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커밍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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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커밍아웃?
  • 최봉석 기자
  • 승인 2006.09.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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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한나라당, 가까워도 너무 가까워라
[매일일보닷컴=최봉석기자] 비즈니스 생태계를 보면 앙숙관계였던 집단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다시 말해 ‘윈윈’하기 위해 ‘짝짓기’를 한다. 서로 앙숙관계였던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의 iPod, 모토롤라와 애플의 iTune 등에 공동으로 대응하고자 상호협력관계 맺은 사례가 그렇다.
‘낙오’될 경우 더 큰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에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정치권 생태계를 눈을 돌리면 수많은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존재해왔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앙숙’ 관계였으나 ‘게이트’ 등을 우려해 - 바꿔 말하면 공멸을 우려해 - 화해를 모색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국민들은 지켜봐왔다.최근 정치권에 서로의 요구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일상적으로 덕담도 건네면서 공동운명체를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앙숙관계’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래서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민주당 너무 가깝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두 당 사이에는 늘상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서로 인정하지 않았다. 정책, 노선, 이념이 너무 다른 양당이 공조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최근 ‘한민공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연말쯤 본격적인 대선정국이 시작되면 양당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이 내놓는 모범답안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민공조’는 이른바 ‘대선공조’를 말한다.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지난 11일 한나라당 의원모임에 참석, “한나라당이 옳으면 같이 하면 되고, ‘한·민 공조’라는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빠른 속도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양당의 정책공조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내비쳤기 때문이다.유종필 민주당 대변인도 이틀 뒤인 13일 모 라디오 방송에 출연,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로미오 줄리엣 집안처럼 철천지 원수로 지내던 시기는 지났다”면서 “양 정당 지지자들의 정서에 따라 얼마든지 정서연합이 가능하다”고 말해 한 대표의 발언은 일회성이 아님을 드러냈다.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게 정치 현실이라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역사와 전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까닭에 또다시 충격에 빠졌다. 한 대표의 한나라당 모임 참석을 가장 앞서 비판하고 있는 곳은 물론 열린우리당이다. 당에 대한 지지도가 곤두박질을 치며 정국 주도가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손을 잡을 경우 상당한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치매 걸린 노인으로 폄하한 한나라당과 무슨 이유로 공조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정도를 넘어선 발언”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수많은 호남 유권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런 행동은 자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5·18’의 고통을 지니고 사는 호남 유권자들도 한결같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탄핵정국 때 한민공조로 민주당 민심 잃어

발언의 파장이 확산되자, 한 대표는 부랴부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책이 같을 때 정책연합을 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발언의 진위를 축소했다. 하지만 지난 2004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서로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였다가 역풍을 맞은 적이 있음을 감안할 때, 한 대표의 한나라당에 대한 집착(?)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다. 민주당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과정에서 한나라당과 공조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로 인해 지지자들에게 시달림을 당했다. 민심의 이탈을 초래했던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탄핵을 주도해온 민주당의 반성을 촉구했었다. 이로 인해 당시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삼보일배를 통해 광주시민들에게 공개사과를 하기도 했다. 사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한나라당과 손을 잡았던’ 민주당을 외면했다. 대신 열린우리당의 손을 들어줬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은 ‘(노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책이 똑같기 때문에’ 한민공조를 실현시켰지만, 같은 해 4?15 총선에서 거센 역풍을 경험한 것이다.탄핵정국 전부터 지지도가 하락했던 민주당은 탄핵정국 이후 더욱 어려운 상황을 겪게 됐다. 국민의 60~70%가 탄핵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탄핵을 주도한터라 민주당 소속 시·도지사들까지 탈당하는 등 내홍을 겪었던 것이다.민주당이 한나라당과 가깝게 지내는 데는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이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9월 “당적문제가 소모적 정치공세의 대상이 되고 정치 쟁점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탈당 의사를 밝혔다.알려진 바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이후, 노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여러가지 정책 방향은 민주당이 추진하던 것과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반노무현 진영은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을 배신했다”고 주장했고, 노 대통령측도 “민주당이 지원하지 않아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반박하는 등 양측의 관계는 편치 않았다.노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잔재가 남아있는 민주당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한마디로 민주당의 외각에서 ‘개혁의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민주당, 한나라당 2중대 소리 듣기도

