인 중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보란 듯이 장거리미사일 대포동 2호를 실험 발사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갈 길은 가겠다는 투다.

황망해진 것은 우리 정부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건만 (그 노력이 과연 정당하고 적합한 것인지는 여기서 논외로 하자) 그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한반도 평화 정착의 유일한 방안으로 여겨지던  6자회담의 개최 여부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여기에 한미 FTA 조약을 둘러싸고 국론은 심각하게 분열된 상황이고 한 번 허물어진 경제는 좀처럼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이미 한국 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고 노후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적으로는 노령화와 4대보험의 자금 고갈 등 어디를 둘러보나 안심할 구석이 한 곳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느닷없이 한미 전시작전권 환수라는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 국론은 또 한 번 요동칠 수밖에 없다. 


세계화의 추세에 역행되는 전시작전권 환수

 

세계 어느 나라나 자주국방을 부르짖지 않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그 물음에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벌어지는 전쟁은 과거와 같이 국가와 국가간에 지상군을 동원하여 벌어지는 전쟁과는 개념이 다르다. 현대의 전쟁은 동시다발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더군다나 국가와 국가간에 전쟁은 줄어들고 이른바 눈에 보이지 않는 적, 테러와의 전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군사력 면에서 앞선 서유럽의 영국 프랑스 등도 NATO라는 집단군사동맹체제를 통해 자국의 안정을 기하고 있다. 이것은 굳이 서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양상이다. 집단군사동맹체제를 통해 자국의 안정을 더욱 공고하게 다지는 것이다.

집단군사동맹체제의 장점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장점은 군사비의 지나친 지출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적은 병력으로도 효과적으로 자국 국방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직 우리만이 확고한 군사동맹체제를 약화시키는 길로 가고 있다. 도대체 무슨 실익이 있다고 그 길을 가려하는가? 혹시 ‘자존’이라는 당위성에 매몰되어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려 드는 것은 아닌가?


대가를 치르기에는 조금도 급한 일이 아니다


한 국가가 안보를 보장받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정치적 지향성이나 경제 환경이 비슷한 국가들이 집단군사동맹체제를 갖추는 일이다. 물론 세계는 그와 같은 길로 나아가고 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스위스, 스웨덴 네덜란드 등과 같이 주변 국가와의 협약을 통해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받는 길이다. 사실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비 지출을 즐이는 대신 경제 발전과 국민 복리 증진에만 힘을 쏟을 수 있으니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이 어디 그러한가?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전투력을 보유한 국가들이 울타리를 치듯 둘러가며 배치되어 있다. 태평양국가 임을 자처하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 발전과 함께 대양 진출과 동북공정을 시도하는 중국, 우리와 땅이 맞대어 있어서 언제든지 위협요소가 될 수 있는 러시아, 최근 들어 평화헌법을 무시하고 공공연히 군사대국화를 노리는 (이미 군사대국화가 되어 있는) 일본 등이 그들이다.

뭐니 뭐니해도 가장 큰 위협은 북한이다. 북한은 핵 무장을 서두르면서 남북한 군사감축 문제에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생존전략이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가공할만한 전면전을 벌일 수도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할 방법은 분명하고 확고하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침조약을 통해 주변 4개국이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한 가운데 북한과 협상과 교류를 통해 분단의 장벽을 걷어내는 길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주의자들의 호소일 뿐이다. 우리 현실은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가능한 방법은 우리가 전쟁 억지력에 충분한 군사력을 보유하는 길이 될 수밖에 없다. 전쟁 억지를 위한 충분한 군사력에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비록 몇 만에 불과한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그들이 상징적으로 가지고 있는 억지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에서 끊임없이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전시작전권은 주한미군의 뇌수이다.


사실 우리의 군사력은 주한미군 몇 천 빼간다고 해서 당장 안보 위협에 처할 만큼 허약하지 않다. 우리 군도 그동안 꾸준한 전력 증강을 통해 적의 웬만한 도발은 충분히 격퇴하고도 남음이 있을 만큼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호전적이고 우리 주변을 둘러싼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다. 이럴 때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군사적인 유대 관계를 약화시키는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자존의 문제인가? 그렇다면 그 자존은 잠시 보류하자. 아니, 길게 보류할 수도 있다. 자존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생존이기 때문이다.

벌써 구한말의 교훈을 잊었던 말인가?

전시작전권 환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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