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부회장, 황태자 이재용 상무 추진 사업에 부정적 견해 일각 "이 부회장, 이 상무 빌미로 윤 부회장 밀어내나" 추측
[매일일보닷컴= 권민경 기자]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쌍두마차가 삐걱거린다는 소문이 재계에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최측근인 이학수 전략기획실 부회장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간에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실권자'와 그룹 대표 회사의 실질적 경영자간에 팽팽히 유지되던 균형관계에 이 같은 변화가 생긴 것은 '포스트 이건희' 시대가 가까워옴에 따라 주도권 쟁탈이 본격화됐기 때문으로 재계는 분석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과 윤 부회장의 태생적 한계에서부터 이미 갈등이 내포돼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과 관련해 가뜩이나 긴장상태인 삼성인데 그룹을 대표하는 두 실력자에 대한 갈등설까지 퍼지면서 소문의 진상을 둘러싸고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두 사람의 갈등설이 불거진 것은 LCD 제품 생산 및 공급을 담당하는 S-LCD 라는 회사의 경영상황 및 사업성과에 대한 입장차이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S-LCD 는 삼성전자가 지난 2004년 3월 일본 소니사와 50대 50의 비율로 투자해 만든 합작법인이다. 충남 아산군 탕정면에 공장을 지어 지난해 4월부터 LCD 제품 생산에 들어갔고, 삼성과 소니는 7세대 LCD 라인에 이어 8세대 라인까지 S-LCD를 통해 합작하기로 결정한 상태.문제는 설립 당시 자본금이 1조2천600억원이었던 S-LCD 가 지난해 2천13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설립 첫 해에는 255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1년새 적자폭이 10배 가까이 뛰어올랐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이 회사는 지난 7월 26일 1조8천억원의 추가 유상증자를 실시 하고 내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돈을 투입하는 등 긴급 대책에 나섰다.
이를 두고 그룹 내에서 S-LCD 사업에 대한 비판론이 불거진 것.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 내 S-LCD 비판론자들은 '괜스레 경쟁상대인 소니와 손을 잡아 그쪽만 이득을 보고 삼성은 얻은 게 없다' 는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고 전했다.
윤종용 "황태자 승진 무산에 영향 줬나"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소니와의 합작을 통한 S-LCD 사업이 이 회장의 아들 이재용 상무의 주도하에 추진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상무는 현재 S-LCD 의 등기이사에 올라있다.이런 상황에서 S-LCD 사업의 손실규모가 늘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S-LCD 비판론자들은 이 상무의 경영능력에 대해서도 그리 곱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사실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올 초 이 상무의 승진에 대한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았지만 결국 승진은 무산됐다.
물론 에버랜드 사건을 둘러싸고 삼성의 경영승계 방식이 한창 비난의 도마위에 올랐던 터라 그 중심에 서 있는 이 상무의 승진이 시기 적절치 않았다는 것이 재계의 지배적인 분석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외에도 S-LCD 에 대한 비판이 이 상무의 승진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S-LCD 사업이 이 부회장과 윤 부회장의 갈등설에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바로 S-LCD 비판론자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윤 부회장이라는 사실이다.
삼성의 황태자 이 상무가 주도한 사업에 대해 윤 부회장이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이 상무의 후견인을 자처하고 있는 이 부회장의 입장에서 볼 때는 '괘씸죄'를 적용할 만할 일인 것.
더욱이 이 상무가 추진한 S-LCD 사업을 밀어준 것이 이 부회장이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전략기획실이었기 때문에 윤 부회장의 비판론은 곧 이 부회장을 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 상무를 빌미로 윤 부회장을 밀어내는 것 아니냐"는 최악이 시나리오마저 거론될 정도다.
이학수VS윤종용.. 태생적 한계가 갈등 유발?
한편 재계 관계자들은 이 부회장과 윤 부회장 사이에 떠도는 갈등설이 S-LCD 사업으로 인해 표면화된 것일 뿐 사실상 그룹 내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태생부터 미묘했다고 얘기한다.
지난 1987년 이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은 후 만 19년 동안 두 사람이 그룹의 중추로서 오늘의 '삼성'을 있게 한 일등공신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 부회장과 윤 부회장이 각각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큰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성그룹 경영의 핵심인 전략기획실의 수장인 이 부회장은 이건희-이재용 부자를 제외하고는 (일각에서는 이들을 '뛰어넘을만큼' 이라고 표현하기도) 그룹 내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은 비서실(구조본)의 권한이 다른 어떤 그룹보다 막강하기로 이름 높다. 심지어 '구조본 임원이 계열사 사장보다 힘이 좋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당연히 비서실의 수장인 이 부회장의 그룹 내 입지는 그야말로 '만인지상 일인지하' 라 부를 만 한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 부회장은 71년 제일모직으로 입사 한 뒤 82년 12월 회장 비서실 운영1팀장, 84년 제일제당, 95년 삼성화재를 거친 것을 제외하고는 비서실에서만 20년을 일한 '비서실붙박이' 라 불린다.
특히 이 부회장은 비서실 재무팀의 핵심으로 사실상 삼성의 안살림을 맡아왔다.
반면 윤 부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66년 삼성물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이사 사장과 삼성전기, 삼성전관(현 삼성SDI) 사장을 거쳐 2000년부터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고 있다. 입사 후 줄곧 가전과 반도체 등 전자 부문에 몸담으며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전문경영인으로 성공한 윤 부회장은 '샐러리맨의 표상'으로 불린다. 미국의 경제전문 주간지인 포천이나 CNN 등 해외언론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포스트 이건희' 시대 주도권 누가 잡나
삼성을 이끄는 쌍두마차인 이 부회장과 윤 부회장이지만 이처럼 한 사람은 '오너를 최측근에서 보필하는 그룹 전반의 '권력자'로 각인돼 왔고, 다른 한 사람은 그룹의 주력 사업을 세계적으로 성장시킨 '전문경영인'의 이미지를 쌓아온 것이다.
이는 곧 비서실 수장으로 그룹 전반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이 부회장에게도 윤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전자 만큼은 많은 입김을 발휘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가하면 윤 부회장은 삼성을 먹여살리고 있는 전자의 수장이지만 그룹 내 장악력에 있어서는 이 부회장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을 얻는다.
이처럼 그룹 내에서 전혀 다른 양상의 입지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기에 업계에서는 이 둘의 미묘한 경쟁기류에 대한 말들이 오랜 전부터 나오곤 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비서실 출신인 이 부회장과 전자맨인 윤 부회장의 관계가 껄끄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겠느냐" 고 공공연히 얘기하기도.
'실권자' 이 부회장, '성공한 CEO' 윤 부회장. 과연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에서 누가 우위를 점해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이끌 최고 경영인으로 떠오를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