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올 연말쯤 새로운 정치 구조조정 태동”…열린.민주 갈팡질
[매일일보닷컴=최봉석 기자] 고건 전 국무총리의 입에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올 연말, 국내 정치 질서에 새로운 구조조정의 움직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예측 속에서, 고 전 총리의 행보가 정계개편에 불을 지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정가의 화두는 단연 ‘고건’이다.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고 있다. 고건 전 총리가 21일 입을 열어줬다. 로스엔젤레스 시내에서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그는 12월초 정계개편론과 관련해, “우리의 정치 질서에도 구조조정하는 그런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용의 깊이를 떠나 ‘고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이는 해석이 가능하다. 기자들은 이어 ‘대선 출마 선언은 언제할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는 “때늦지 않게 적절한 시기에 내 입장을 분명하게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때를 봐서 주사위를 던져보겠다는 것이다. 한가롭게 대학가 ‘강연정치’를 펴왔던 고건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목표는 물론 ‘대통령’이다.대통령 위해 주사위 던질 준비
그는 대선후보 출마 방식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를 간절히 기다리는 존재들의 소망을 순식간에 좌절모드로 바꿔버렸다. “기존 정당에 들어갈 생각이 없고, 이 같은 기존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대권에 도전해보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대권의 링’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한번 파이팅해보겠다고 다시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그러나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정치권 인사는 사실상 아무도 없다. 신기하게도 이럴수록 고건의 가치는 갈수록 하늘을 찌르는 형국이다.그의 이번 미국행은 외견상으로는 ‘2006 한국의 날’ 행사 참석을 위한 것이다. 특별고문으로 위촉됐기 때문에 행사에 참석했다. 그러나 지난 8월28일 ‘희망한국 국민연대(희망연대)’를 출범시킨 뒤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준비하면서 내뱉은 발언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해석을 접목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전 총리는 그동안 희망연대에 대해 “정치 결사체도 아니고 신당을 만들기 위한 조직도 아니”라며 “정치 소비자 운동”이라고 답해, 그만의 고유 브랜드인 ‘탈정치론’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 또한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국민중심당을 아우르는 범여권 대통합을 위한 전초기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고 전 총리의 주장이 사실이든 혹은 거짓이든간에 지금으로써는 그게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가 이끌게 될 이른바 ‘고건 호’가 과연 어떤 모양으로 대중들 앞에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에 대해 세간의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을 뿐이다.고건 전 총리가 만약 특정 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 그가 지닌 다양한 장점 때문에 그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 당은 근본적인 변화와 함께 대선에 성공할 수도 있고, 당의 얼굴을 바꾸는 정도의 변화에서 멈칫거릴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지닌 안정과 통합, 편안함의 이미지, 그리고 총리시절의 리더십은 혼란만을 지속적으로 보여준 현 정치권의 풍토에서는 ‘후한점수’를 일단 먹고 들어간다. 특히 그는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훌륭한 전략을 잘 이용(?)했던터라 지난 2년간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1~2위를 다툰 적도 많다.지지율은 급락, 본격적으로 시동걸 때
그러나 현재 그의 지지도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비해서는 한참 뒤쳐지고 있다.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CBS가 지난 18~19일 공동으로 실시한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고 전 총리는 19.6%를 기록했다.(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26.9%, 이명박 전 서울시장 24.4%) 그래서 고건이 움직임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더 이상 행동을 늦추다가는 ‘죽도 밥도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깔려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고건이 발을 내딛음으로써 그를 가장 반기는 쪽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다. 일단 당내 대권후보인 정동영이나 김근태에 큰 기대를 걸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열린우리당의 입장에선 고건의 손을 덜썩 붙잡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의 지지도를 모두 더해도 고건 전 총리의 지지도를 따라잡기엔 역부족. 대선 필패의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입장에서는 고건을 영입함으로써 대선승리라는 축배를 맛볼 수 있는 가능성은 확실히 높아지는 셈이다.이런 걸 미리 예측이라도 한 듯 열린우리당은 이미 고건 전 총리에게 구호의 손길을 내민 적이 있다. 5.31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둔 3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참여정부의 초대총리인 고 전 총리가 함께 하면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며 열린우리당의 영입을 요청하기도 했다. 비록 고 전 총리는 거절했지만, 열린우리당은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제)’를 도입해 고건 전 총리의 영입을 현재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 이런 가운데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고건 전 총리가 여당이 추진 중인 중도개혁세력 통합론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혀 향후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고 전총리가 여당이 주도하는 통합 논의에 긍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고 전 총리가 과거 민주당 공천을 통해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점 등 원래 ‘민주당’ 사람이었다는 감안하면, 민주당 또한 당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고건영입’에 힘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쉽게 선택 불가능, 신당 창당 가능할까?