노 대통령의 탈당이 현실화되자, 당장 국정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된 민주당은 “국민들에 대한 배신행위이자 국정혼란을 부추기는 최악의 선택”이라고 맹비난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중간평가를 받아야 하며,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졸지에 ‘야당’이 된 민주당과 노 대통령의 관계는 악화일변도로 치닫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이 2004년 열린우리당에 가입하자, 이후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의 정책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2중대’라는 쓴소리를 줄곧 들어야 했다. 정체성 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잇따라 보수색깔을 드러내면서, 한나라당을 닮아갔기 때문이다.원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양당의 탄생 이후 관계가 편치 않았다. 민주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과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정당인 한나라당은 지난 수십년간 민주당과 대척점에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지속된 호남차별 정책으로 인해 호남은 소외와 낙후의 대명사가 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해 호남의 소외는 극에 달했다. 때문에 두 정당은 이념적으로 입장의 차이가 있었고 매번 격돌했다.민주당은 한결같이 한나라당과의 화합, 즉 지역화합과 국민통합을 위해 한나라당을 상대로 지역차별에 대한 자기반성과 사과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한나라당과의 관계는 순탄치 않았고 국민의 지역감정만 오히려 자극시켰다. 매번 선거때마다 한나라당은 경상도를, 민주당은 전라도를 지지기반으로 정착시키는 결과만 되풀이했다.양 당이 서로의 가치관, 정책, 이념, 사상 등에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서로를 인정할 수 없다”는 데에는 일정부분 일치한다. 한나라당은 ‘민주화의 세력’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에 대해 불편하게 여기고,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차떼기와 같은 ‘비리원조당’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근본적으로 서로를 인정하지도 않고, 마음이 딱 맞아 떨어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그렇게 ‘기싸움’을 즐겨왔던 양 당의 역사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런 분위기는 오래 전부터 감지되고 있다. 먼저 지난 4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박주선 전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으로 갈등을 겪자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한나라당과 같은 발걸음의 민주당

한나라당 홍보기획위원장인 정병국 의원이 “민주당이 자신들의 뿌리를 후벼 파고 떠난 ‘배신 정당’과 경쟁을 하려는 것도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일”이라고 말하며 민주당을 옹호했던 것이다. 양당의 부드러운 분위기는 주로 한나라당이 이끌어가고 있다.한나라당은 지난 2004년부터 의원들의 연수를 호남에서 열고, 5·18 민주화항쟁 묘역을 찾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도 대표시절, 호남을 자주 방문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최근 지역구인 대구 주민들로부터 “광주로 지역구를 옮겼냐”는 말을 들을만큼 호남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강 대표가 내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30%를 호남 몫으로 배정하겠다는 소식도 정가에 루머로 떠돌고 있다.민주당은 ‘작통권’과 ‘사학법’ 반대의 목소리에 이미 한나라당과 발걸음을 같이하고 있다. 간혹 입장이 서로 상이할 경우 상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곤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의 냉랭한 기운이 사라져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동운명체’처럼 움직이는 데는 당연히 내년 대선과 맞물려있다. 한나라당은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력전을 펼쳐야 하는 운명이다. 민주당이 스스로 접근해온다면 쫓아낼 이유는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호남표를 단 몇 퍼센트라도 얻게 될 경우 한나라당으로서는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친박계의 대표적 인사로 꼽히는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한화갑 대표와의 질의응답에서 “정체성을 같이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헤쳐 모이는게 중요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는데,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합당 방지를 의식한 발언으로 보고 있지만 한나라당이 민주당과의 연대를 지속적으로 내비쳐왔던 점을 감안할 때, 자연스런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한화갑 대표의 대법원 판결이라는 메가톤급 폭탄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는 민주당 또한 정권탈환을 목표로 잡은 이상, 열린우리당을 견제하기 위해 한나라당과 뜻을 같이 해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한민연합’이 정국의 흐름을 이끌 수 있는 중요한 동력으로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실제로 한 대표의 발언에 대해 대권 행보를 준비 중인 고건 전 총리도 긍정의 뜻을 피력했다. 현재 열린우리당은 오픈프라이머(완전개방형 국민경선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인데, 외부선장론이 핵심인 오픈프라이머에 중심이 되는 인물이 바로 고건 전 총리다.상황이 이렇자 민주당 내에서는 ‘한?민 공조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조순형 의원은 12일 CBS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한나라당과 지역적 기반, 정책, 이념에서 차별이 있다”며 “각자 독자의 길을 가야 한다. 연대는 어렵다”고 밝혔다.민주당이 한나라당의 일거일동과 큰 차이가 있어, 한민공조라는 정치권의 지각변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한민공조’는 ‘정치적 쇼’라며 애시당초 거리감을 두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정치적 쇼,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일각에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고건 전 총리의 통합을 주장하는 이른바 ‘범여권통합론’이라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한민공조처럼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도로민주당식 정계개편’에 대해서는 열린우리당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한때 물과 기름처럼 ‘앙숙관계’였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지금은 ‘동지’가 되면서 무척 가까워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양당 모두 내년 대선 승리라는 절대절명의 과제를 갖고 있어 이 같은 유유상종(類類相從)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시간은 없는데 이들의 꿈은 누가 뭐래도 ‘정권재창출’이고 그 결과물을 빨리 보고 싶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사소한 일에도 웃고, 억지로라도 웃는다. 그게 정치다. 민주당, 과연 커밍아웃을 할까?

최봉석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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