그러나 고건 전 총리의 입장에선 그 어느쪽도 쉽게 선택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을 선택하기엔 10%대 초반의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터라, 자칫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긍정적인 이미지에 먹칠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다분하다. 최근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으로서는 사상 유례가 없는 참패를 당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을 선택했다가는 다음 대선에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민주당으로 다시 복귀하는 것도 현재로서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없다. 호남당의 이미지가 강한 상황에서 ‘지역후보’라는 이미지로 자칫 대선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도 있을 뿐더러, 특히 민주당과 이미 거리를 두고 있는터라 호남인들의 표가 본인에게 집중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는 상황이다. 진작 민주당에 복귀했어야 됐는데 때를 놓쳤다는 것이다. 고건 전 총리가 호남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호남을 대표할만한 마땅한 대권후보가 없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지지율이 높다는 게 설득력있는 분석이다. 호남의 유권자들은 고건과 민주당을 하나의 고리로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이런 걸 떠나, 민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당내 계파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의지할 곳조차 없이 외로운 홀몸으로 들어간다는 것도 대권을 향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당내 후보자들과 경합을 벌어야 하는데 여기서 승리하라는 보장은 처음부터 없다. 고건 전 총리가 헤쳐 모여식 ‘신당을 창당’하는 정계 개편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신당 창당에 대한 그의 바람은 올초부터 언론을 통해 이미 노출됐다. 신당은 현재까지 비정치인 중심, 중도실용주의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에서는 ‘희망연대’가 정당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희망연대’를 도와줄 ‘고건’의 사람들은 다양한 것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오랜 공직생활 때문이다. 학자층부터 시작해, 정계, 재계, 심지어 연예계까지 널리 퍼져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권동일 서울대 교수, 박연철 전 민변 부회장 등이 희망연대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중수(경희대), 이진순(숭실대) 교수 등은 고 전 총리의 경제교사들이다.정치행보는 현실정치의 장에서 할 것
그러나 고건 전 총리가 직접 “정치행보는 현실정치의 장에서 할 것”이라고 못을 박은 상태라, 희망연대와 대선은 상관관계가 없을 가능성도 높다. 현실의 장은 ‘기존 정당’을 말한다.그럼 고건은 어떻게 최종 판단을 내릴까. 그가 노크할 수 있는 당은 현재로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크게 양분된다. 하지만 민주당이라는 집이 너무 협소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열린우리당을 선택할 가능성이 지금으로썬 높다. 향후 발생한 현안 문제에 대해 이슈를 선점해야 하고, 그 이슈를 능수능란하게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대권 도전 의지를 국민들에게 ‘긍정적으로’ 각인시키려면 여당의 일인자가 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한나라당은 아예 고건 영입이라는 카드조차 꺼내지 않고 있다. 박근혜와 이명박이 서로 세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건이라는 제3의 인물은 고민할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이 또한 ‘확답’은 아니다. 고건은 지난 7월 모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손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해 대권을 꿈꾸는 그의 행보에 새로운 물음표를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치밀하게 계산해서 움직이는 고건 전 총리다운 행보다.고건 전 총리는 도대체 언제쯤 답변을 꺼내고, 정치권은 언제까지 그의 입을 기다려야 할까. 고 전 총리 한 측근은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고건 전 총리의) 선택의 계기가 생기면 묵묵히 가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결과는 물론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겠지만, 고 전 총리는 현재를 아무래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는 열린우리당, 민주당, 한나라당의 영입설과 관련해 “여, 야 양쪽에서 나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극한 여.야 대립 구도에서 나를 중심으로 공감대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에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건이 웃으며 2007년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고(go)고(go)고(go)”를 외치며 말이다.<심층취재 실시간 뉴스 매일일보닷컴/www.sisaseoul.com/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